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인한 부의 불평등 해소 위해, 재분배 아닌 ‘사전분배’ 도입을”

FT,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보편적 투자펀드’로, 생산성 혜택 다수가 누리게”

인공지능(AI) 기술의 확산은 노동의 수요를 감소시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간의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AI 경제 전반의 주식을 보유하는 ‘보편적 투자 펀드(Universal Investment Funds)’가 필요하다는 칼럼을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게재했다. 특히 사회 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의 전통을 가진 유럽이 선도해, AI 혁명의 혜택을 다수가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

향후 수십 년 동안, 유럽 국가들은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AI경제가 될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회계에서 식료품점, 공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업에 AI 기술이 확산하기 때문이다. 부의 창출과 생산성의 성장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자리 및 소득과는 점점 더 분리될 것이다. 노동의 가치가 감소함에 따라, 경제적 격차는 가속화될 것이다.

기술을 직접 소유하거나 투자를 통해 소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 격차는 필연적으로 커질 것이다. “AI 혁명으로 인해 상위 1~10%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 반면, 사람들 다수는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브리지워터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는 최근 경고했다. 부를 공유하는 어떤 형태의 분배가 없다면, 분열된 우리 사회는 더욱 간극이 커질 것이라고 FT는 우려했다.

오늘날 전 세계 부의 불평등 격차는 주로, 금융 투자를 보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격차에 의해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상위 10%가 전체 주식의 93%를 소유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전체 부의 거의 60%를 소유하고 있다. 하위 50%는 단지 5%만을 소유하고 있다.

AI 시대의 정책은 이러한 역동적인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일부 사람들은 ‘보편적 기본 소득(Universal Basic Income)’ 개념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재분배적 이전’에 불과하다고 FT는 비판했다. 여기에 대안적인 개념은 ‘보편적 기본 자본(Universal Basic Capital)’이다. 

이는 미래의 디지털 경제에 더 적합하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기술에 대한 투자로부터 가치를 얻도록 초대한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재분배(redistribution)’가 아니라 ‘사전 분배(predistribution)’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주요 수단은 ‘보편적 투자 펀드’일 것이다. 모든 시민은 AI 경제 전반의 주식을, 개인 또는 가족 계좌를 통해 참여하게 된다.

호주의 퇴직연금(superannuation) 프로그램은, 복리의 수익이 창출하는 부를 잘 보여준다. 이는 고용주와 노동자들의 기여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보충 연금 제도다. 규제 완화로 인한 경제의 생산성 성장을 포착하기 위해, 호주 노동당의 총리 폴 키팅이 1992년에 시작했다. 이 저축 풀은 현재 거의 4조 2000억 달러(약 6045조 600억 원)로 성장해, 호주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커졌다. 이 돈은 호주를 비롯한 전 세계 자산에 투자된다. 특히 인프라에 투자돼, 장기 자본 수요와 잘 맞는다. 이 투자 수익 덕분에 호주는 성인 1인당 평균 부가 55만 달러(약 7억 9183만 5000원)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미국 의회는 소위 ‘성장과 발전을 위한 자금 계정(Money Accounts for Growth and Advancement)’을 통해 ‘보편적 기본자본’의 첫걸음을 시작한다. 이 계좌는 2024년 12월 31일 이후부터 2029년 1월 1일 이전에 태어난 모든 미국 시민에게 자동 가입으로 1000달러(약 143만 9700원)를 지급한다. 이르면 2026년 7월부터 개시된다. 18세까지 인출이 금지되는 확정기간 동안, ‘에스앤피(S&P) 500(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00대 기업들의 주가 성과를 추적하는 주가지수)’에 투자된 모든 소득은 세금 혜택을 받는다. 가족은 이 계좌에 연간 최대 5000달러(약 719만 8000원)를 추가로 불입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들과 유사한 여럿의 ‘베이비 본드(baby bond)’ 제도가 시행됐다. 영국의 아동 신탁 기금(Child Trust Fund)은 토니 블레어가 2003년에 시작해 2011년에 종료됐다. 저축 장려 측면에서 이는 성공적이었다. 운영기간 동안 630만 개의 계좌가 개설됐다. 2021년 4월 기준으로 총 시장 가치는 105억 파운드(약 19조 8440억 5500만 원)였다. 이중, 정부 기여금은 20억 파운드(약 3조 7787억 6000만 원)에 불과했다. 

독일은 2026년에 저축과 투자 위험 감수를 장려하기 위해 ‘조기 시작 연금(early start pension)’ 계좌를 시작한다. 6세부터 18세까지의 모든 아동은 자본 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매달 10유로(약 1만 6570.9 원)를 받게 된다.

유럽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 마리오 드라기는 △국가 분열을 완화하기 위한 단일 시장 강화, △기업 규모 확대를 위한 인수합병 규정 완화, 그리고 △유럽연합 차원의 부채 발행을 통해 매년 8000억 유로(약 1325조 6320억 원)의 투자를 요청했다. 드라기는 차입한 수십억 유로(수 조원)를 보조금과 투자, 특히 기술 분야에 ‘목표 지출’을 하자고 했다. 이렇게 되면, 유럽연합 전반의 총요소 생산성이 2% 증가해 유럽이 중국 및 미국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한다.

드라기의 계획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의 ‘유럽 주권 기금(European Sovereignty Fund)’ 제안과 결합될 수 있다고 FT는 강조했다. 이 기금은 시민들을 위한 투자 계획이기도 하다.

이 기금이 시드머니가 된다면, 평범한 유럽인들도 기술 및 상승하는 생산성의 이익을 직접 공유할 수 있다. 이 계획은 심지어 바티칸의 축복까지 받을 수 있다. 교황 레오 14세는 교황으로서의 첫 발언에서 “AI 시대의 분배 정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1891년에 그의 전임자 레오 13세가 발표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교황 연설은 산업 혁명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에 맞서 싸우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소유자가 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주장했다. 이는 사실상 ‘보편적 기본자본’에 대한 요구였다.

AI 혁명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사회 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 경제의 전통을 지닌 유럽이, AI 혁명의 결과에 ‘패자보다 승자가 더 많도록’ 보장하는 데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 시민들은 AI 혁명의 혜택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단순한 수혜자가 돼서는 안된다. 시민들은 미래의 AI 역량중 일부를 ‘소유’할 필요가 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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