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급격한 확산에 따라, ‘정규직(full-time job)’이라는 개념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사인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이, AI의 도입에 따른 인력 운용의 혁신을 단행해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내부 직원들을 SC은행은 마치 프리랜서 같은 ‘긱 워커(Gig Worker)’로 활용하고 있다. 사내 플랫폼인 ‘탤런트 마켓플레이스(Talent Marketplace)’ 시스템을 통해서다. 이는 직원들이 기존 직무와 무관한 임시 프로젝트, 즉 ‘긱(Gig)’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WSJ에 따르면, SC은행에서는 ‘탤런트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직원들이 사내 ‘긱’을 수행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기술이 인력 구성을 뒤엎는 시대에 다른 기업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얻고 있다.
SC은행에서 전통적인 정규직의 개념은 점점 더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WSJ은 강조했다. 이 글로벌 은행은 AI 시대에 맞춰 인력을 재편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여전히 각자의 직함과 직무 설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은행 내에서는 채용된 본래의 직무와는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임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긱 워커처럼 행동하고 있다.
“AI 도구를 통해 인적 자본을 훨씬 더 생산적일 수 있도록 재배치하고, 새로운 AI 배포 속도를 높이는 데에 이 유연한 접근방식이 중요하다.” 사내 ‘탤런트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중재되는 이 방식에 대해 SC은행의 최고 전략 및 탤런트 책임자(Chief Strategy and Talent Officer)인 타누즈 카필라슈라미의 설명이다. “전통적인 일자리라는 개념은 점점 덜 중요해질 것이다. 개인은 직함이나 직무설명으로 생각할게 아니다. 역량(Skill)의 집합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WSJ에 말했다.
전반적으로 기업들은 전통적인 내부 조직도에서 △역량을 계층화하는 방식과 △AI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 사이에 불일치를 겪고 있다. 기업들은 AI가 일자리를 크게 없애고, 새롭게 창출도 해, 변화시킬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보유한 직원들을 어떻게 가장 잘 활용하고 새로운 역할에 맞춰 재교육할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WSJ는 밝혔다. 모더나 같은 기업들은 단순히 직원들의 역량뿐만 아니라, AI 도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SC은행처럼, ‘사내 역량의 마켓플레이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목하라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경영 및 조직학 부교수인 하팀 라만은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주요 이점은 직원 유지(employee retention)다. 조직 내에서 △유연하게 움직이고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직원들은, 기회를 찾아 이직할 가능성이 낮다고 그는 말했다. 또한, 이 마켓플레이스는 AI가 급속히 도입되는 상황에서 업무를 재할당하는 데에도 “부차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2020년에 설립된 SC은행의 마켓플레이스에 따른 ‘긱 워크’는 850만 달러(약 121억 9665만 원) 이상의 가치 창출에 기여했다고 카필라슈라미는 밝혔다. 과거에는 인력 부족이나 긴 채용 절차로 인해 미뤄졌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가능해졌기 때문.
이 탤런트 마켓플레이스에서 직원들은 기본 프로그래밍이나 커뮤니케이션 같은 분야의 ‘긱’을 게시하고 신청할 수 있다. 현재 SC은행의 글로벌 직원 중 60%가 이 플랫폼에서 활동하고 있다. 긱 프로젝트는 정규 근무 시간 내에서 최대 8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직원들은 추가 수당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를 기회로 여긴다. 노동 시장이 변화하는 시기에 특히 중요한 네트워킹과 새로운 역량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카필라슈라미는 WSJ에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 마켓플레이스가 과도한 채용 대신, 보유한 역량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업무가 생겨날 때, ‘새로운 정규직이 몇 명이나 필요할까?’라고 성급하게 묻지 않는다. 대신, 이 역량을 ‘구축(build)할까?’ ‘구매(buy)할까?’ 아니면 ‘빌릴(borrow)까?’에 대해 매우 명확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탤런트 마켓플레이스는 또한, △자산 관리, △고객 자문, △마케팅 같은 분야에서 회사가 AI의 새로운 활용 사례를 구축하고 출시하는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WSJ는 진단했다.
물론, 핵심적인 AI 엔지니어링 능력은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AI 도입을 개선하고 가속화할 수 있는 다른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카필라슈라미는 지적했다. 여기에는 규제, 준수, 윤리 또는 특정 산업에 대한 전문 지식이 포함된다.
AI 분야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싶은 기업들은 ‘채용이 필요한 곳’을 알기 전에 할 일이 있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바로, 현재 보유한 인력의 역량에 대해 총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최고의 기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은 특히 요즘,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 인재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며 “기업이 단순히 외부 인재를 ‘돈 주고 사는 방식’으로는 AI 시대의 비즈니스 전환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그녀는 WSJ에 경고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