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경의 야생화 산책] 화려한 색감 뽐내는 바람난 여인, 얼레지

백합과 여러해살이 식물…만개하면 꽃잎 뒤로 말아 올리는데, 치마 뒤집어 쓴 여인의 모습 연상

꽃잎이 뒤로 젖혀진 모습은 치마를 뒤집어 쓴 조선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사진=조용경

이른 봄, 우리나라 전역의 비교적 높은 산, 계곡 주변의 양지 바른 곳을 다니다 보면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면서 분홍색 꽃잎을 뒤로 젖힌,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꽃들을 무더기로 만날 수 있습니다. 

‘얼레지’입니다. 저는 활짝 핀 얼레지를 볼 때마다 조선 시대에 살았던 비운의 여인 ‘어우동’을 떠올리곤 합니다.

절세미인으로 탁월한 학문까지 겸비한 양반가의 여인 어우동이, 눈을 찌를 듯 화려한 차림으로 물가에 나와 앉아서, ‘이 좋은 봄날을 함께 즐기자’며 약간은 도도한 모습으로 손짓해 부르는 듯한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얼레지는 외떡잎식물이며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입니다. 

얼레지는 잎이 얼룩얼룩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사진=조용경

땅 속 깊이 있는, 길쭉한 계란 모양의 알뿌리에서 2장의 타원형 잎이 나오는데, 그 잎에 얼룩얼룩한 무늬가 있어서 얼레지로 이름 지어졌다고 합니다.

3월 말에서 4월에 걸쳐 그 두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나오고, 그 끝에 분홍색의 꽃 하나가 아래쪽을 향하여 달립니다. 

꽃잎은 바소꼴로 여섯 장이며 분홍색 혹은 자주색인데, 꽃의 밑부분에 W자 형의 무늬가 선명합니다. 그 끝에 꿀샘이 있다고 하는군요. 

만개하면 금세 꽃잎을 뒤로 말아 올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여인이 치마를 위로 젖히고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얼레지의 꽃말이 ‘바람난 여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이 속절없이 홀로 피었다 진다는 건 참 가슴아픈 일 같기도 합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다. 정말 화려하다. 사진=조용경

조상주 시인은 ‘그 꽃 얼레지’ 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남들이 봐주지 않아도 / 살펴주지 않아도 / 더욱 진한 향기로 피어나는 꽃 / 제 몸보다 큰 꽃잎을 피우느라 / 며칠 되지 않아 시들어가는 / 자수정 빛깔 그 꽃, 얼레지 / 몰랐었네 / 옆의 조그만 바위 하나 / 변함없이 그 모습 /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얼레지를 보고, 이 시를 읽으면서, 나중에 다른 세상에서 내가 그 '조그만 바위'로 태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얼레지는 이른 봄에 어린 잎을 따서 말린 다음 꽃과 함께 산나물로 먹는데, 예전에는 보릿고개 때 인경(줄기뿌리)을 캐서 국수를 해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예전 보릿고개 때는 구황식물의 역할을 톡톡히 해 준 고마운 식물이기도 합니다.

조용경 객원기자 / hansongp@gmail.com  
야생화 사진작가  
(사)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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