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갈래로 갈라진 꽃 안쪽에는 짙은 자주색 반점이 있다. 사진=조용경
여름이 한껏 기승을 부리다 스스로 그 더위를 누그러뜨리는 시기에, 높은 산 숲속을 헤치며 걷다 보면 가늘고 긴 꽃대 끝에 매달린,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는 듯한 주황색의 꽃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 무게를 못 이겨서 일까요? 바람이 없어도 끊임없이 살랑거립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화사해서, 고고해 보이기까지도 하는 이 꽃은 '하늘말나리' 입니다. 외떡잎식물로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지요.
하늘말나리는 우리나라 전역의 비교적 높은 산에서 자랍니다. 숲속의 반그늘, 부엽질이 풍부한 토양을 좋아하지요.
땅속 비늘줄기에서 돋아난 줄기는 60~90㎝ 정도로 자라며, 크게 윤생(輪生, 돌려나기)하는 잎이 원줄기 중간쯤에 6~12장씩 달리는데,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합니다. 줄기 윗부분에는 돌려나기한 잎보다 작은, 어긋나기 하는 잎이 달리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작아집니다.
줄기 중간쯤에는 6~12 장의 잎이 윤생한다. 사진=조용경
7∼8월 사이에 노란빛을 띤 붉은색의 꽃이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서 한 송이씩 하늘을 향하여 핍니다. 꽃은 지름이 4cm 정도이며, 여섯 갈래로 갈라지고, 안쪽에 짙은 자주색의 반점이 있으며, 끝은 뒤쪽으로 조금 젖혀집니다.
수많은 나리 종류 중에서 가장 늦게 꽃이 피는 것이 ‘말나리’ 인데, 말나리들 가운데 꽃이 하늘을 보고 핀다 하여 ‘하늘말나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윤생하는 잎이 우산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우산말나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늘말나리는 어두운 숲속을 밝히는 둥불처럼 화사하다. 사진=조용경
하늘말나리의 꽃말은 '순진' 혹은 '순결' 입니다. 꽃이 귀한 시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고고하게 피는 모습에서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 것 같습니다.
“평생을 살고도 흔들리는 꽃대에/ 저 바깥세상이 와서 피고 지고/ 긴 시간에 갇힌 울음들이/ 공중에 손을 뻗쳐 몸이 되는 하늘말나리가 있었네”
이희정 시인은 어두운 숲속에서 마치 허공에 매달려서 피는 듯한 모습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관상용으로 인기가 있으며, 어린잎의 줄기와 비늘줄기는 식용으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조용경 객원기자 / hansongp@gmail.com
야생화 사진작가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