[정의선 시대, 현대차가 바뀐다] ②전동화·커넥티드카, 그리고 ‘열린 혁신’

글로벌 협업·투자 확대, 기술혁신 통해 4차산업혁명 주도…기업문화·인사도 개방형 확산


현대자동차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 미래 모빌리티 비전 고도화 전략을 발표했다. 현대차는 고도화 전략의 3대 핵심 키워드로 전동화, 커넥티드카와 함께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내세웠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지렛대로 삼고 있다는 의미다.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 체제의 현대차그룹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이 강조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ICT 융합, 공유경제, 인공지능(AI), 스마트 모빌리티와 같은 미래 분야 투자를 확대할 것이며,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기술혁신을 가속화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현대차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중시하고 있다. 기존의 폐쇄적인 개발방식은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고 플랫폼과 생태계가 강조되는 최근 상황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 역시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의 빠른 축적과 비즈니스 연결이 관건이 되면서 외부 자원의 활용과 협업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오픈 이노베이션을 제대로 추진하고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직 전체의 사고를 전환하고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흉내 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꼽히는 것이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확신과 의지를 가진 리더의 역할이다.

▲정의선 체제의 현대차그룹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호출 서비스 기업 그랩에 역대 최대 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도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의 일환이다. 사진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오른쪽)과 앤서니 탄 그랩 CEO가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뉴이코노미 포럼’에서 악수하는 모습 / 사진=블룸버그 뉴 이코노미포럼


최근 현대차의 외부 협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6월 경쟁자인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와 수소전기차 분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수소전기차 기술 확산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특허와 주요 부품을 공유하는 데 합의하고, 수소전기차 시장 선점과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해 기술 협업을 늘리기로 했다.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아우디와의 파트너십은 글로벌 수소전기차 시장 활성화는 물론 수소 연관산업 발전을 통한 혁신적 산업 생태계 조성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또 지난해 1월 미국의 자율주행 기업 오로라와 자율주행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 위한 동맹을 구축했다. 두 회사는 2021년까지 스마트시티에서 레벨4 수준의 도심형 자율주행 시스템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IT 기업들과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커넥티드카 개발을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기업 시스코와 협업하고 있다. 현대차는 시스코와 차량 내부 데이터 송수신 제어를 위한 차량 내 초고속 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차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바이두와도 커넥티드카 분야에서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현대차는 각 분야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과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의 협업을 통한 커넥티드카 플랫폼 확보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또 올해 초 ‘CES 2019’에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 최초로 커넥티드카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픈 플랫폼을 만들고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기업, 개발자 등 다양한 주체가 상호 작용하며 진화하는 개방형 연구개발 생태계를 구축해 다양한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현대차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의 핵심 토대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다.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전 세계 주요 거점에서 현지 유망 스타트업 발굴, 육성,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현지 대학, 연구기관, 정부, 대기업과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는 ‘현대 크래들 실리콘밸리’(미국)와 ‘제로원’(한국), ‘현대 크래들 텔아비브’(이스라엘)와 곧 문을 열 독일 베를린과 중국 베이징 센터를 합쳐 5개의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전 세계 5대 거점에서 현지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현지 대학, 전문 연구기관, 정부, 대기업 등과 신규 비즈니스 창출을 모색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운영한다. / 자료=현대자동차


현대차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활성화와 맞물려 국내외 미래기술과 플랫폼 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5월 미국의 라이더(Radar) 개발 스타트업 메타웨이브에 투자했다. 메타웨이브는 2017년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메타웨이브는 자율주행차용 레이더와 AI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국내 물류 플랫폼 기업 메쉬코리아에 225억 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이륜차 기반 물류 플랫폼과 장거리 배송기술 솔루션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의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 미고에 투자하고 미국 공유경제 시장 진출 발판을 만들었다. 2016년 설립된 미고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고객에게 최적의 차량 공유 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기업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딥러닝 기반의 AI 기술을 연구하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알레그로.ai에도 투자했다. 

또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1월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호출 서비스 기업 그랩에 역대 최대 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총 투자 규모는 2억7500만 달러(3120억 원)에 달한다. 현대기아차는 이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 주도 역량을 강화하고 공유경제 핵심 플레이어로 급부상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래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ICT 융합, 공유경제, AI, 스마트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추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개방성은 오랜 기간 국내 기업들을 지배해온 순혈주의 타파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2017년 AI, 신소재 에너지, 로보틱스, 공유경제 등 미래 혁신분야를 집중 연구하는 전략기술본부를 신설하고 삼성전자 기획팀장(부사장) 출신의 지영조 본부장을 앉혔다. 지영조 본부장은 지난해 말 그룹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하반기 영입한 네이버랩스 출신의 김정희 이사가 AI 전담 별도조직 ‘에어랩’를 총괄하는 것도 눈에 띈다. BMW 출신의 알버트 비어만 사장을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선임한 것도 순혈주의 타파와 개방성에 입각한 인사로 평가받는다. 

최근 신입사원 공채를 없애고 수시채용로 전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기존의 공채 방식이 제조업과 ICT가 융합하는 미래 산업환경에 적합한 인재를 적기에 확보하는데 적합하지 않아 채용방식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시채용 전환은 향후 현대차 인사 시스템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개방적, 수평적이고 유연성 있는 문화로 바꿔야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현대차가 시작한 근무복장 자율화 등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한 시도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정 수석부회장도 신년사에서 “변화와 혁신 전략이 성공하려면 선진화된 경영 시스템과 유연한 기업문화가 필수로,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더 폭넓게 기업문화 변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강동식 기자 lavita@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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