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철도공단(KR)의 차기 이사장 선임 절차가 특정 인사를 앉히기 위한 ‘맞춤형 요식행위’로 흐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서류심사 과정에서 면접 대상자를 비정상적으로 축소하고 유력 후보들을 대거 배제하면서, 사실상 특정인을 내정한 상태에서 절차를 끼워 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인 탈락’ 구조의 기이한 설계… 검증은 뒷전?
22일 철도 업계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철도공단 임추위는 신임 이사장 공모에 지원한 15명의 후보자 중 6명을 면접 대상자로 압축했다. 공공기관장 인선에서는 면접 대상자를 9~10명 수준으로 선정하는 것이 관례다. 이는 최종 추천 인원의 2~3배수로, 경쟁성과 검증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통상적 조치다.
하지만 이번 임추위는 이를 6명으로 대폭 제한했다. 최종적으로 국토교통부에 추천될 인원은 5명으로 정해졌다. 이를 고려하면, 면접은 사실상 6명 중 단 1명만 떨어뜨리는 ‘통과 의례’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후보 간 비교·검증 기회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사전에 설계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철도업계의 한 관계자는 “15명이 지원했음에도 면접 대상자를 6명으로 좁힌 것은 이례적”이라며 “유력한 경쟁자들을 서류 단계에서 미리 솎아내고, 특정 인사가 안전하게 최종 명단에 들 수 있도록 판을 짠 것일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서류단계에 탈락한 인사들의 면면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15명의 지원자 가운데는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전 철도공단 부이사장, 전 국토교통부 철도안전정책관
등 국장급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철도 정책·행정 전문성이나 공공기관 경영 경험 측면에서 이사장 직무 적합성이 충분히 인정되는 인물들로 업계에서 꼽혀왔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누가 떨어졌느냐를 보면, 누구를 뽑으려 했는지가 자연히 드러난다”며 “이번 심사는 경쟁이 아니라 배제의 과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임원추천위원회 운영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내부 전언에 따르면 심사 과정에서 공단 추천 심사위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일부 위원들이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후보에 대한 선호가 간접적으로 전달되며 심사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전언이 사실일 경우, 임추위가 독립적인 심의기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정 공급업체 사외이사가 수장? ‘이해충돌’ 논란
특히 ‘내정설’의 중심에 서 있는 특정 후보의 행보도 도마 위에 올랐다. ㅂ씨는 철도공단이 발주하는 각종 차량 및 시스템 사업의 핵심 공급사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단과 직접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민간 기업측 인사가, 철도 건설과 관리를 총괄하는 공기업의 수장 자리에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이해충돌’ 방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단 일각에서는 “청렴도와 윤리 경영을 강조해야 할 시점에, 특정 업체와 유착 의혹을 살 수 있는 인사를 후보로 올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성토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유력 후보는 고위공무원 재직 시절, 식사 자리에서 동석한 여성 기자에 대한 부적절한 신체 접촉 논란으로 직위 해제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후보의 경우, 철도 분야 실무 경험이 전혀 없는 외부 인사라는 점 때문에 전문성 부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쇄신 분수령인데, ‘전관예우·조직 갈등’ 논란 계속
이번 인사가 갖는 무게는 단순한 기관장 교체의 차원을 넘어선다. 철도공단은 최근 수년간 시스템본부 해체에 따른 조직 혼란, 잇따른 중대재해, 2023·2024년 국토부 안전관리 수준 평가 '미흡'·'매우 미흡' 연속 수령, 내부 비리 사건 등으로 누적된 위기에 빠져 있다.
전임 이사장은 국무조정실 감찰이 진행되자 임기 2년을 남긴 채 퇴임했다. 특히 전임 체제에서 단행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중심의 조직개편이 시스템 전문성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차기 수장에게는 고강도의 인적 쇄신과 전문성 회복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선 과정에서 보여준 폐쇄성과 부실심사 정황은 이러한 개혁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제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인사가 한국 철도 산업 전체의 안전과 신뢰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철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절차적 정당성이 의심받는 인사는 취임 초기부터 조직 장악을 어렵게 하고, 경영동력을 상실시킬 수밖에 없다”며 “국토부가 이번 임추위 심사의 적정성을 엄중히 따져보고, 의혹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절차를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철도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정부 기조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관련업계의 이목이 국토교통부와 청와대의 최종 선택에 쏠리고 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