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발전이 기업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AI는 공급망, 물류, 사이버 보안, 시장 분석 등 다양한 분야를, 언제나 가동이 가능한 ‘24시간 경제’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AI가 주도하는 경제로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를 넘어, 기업의 생존 전략을 다시 쓰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AI의 주도로 지연 없이 상시 운영되는 시장에 적응해야 한다.
기업들은 AI로 만들어진 '항상 돌아가는 경제(always-on economy)' 시대에 대비해, 업무 프로세스를 대대적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지적하고 나섰다. AI와의 협업 속도가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할 수 있다.
WSJ에 따르면, AI의 발전에 따라 고객은 이제 기업으로부터의 즉각적인 대응을 기대하게 됐다. 지연은 비즈니스의 기회 상실로 이어진다. 기업들은 AI와의 협업을 최적화해 새로운 업무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부터 사이버보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AI는 인간과 달리,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고민하지 않는다. 피곤하거나 배고프지 않으며, 병가를 내거나 휴가를 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거나 집에 가는 길에 장을 보지도, 아이들에게 잠자리 동화를 읽어주지도,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지도 않는다.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의 파트너 콘스탄틴 뷸러(Konstantine Buhler)는 WSJ에 “AI는 시간과 역량의 제약을 허물며 자동화를 제공해, 비즈니스의 24시간 연속성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2년 세쿼이아와 가상화폐 투자사인 패러다임이 고강도 트레이딩 기업인 시타델 증권에 11억5000만 달러(약 1조 6520억 9000만 원)를 투자할 때, 쉬지 않고 운영되는 알고리즘과 AI를 금융 시장에 적용했다.
클라우드 콘텐츠 관리 기업인 박스(Box)의 CEO 에런 레비(Aaron Levie)는 때로 오후 10시나 11시쯤 퇴근하며 시장 전략 분석 등의 연구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여러 AI 에이전트 중 하나에 넘긴다. 이 AI 에이전트는 시장 보고서, 경쟁사 웹사이트, 업계 출판물, 소셜미디어상의 대화 등 다양한 출처의 데이터를 수집해 해당 주제에 대한 종합적인 개요를 만들어낸다. 레비는 아침에 첫 업무로 이 결과를 확인하는 등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레비는 “예전에는 한밤중에 애널리스트에게 이런 작업을 맡기고 아침에 결과를 받는게 거의 불가능했다. 인간의 이같은 한계는 종종 의사 결정 지연과 기회 상실로 이어진다”고 WSJ에 말했다.
고객 서비스 분야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이 중요해지면서 AI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 요구에 대응할 때, 지연 시간이 없는 ‘제로 레이턴시(Zero Latency)’를 추구한다. AI에이전트 회사인 알타(Alta)의 CEO인 스타브 레비 노이마크(Stav Levi Neumark)는 “고객은 이제 24시간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기대한다”며 “1분의 지연도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AI와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한 조직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뉴욕대 경영대학의 코너 그레난(Conor Grennan) 교수는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AI를 활용한 업무 혁신에서 나온다”며 “24시간 경제에서 워크플로우, 역할, AI와의 협업 능력을 최적화하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플랫폼회사인 펜도(Pendo)의 공동 창립자 겸 CEO인 토드 올슨(Todd Olson)은 "핵심 원칙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기업들은 새로운 업무 리듬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간 또는 월간 회의로 큰 결정을 내리는 오랜 습관을 줄이고, 슬랙(Slack) 같은 플랫폼에서 더 빠르게 소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