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낙엽 우거진 양지 바른 산지를 걷다 보면 잎이 난초를 닮은, 가냘픈 줄기 위에 달린 거꾸로 선 종 모양의 하얀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산자고! 외떡잎식물이며 백합과에 속하는 꽃입니다.
중부 이남의 양지 바르고 조금은 건조한 산지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지요.
산자고는 원래 ‘까치무릇’이라는 예쁜 우리말 이름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1930년 대 일제강점기에 조선식생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본에도 같은 종이 있다 하여, 일본 이름인 ‘산자고’로 창씨개명을 당한 꽃입니다.
꽁꽁 언 땅에 따스한 햇살이 비치기가 무섭게, 겨울 동안 땅속에서 숨 죽이고 있던, 3~4cm 정도의 계란 모양으로 생긴 비늘줄기 인경(鱗莖)으로부터 난초 잎을 닮은 잎들이 여러 장 나옵니다.
길이는 15~30cm 정도이고, 폭은 5mm 내외로 옅은 녹색을 띠고 있는 잎은 전체적으로 매끈하지만, 안쓰러울 정도로 여리고 연약합니다.
3월 하순에서 4월 말 사이에 곧게 선 줄기 끝에 1∼3 송이의 흰색 꽃이 달리는데, 꽃은 넓은 종 모양으로 위를 향하여 벌어지며, 꽃잎 뒷면에는 자주색을 띤 띠 모양의 줄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이처럼 잎과, 줄기와, 꽃 모두가 여리디 여린 모습을 지닌 산자고의 꽃말은 '봄처녀'라고 합니다.
양전형 시인의 마음에 비춰진 산자고는 곧 ‘그리움’ 입니다.
“봄들판 마파람에 바짝 엎디어 / 날마다 감치는 그대 생각
가슴이 아리겠다 눈이 고프겠다 / 그러나 그립다 하지 마라
그립다는 말은 하는 게 아니다 / 먼 하늘 보며 / 꽃몸 하나에 생각 한 송이
민얼굴로 피어있으면 그리움이다”
햇살이 약한 오전에는 입을 앙다물고, 여간해서는 속살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 봄처녀의 수줍음으로도, 누군가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의 표현으로도 비쳐지는 것 같습니다.
산자고는 근래에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어 걱정스러운 식물의 하나입니다. 예쁜 제 이름 찾아주기도 필요한 꽃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조용경 객원기자 / hansongp@gmail.com
야생화 사진작가
(사)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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