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소롱거스 DNA 되살리는 정의선 현대차 CEO



 

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창조적인 복장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일사불란한 검은색 또는 곤색(짙은남색) 정장에서 벗어나 찢어진 청바지에 운동화까지. 소롱거스(무지개가 뜨는 나라) 즉 아사달(코리아)DNA가 되살아나고 있다.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현대·기아자동차가 패션에서도 변하고 있다. '정의선 경영체제' 이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기업실적도 덩달아 상승, 옛날의 명성을 되찾아가는 분위기다.

후드티에 가죽 재킷, 발목이 드러나는 청바지에 운동화, 백팩에 에어팟(무선 이어폰). 최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앞 통근 버스에서 내린 직원들의 옷차림이다. 출근하는 직원 10명 중 8명은 운동화나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33일까지만 해도 '정장에 넥타이'라는 복장 규정이 있었다. 여름에만 '노 타이(no tie)'가 허용됐다.

하지만 정 수석부회장이 "스타트업보다 더 스타트업 같은 회사로 가자"고 강조한 다음날, 복장 자율화가 시행됐다. 라운드티에 운동화 신은 상무·전무급 임원들도 눈에 띈다. 2000년대 초·중반 캐주얼 복장을 허용한 삼성·SK·LG 4대 그룹의 다른 회사보다 시작은 한참 늦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떠 빠르고 개방적이다. 아직 '비즈니스 캐주얼'이 대세인 삼성·SK·LG와는 달리, '스타트업 저리 가라'.

본래 한국(큰 나라=아리랑)6000년 전부터 실크옷을 입고 다닌 민족이다. 그것도 7가지 천연염료로 물들인 실크옷을 말이다. 로마사람들이 광목수준의 옷을 걸치고 다닐 때 고조선 시대부터 각종 천연색으로 물들인 실크옷을 입고 다녔다.

▲홍산문명의 옥잠

기원전 4500~3000년에 존재했던 동이족의 홍산문명(요서지역)에서는 옥잠(玉簪)이 다수 발견되었다. 배달국시대 전쟁의 신 일명 도깨비로 알려진 치우천황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견우와 직녀설화도 그렇다. 별자리까지 견우성과 직녀자리까지. 견우는 소로 농사를 민족, 직녀는 실크를 짜는 민족을 뜻한다. 견우 총각과 직녀 처녀가 영고 등 축제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그린 얘기다. 나무꾼과 선녀 얘기로도 파생, 전해지고 있다. 직녀(織女)는 천제(天帝)의 손녀로 은하의 동쪽에서 살면서 베틀 앞)

에 앉아 신기한 실로 층층이 아름다운 구름을 수놓은 베를 짜는 처녀다. 그 비단은 천의(天衣)라고도 한다. 고대 복식사 전문가 상명대 박선희교수는 "홍산문화에서 옥잠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이 비단의 원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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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 벽화 직녀도

고구려벽화 대안리 1고분 베짜는 여인은 패션에서도 예술이다. 고구려 벽화 무용도의 실크패션 은 걸작이다. 고구려 각저총 씨름도의 매부리코는 서역 실크를 구하기 위해 온 상인이다. 장천1호분 백희기악도 와 상단 나무 벽화패션을 보라. 또 무용총 수렵도 벽화패션을 보라. 당시 세계 어떤 민족이 이런 패션을 했는가? 더구나 가볍고 따뜻한 실크옷으로 말이다.

▲무용총 수렵도

고조선시대부터 서역 상인들은 코리아의 실크를 구하기 위해 비잔티움에서부터 소롱거스(몽고사람들이 코리아를 일컷는 말)에 왔다. 당시 이윤이 가장 높은 상품을 구하기 위해서... 그래서 생긴 길이 실크로드. ‘실크는 코리아의 실꾸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무용총

영남대 조환교수는 2012년 일본섬유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SILK라는 용어는 원래 영어 표기에 없었고, 영어의 뿌리가 된 구약성서나 신약성서 어디에서 그 어원이 될 만한 단서가 없었다”. 그는 실크의 어원이 코리아의 실꾸리에서 비롯됐음을 역사적 증거자료를 통해 제시했다. 처음에는 비단을 완제품을 수입해가다 나중에서 실꾸리를 수입, 직접 제작하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각저총 씨름도

또 삼국지와 후한서 동이전에는 부여는 일찍이 그림에 수를 놓은 비단을 생산, 수출했다고 기록돼 있다. 한서에는 고구려를 부상국(扶桑國)으로, 후한서에는 고구려인들은 수놓은 비단옷과 비단 띠를 입고 다닌다고 설명하고 있다. 진나라, 수나라, 당나라가 잠태현(蠶台縣)이 있는 부상국(扶桑國)의 나라 고조선과 고구려를 끊임없이 침략한 것은 바로 실크 때문이다. 당서는 백제실크문화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기록됐다. 신라는 계급에 따라 실크옷을 입고 다니는 기준이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왕과 평민까지 실크옷의 기준이 기록돼있다. 신라(新羅)는 새로운 실크를 생산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코리아를 세계만방에 알린 고려(고구려=코리아)의 수도 개성과 벽란도 항구는 500여년간 외국상인들로 북적였다. 고려자기와 인삼 그리고 비단은 세계시장에서 최고 인기상품이었다.

그러면 컬러풀 코리아가 왜 백의민족으로 전락했는가? 조선의 억상정책과 공자를 하느님 수준으로 떠받는 유교문명 때문이다.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1000년을 지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연구토록 했다. 얼마 후 나온 작품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억상정책’, ‘억불정책’, ‘숭유정책이다. 정도전은 상공업이 발달하면 정권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억상정책과 함께 모든 경제적인 가치가 화폐가 아닌 농토로 평가되는 사회시스템을 건의했다. 그리고 한양천도까지. 국제도시 개성이 평범한 지방 도시로, 벽란도가 동네포구로 전락했다. 조선은 평민들에게 염색한 옷을 입지 못하도록 했다. 나라 전체가 백의민족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조선시대 양반사회에는 돈을 천시해 젓가락으로 집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조선말기 서양 사람들이 코리아에 와서 처음 느낀 것은 하얀 옷과 오랜 세도정치의 폭정에 시달린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 ‘백의민족으로 불렀다. 삼강오륜만 철칙으로 가르친 유교문명이 결과는 검은색 곤색복장으로 이어졌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온 첫인상은 모두 표정이 화난 사람같고, 복장이 검은색과 곤색 일변도로 어둡다고 한다. 이제 상가집복장을 벗어던지고 우리 고유의 컬러풀한 나라로 바꾸자. 그래야 한다.

경제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 초(14세기말) 1인당 국민소득은 대략 1달러였다. 1910년 조선이 망할 당시도 1달러. 시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등에 따르면 중세시대 고려와 송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컬러플 코리아 ‘익사이팅 코리아DNABTS뿐만아니라 대기업에서 살아나는 것 같다. 참으로 기쁜 일이다. 검은색과 곤색 일색의 상가집 같은 복장 같은 구조로는 안 된다. 스티브 잡스의 상징은 청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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