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에스케이(SK)하이닉스 직원들의 올해 1인당 성과급은 약 50만 달러(약 7억 1415만 원). 미국 골드만삭스 직원들의 보너스를 포함한 지난해 총 보상 40만달러(약 5억 7120만 원)를 크게 웃돌았다. 하이닉스 직원들의 내년 예상 성과급은 80만 달러(약 11억 4264만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시대의 돈벼락을 맞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2030년대까지 공급을 계속 웃돌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고객들의 엄격한 투자 약속이, 생각만큼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투자자들에게 “고객들이 미리 계약금을 지급하고 장기간 구매를 약속했기 때문에 향후 수년간의 실적은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계약도 경기나 시장 상황이 바뀌면 얼마든지 재협상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들은 ‘돈 찍어내는 곳’에서 ‘돈 태워버리는 곳’으로 변해왔다. 알파벳(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년에는 합산 기준으로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에서 사업 유지 및 확장에 필요한 자본적 지출 등을 제외하고 남은 실제 현금)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시장은 예상한다.
이유는 단 하나. 데이터센터에 이들 기업이 터무니없는 거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진짜 부는 그러나 이 기업들의 도박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내년에는 세 개의 기업이 각각 무려 2000억 달러(약 286조 1600억 원)가 넘는 잉여현금흐름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첫 번째 기업은 AI 연산에 필요한 최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설계하는 미국 기업 엔비디아다.
나머지 두 곳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이 두 회사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지배해 왔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에서도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이 횡재한 돈은 기업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가 간 현금 이동’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주식시장에 열광하기 시작한 한국은 이제야 절실히 깨닫고 있다. 주가는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6월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41%, SK하이닉스는 52%가 각각 폭락했다. 이 여파로 한국 증시에서는 약 1조2000억 달러(약 1714조 5600억 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는 소수 대형 반도체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국 증시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특히 SK하이닉스는 20% 이상 급락했다.
놀랍게도 그 이유는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시장에서는 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무려 6배 증가했음에도, 그 정도 성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 삼성전자의 주가 변동성은 닷컴버블 이후 가장 큰 수준까지 확대됐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극단적 국가 자본주의와 극단적 시장 투기가 혼재하는 보기 드문 실험장이라고 평가했다.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이후, 지난해 현 대통령이 국민을 격려하기 위해 주식시장 상승을 공개적으로 독려하기도 했다는 것.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증시를 자신의 성과처럼 홍보했던 것처럼, 익숙한 장면이라고 부연했다. 그 결과, 한국의 대표 주가지수인 코스피는 정부가 제시했던 목표 수준까지 빠르게 상승했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보험회사와 은행에 맡겨 두었던 자금을 대거 인출해 주식시장으로 옮겼다.안전자산보다 주식 투자가 더 큰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것.
반도체 기업 직원들도 AI 호황의 과실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노조는 미국 월스트리트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쟁의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결국 회사와 노조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파격적인 합의에 도달했다.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올해 직원 1인당 성과급이 약 50만 달러, 내년에는 80만 달러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직원들의 지난해 평균 총보수인 약 40만 달러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한국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그런데 이제는 시장 과열에 대해 사실상 사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시장 상승을 독려했던 정책이 급락 이후에는 오히려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불과 4월만 해도 금융당국은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허용했다. 이 상품은 파생상품을 활용해 특정 종목의 하루 수익률을 두 배, 세 배 등으로 확대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 주가가 하루 1% 오르면 투자자는 2%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주가가 10% 하락하면 손실 역시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된다. 주가가 10% 떨어지면 투자자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질 수도 있다.
6월 들어 주가 하락이 시작되자, 증권사 계좌에는 대규모 마진콜(Margin Call)이 발생했다. 추가 증거금을 납부하지 못한 투자자들의 계좌가 수천 개씩 강제 청산되면서 시장의 하락 압력이 더욱 커졌다. 금융당국은 결국, 새로운 레버리지 ETF의 출시를 잠정 중단시켰다.
7월 29일 긴급회의에서 정치권은 이러한 레버리지 ETF의 활용을 대폭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정치인은 현재의 한국 증시를 “카지노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AI 열풍이 투자보다는 투기에 가까운 양상으로 변질됐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점은 폭락이 반도체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백화점 주가 역시 반도체 기업만큼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 투자자들은 앞으로 명품 핸드백과 고가 소비재가 매장 진열대에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성과급과 자산 효과가 사라지면, 소비도 급격히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한국 투자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단 하나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언제 정점을 찍을 것인가?” 이 질문의 답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한국 증시, 그리고 한국 경제의 향방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의 건설 붐과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의 성장으로, 메모리 수요가 2030년대까지 공급을 계속 웃돌 것이라고 낙관론자들은 주장한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GPU뿐 아니라 HBM, 더블데이터레이트(DDR), 고용량 디램, 고성능 솔리드스테이트디스크(SSD)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봇 산업 역시,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위해 고성능 메모리가 필요하다. 이들은 AI 시대가 시작된 만큼 기존 반도체 경기 사이클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투자자는 전혀 다른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반박했다. 메모리 반도체 역시, 역사상 모든 원자재가 겪었던 사이클을 똑같이 반복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높은 가격은 새로운 공급을 불러오고, 새로운 공급은 결국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메모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미다.
향후 1~2년 안에 새로운 메모리 공급 능력이 시장에 추가되면, 가격과 이익은 하락한다. AI 수요가 계속 증가하더라도 공급 증가 속도가 더 빠르면, 가격은 결국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아찔하게 상승했음에도, 예상 이익 대비 주가(PER)는 여전히 한 자릿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성장산업은 보통, PER 30~50배를 받는다.)
이는 현재의 막대한 이익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시장이 판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투자자들은 이미 기업 이익이 정점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AI가 약속한 막대한 부를 가장 먼저 누린 나라가 그 부를 가장 먼저 잃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공급망의 특정 한 부분에 모든 이익이 집중되는 산업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AI 산업 역시 언젠가는 초과이익이 공급망 전체로 분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한국 메모리 거대기업들이 직면한 위험이 비단 메모리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AI 산업 전반에서도 똑같은 위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위험은 범용화(Commoditisation).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범용 메모리 사업은 중국 업체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 실제로 최근 중국 메모리 기업 가운데 한 곳은 대규모 관심 속에 상장했다. 마찬가지로 미국 AI 모델 기업들도 중국의 오픈소스 AI 모델이라는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경쟁자와 마주하고 있다.
AI 산업이 직면한 두 번째 위험은 고객들의 엄격한 투자 약속이 생각만큼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투자자들에게 장기 공급 계약을 강조해 왔다. 고객들이 미리 계약금을 지급하고 장기간 구매를 약속했기 때문에 향후 수년간의 실적은 안정적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일부 신중한 투자자들은 이러한 계약도, 경기나 시장 상황이 바뀌면 얼마든지 재협상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즉, ‘장기계약’이 반드시 미래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또 하나의 문제를 우려한다. AI 모델 개발 기업들이 경기 침체나 시장 조정 국면에서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을 축소하거나 해지하려고 할 경우다. 현재 체결된 임대 계약이 과연 얼마나 법적으로 강력하게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AI 투자 경쟁 때문에 모두가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만약 AI 투자 열기가 식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메타가 추진 중인 대규모 오프밸런스시트(off-balance-sheet. 대차대조표에 자산·부채로 직접 인식되지 않지만, 향후 현금흐름이나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는 약정·우발채무·파생상품·장기사용계약 등)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막대한 부채를 수반하고 있어 시장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장부에 직접 반영되지 않는 방식으로 조달된 자금이 많다는 점에서, 향후 AI 투자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재무 부담은 예상보다 크게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처럼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엔비디아는 시장을 지탱하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AI 산업의 거의 모든 논쟁에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오픈소스 AI 모델을 지지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해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시장이 더욱 주목하는 것은 그의 발언보다, 엔비디아의 투자와 자금 지원 능력이다. 젠슨 황은 AI 산업의 호황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거대한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그는 단순히 GPU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금융적 지원과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엔비디아가 챗지피티 개발사인 오픈AI의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 약 2500억 달러(약 357조 4500억 원) 규모를 보증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또 주말에는 하이닉스와 약 5000억 달러(약 714조 9000억 원) 규모의 협력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은 이러한 대규모 발표에도 이전만큼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젠슨 황의 역할은 시장에 개입하는 중앙은행 총재와 비슷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고 있다. 그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더 많이 개입할수록, 오히려 투자자들은 시장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언젠가 AI 투자 열기가 꺼질 때의 충격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경고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