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규의 데이터읽기] 한글과컴퓨터 연간 매출이 얼마나 될까요?
비 IT업계 사람을 만났을 때, 가끔 던지는 질문이다. 워드프로세서 '한글'에 애국심까지 집어넣었으니, 이 회사 이름 웬만하면 다 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대 섞은 답이 나온다. "1조쯤 하나?"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인다. 그러면 한 풀 꺾여, "흐음...그럼 5000억?" 또 한 번 웃어준다. 5000억도 안된다는 사실에 실망한 듯, "에이, 그래도 1000억은 넘겠지."
1990년 10월 9일 한글날 창업한 순수 SW업체 한글과컴퓨터는 2015년 849억원의 매출에 27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2014년 758억원, 2013년 685억원, 2012년 656억, 2011년 569억, 2010년 469억원으로 매년 매출은 성장하고 있으나, 여전히 1000억 원 고지는 멀다. 올해 예상 매출역시 900억 원대다. 특단의 정책, 영업 마케팅에 있어 파괴적 혁신, 시장을 보는 시각적 한계를 벗어 던지지 않는 한 매출 1000억원을 넘기는 것은 버거워 보인다.
순수보안SW업체 안랩은 어떨까. 사회적 기업의 역할까지 해 보려 했던 창업 이념과 경영철학 덕에 창업자가 대선후보 정치인이 될 만큼 주목 받은 회사. 2010년 735억원 매출에 66억원의 영업이익, 2011년 1029억원과 96억원, 2012년 1316억원에 128억원, 2013년 1373억원에 39억원, 2014년 1354억 원에 90억 원, 2015년 1345억 원에 120억 원이다. 매출 1000억대를 넘겼으나 영업이익 규모를 보면 세월 속에 겪었을 심한 부침이 읽힌다.
두 회사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SW업체다. 그러나 창업 20년이 넘는 숭고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숫자에는 대한민국 SW 정책의 한계와 척박한 시장환경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 사실을 안타깝다 해야 할까.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순수 보안SW업체 파이어아이는 2004년 안랩보다 10년 늦게 창업했다. 이 회사는 창업 10년째인 2014년 3월 시총 기준 세계 보안기업 중 3위에 올랐다. 2012~2014년 3년간 딜로이트가 선정한 북미 지역 고속 성장 500대 기업에 연속 꼽혔다. 세계 보안 시장 침체에도 이 회사는 2016년 1분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 늘었다. 분기매출만 1억6800만 달러, 우리돈 1850억 가량이다.
이쯤 되니 안타까운 게 아니라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발표한 '2014 SW 1000억 클럽'을 보면, 2013년 국내 SW업체 중 매출 1000억원 이상은 73개사, 300억원 이상은 172개사다. 그럴 듯해 보이는데, 말 안되는 통계다. 조 단위 이상은 시스템통합(SI)업체 5개사, 인터넷서비스업체 2개사, 게임업체 1개다. 순수 SW업체는 없다. 매출 100억원 이상 기업 중 SI업체가 197개사, IT솔루션(패키지) 149개사로 전체 73%다.
매출 하위로 갈수록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가장 근접한 통계인 2011년 말 기준(정보통신산업진흥원. '2012 소프트웨어산업 연간보고서), 7000여개의 국내 SW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연 매출 50억원 이하 업체가 82.6%다. 10억원 이하는 50.5%다.
50%의 생태계가 1%의 존재를 가능케 한 것인가. 냉정하게 보자.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야전침대에서 시린 밤 새며 연구에 몰두하는 눈물겨운 투쟁도 있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철학 없는 정부 정책의 우산 아래서 적당히 줄 대며 미래 비전 없이 근근이 연명한다.
언젠가는 산업 구조를 바라보는 정책 당국의 철학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 시점은 지금이다. 대통령까지 SW 중심사회를 외치고 있으니. 풀뿌리 강소기업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기술개발에 소홀하고 정부 지원의 햇볕 아래서 달콤함만 즐기는 업체들은 걸러 내자. 100에게 나눠줄 것 50으로 줄이고, 글로벌 탑 10, 탑3가 성장할 수 있는 새 경쟁정책이 필요하다.
[데이터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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