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사무직과 생산직 인력의 대체뿐 아니라, 기업의 최종 의사결정권까지 넘보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이제는 ‘최고경영자(CEO)의 종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AI가 CEO 역할까지 대체할 것”이라고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인 순다 피차이·샘 올트먼·일론 머스크 등이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요즘 빅테크 기업 CEO들이 내놓는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WSJ은 설명했다. AI의 부상으로 CEO 자리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 초지능 AI가 사무직을 쓸어버리고, 로봇이 공장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익숙하다. 그런데 이제는 CEO가 위치한 ‘코너 오피스’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CEO가 하는 일은 아마 AI가 하기에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일 거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CEO 순다 피차이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때로는 서로 “누가 더 AI 미래를 과하게 전망하는가”를 경쟁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점점 선명해지는 흐름은 이렇다. AI 노동자는 별로 신기하지 않다는 것. 진짜 ‘쿨한 것’은 AI CEO다.
“오픈AI는 AI CEO가 운영하는 첫 번째 큰 회사가 될 것이다. 그리되지 않는다면 그건 내 책임이다”. 이 회사 CEO인 샘 올트먼은 피차이의 발언 몇주 전, 한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트먼은 AI가 조만간 기업 내 여러 사업부를, 더 나아가 회사 전체를 운영할 정도의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진짜 도전은 인간 직원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가 이걸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의사결정 측면에서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AI가 꽤 빨리 좋은 수준에 도달할 것 같다”.
기업을 스스로 운영하도록 AI가 돕는다는 상상은 이제 실리콘밸리에서는 주류가 된 아이디어다. 적어도 산업 현장(Main Street)에서는 이게 아니더라도.
하지만 장애물도 있다.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단기적이고 고립된 과제에서는 인상적인 능력을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 시간축에서는 일관된 성과를 유지하는 데 종종 실패한다”. AI 연구 그룹인 앤던 랩스 창업자들이 2025년 2월 논문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이들은 ‘장기적 사업 운영’을 AI가 얼마나 잘 처리하는지 평가하기 위한 테스트인 ‘벤딩-벤치(Vending-Bench)’를 개발했다. 시뮬레이션 속의 ‘자판기 사업’을 운영하며 재고·공급업체 관리 등을 얼마나 잘 처리하는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올해 초 엑스(x)AI가 이를 공개 시연했을 때,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AI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기뻐했다. “이제 그래픽처리장치(GPU) 비용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겼네”. 머스크는 AI 훈련에 쓰이는 고가의 칩을 언급하며 농담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백만 대의 자판기다.”
AI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고 있다. 구글·오픈AI·xAI 등 빅테크는 모두 이 기술의 파괴적 잠재력에 막대한 돈을 베팅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빅테크 기업들이 2028년까지 AI에 쓸 누적 투자 규모는 약 3조 달러(약 4419조 원)에 달한다. 이 투자를 회수하려면 자판기 운영 정도로는 답이 없다. 세상을 뒤흔들 혁신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이런 AI 투자 열풍이 거품으로 끝날까 우려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대체로 ‘큰손 투자’를 환영하고 있다. 그들은 산업 전체가 재편되고, 새로운 승자들이 등장하는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빅테크 CEO들은 그런 꿈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로봇 인력이 인간을 압도하고, ‘마치 신과 같은’ 스마트글래스가 아이폰을 대체하며, AI 데이터센터가 우주로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최종 경계는 ‘회사의 통제권을 AI에 넘기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사티아 나델라는 최근 악셀 스프링어와의 인터뷰에서 “AI가 기업을 운영하게 될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게는 너무 과장된 얘기다”. 나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5년, 10년 뒤 돌아보면, 놀랄 만한 자동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남아 있을 것이다”.
나델라는 AI를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도구’로 묘사했다. 인간이 과제를 맡기면 AI는 이를 처리해 하루가 끝날 때 결과를 가져오고, 다시 지시를 받는 방식이다. 즉, ‘인간 리드, AI 운영’ 모델이다. “인간의 주체성은 여전히 핵심일 것이다”.
만약 나델라가 틀렸다면? 로봇이 모든 ‘황금 티켓’을 가져가는 세상에서, 인간이 꿈꿀 목표는 무엇인가? 정원 가꾸기 정도일까?
머스크는 사실상 그렇게 말하고 있다. xAI·테슬라 등 다양한 회사를 이끄는 이 억만장자는 미래에 대해 과장된 그림을 그리는데 항상 앞장서왔다.
지난 11월 테슬라 주주총회에서 그는, 결국 AI가 모든 권력을 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인간 지능의 총합을 훨씬 능가한다면, 인간이 통제권을 쥐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AI가 ‘친절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의 이런 발언은 테슬라가 그에게 1조 달러(약 1473조 원) 규모의 보상 패키지를 승인한 직후 나왔다. 그가 테슬라를 로봇 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보상이다.
머스크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인 로봇 공장이, 자동차 공장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불 꺼진 공장’, 즉 로봇만으로 돌아가는 공장을 실현하진 못했다.
그는 그러나,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최근 그는 반복해서 주장했다. AI와 로봇이 노동을 일종의 취미처럼 선택 사항으로 만들 것이라고.
“정원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 그리고 마트에서 채소를 사는 것의 차이와 같다. 정원 가꾸기가 훨씬 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머스크가 정원 가꾸기나 하며 만족하는 삶을 상상해보라고 WSJ은 밝혔다.
권세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