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 중립성’에 이어, ‘금융 데이터 중립성’ 논쟁 점화”

FT, “JP모건 등 은행권의 ‘API제공 유료화’ 요구로 핀테크업계 발칵”

미국 최대 은행인 제이피모건이 핀테크 업체들에게 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제공을 유료화하겠다고 발표, 글로벌 금융권에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API는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간의 정보를 주고 빋는 통로자사의 고객 데이터 접근에 대해 비용을 부담시키겠다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의 무료 오픈뱅킹정책이 흐지부지된 가운데, 은행들은 자산화된 고객 정보를 지렛대 삼아 수익화를 꾀하고 있다.

 

이에대해 핀테크업체들은 데이터 중립성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나섰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넷플릭스 등이 과거 2010년대 초중반 통신사들에 대해 ‘네트워크 중립성을 주장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로인해, 금융사들이 보유한 데이터가 공공재인지, 사적 자산인지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같은 과금에 대해 핀테크 업계는 혁신의 위축을 내세우는 반면, 금융권은 비용문제와 오남용방지를 주장하고 있다.

 

데이터 무료공유는 제이피모건에 앞서, 트위터도 중단한 바 있다. 일론 머스크에 인수된 직후였다. 그는 트위터가 다른 기업의 개발자들에게 사용자 데이터를 공짜로 이용하게 하던 관행부터 없앴다. API 무료 공유는 당초 트위터의 생태계를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트위터 자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머스크는 트위터의 데이터를 유료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장 수익이 더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FT에 따르면, 미국 은행업계는 머스크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제이피모건은 이전에 무료로 제공하던 API를 데이터 수집업체와 핀테크 스타트업들에게 유료로 판매할 계획이다. 플레이드(Plaid), 파이서브(Fiserv), 인투이트(Intuit) 등 일부 핀테크 기업들은 자사 연 매출의 60~100%에 해당하는 데이터 요금 청구서를 제이피모건으로부터 받았다.


이는 규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 과거 바이든 행정부는 은행이 데이터를 무료로 공유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현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정책을 보호하기 위한 소송을 최근 철회했다.


정치적 상황은 복잡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트럼프 지지자들은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에 회의적이다. 대신, 오픈 뱅킹(Open Banking)을 통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적극적이라고 FT는 지적했다핀테크 업계는 이 조치가 가상화폐 산업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부각시키며, 관련 규제 철회를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블록체인협회, 크립토혁신위원회 등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개입을 요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백악관의 영향력 있는 가상화폐 자문인 데이비드 색스도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제이피모건의 결정에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핀테크 편에 섰다.


반면, 기득권을 가진 대형 은행들은 자신들의 권력 기반인 고객 데이터를 순순히 내놓는 데 소극적이다. 그들은 금융데이터를, 요청하는 쪽에 제공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API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데이터의 과도한 소비가 일어났다고 대형은행들은 보고 있다. 가격을 매기면 보다 효율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반대 측은, 금융 산업의 경쟁으로 새롭게 탄생한 핀테크 기업들이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FT에 따르면, 10여 년 전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은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을 주장했었다. 이는 인터넷 인프라를 보유한 기업들에 대해, 돈을 더 내지 않는 콘텐츠 제공자(CP)를 상대로 대역폭을 제한하지 못하게 하자는 원칙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금융권에서는 은행 고객의 데이터가 사회 인프라인가, 아니면 사적 기업 비밀인가의 주장 문제라고 FT는 지적했다. 결국 그 판단은 정치 권력이 쥐고 있다는 것.


제이피모건은 시가총액이 8000억 달러(11117600억 원)에 달하는 거대 은행이지만, 핀테크나 사모 신용회사들과의 경쟁 방식에 대해 종종 고민해왔다. 때때로 상업적 조건을 통한 협력이 양측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경험도 있다. 결국 은행과 스타트업은 마지못해라도 타협점을 찾게 될 것이라고 FT는 전망했다.

권세인 기자

[ⓒ데이터저널리즘의 중심 데이터뉴스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