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시대에, 경영자 교육의 목표는 ‘판단할 줄 아는 리더’키우기다”
인시아드(Insead) 등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이 AI의 진화에 발맞춰 커리큘럼을 전면 재편하고 있다. 혁신의 방향은 기술적 역량 전달이 아닌, ‘전략적 사고’와 ‘윤리적 통찰력’을 갖춘 리더 양성이라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경영대학원 입학위원회(GMAC·Graduate Management Admission Council) 조사결과 현재 80%가량의 경영대학원이 AI를 어떤 방식으로든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특히 인시아드, 에섹(Essec), 트리니티(Trinity), 임페리얼(Imperial), 파리경영대학원(ESCP) 등 유럽 명문 비즈니스스쿨은 AI를 교과 설계 전반에 통합시켜,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험 중이다. 이들은 경영학 석사(MBA)과정의 학생들에게 생성형 AI, 모의 협상, 예술과 AI 융합 교육 등 창의성을 자극하는 혁신적 시도를 하고 있다.
이들 비즈니스스쿨의 교육은 코딩 가르치기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이보다는, ‘전략적 감각이 뛰어난 리더(strategically fluent leaders)’를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파리 근처의 Essec 비즈니스스쿨 하리스 키리아쿠 교수는, “우리 학교 프로그램은, AI라는 기계에 전략적 판단을 맹목적으로 위임하지 않도록 돕고 있다”며 “AI의 불투명한 ‘블랙박스’를 풀어내, 경영자들이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
더블린의 Trinity 비즈니스스쿨 마이클 플린 교수는, “우리 프로그램은 디지털 역량과 인간 중심적 시각을 통합해, 조직 전반에 AI를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까지 유도한다”고 말한다. 최근 이 학교의 AI 및 분석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한 온세미컨덕터(ON Semiconductor)의 신사업개발 책임자 데이미언 월시는 “제품 개발에 있어 AI가 투자 판단에서 설계 검증까지 전방위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 근교 퐁텐블로에 위치한 Insead에서도 AI는 교육 설계와 전달 방식 전반에 통합되고 있다. AI 비즈니스 과정을 이끄는 파니시 푸라남 교수는 AI의 혁신적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AI에 사고를 전가하기보다는, 여러 집단 지성을 결합하는 데 AI를 활용하자”고 강조한다. 인시아드의 경영자 교육 과정에는 ‘윤리적 프레임워크’와 ‘유럽연합의 AI 규제 이해’, ‘AI 솔루션의 프로토타이핑’ 등이 포함된다. 프로토타이핑이란, 개발 초기에 시스템의 모형을 간단히 만들어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직접 사용해보게 한 다음, 사용자의 요구를 즉각 반영해 재설계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 시장의 협업을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Tool)를 통해, 전략적 의사결정과 AI 기반의 모의 협상도 가르친다.
런던의 Imperial 비즈니스스쿨은 모든 경영자 교육 담당자들이 ‘AI와 비즈니스 혁신’ 과정을 이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학습 솔루션 책임자인 러셀 밀러는 이 조치를 통해 AI 전문성을 학교 전반에 내재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프로그램인 ‘복잡한 세계에서의 책임 있는 리더십’은 AI 시대에도 윤리적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친다.
ESCP 비즈니스스쿨은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생성형 AI 도구를 수업에 적극 활용 중이다. AI 프로젝트 매니저인 안-로르 오쥬아르는 학생 피드백 제공부터 콘텐츠 제작까지 다양한 AI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디지털 혁신 및 기업가적 리더십 경영석사’ 과정은 학습자가 AI를 통해 생산성과 사고력을 동시에 향상시키도록 유도한다. 이 학교의 실뱅 뷰로 교수는 AI와 예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창의적 프로그램을 올여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AI는 효율성을 높이지만, 패턴에 의존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업의 창의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해당 과정은 참가자들이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아에세(IESE) 비즈니스스쿨에서는 AI 기반 협상 플랫폼을 활용, 참가자들의 감정지능을 아바타 시뮬레이션으로 훈련시킨다. 프랑스의 오덴시아(Audencia) 비즈니스스쿨은 영업 전문가가 실제 AI 에이전트를 제작하는 ‘AI + 세일즈’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독일 보험사 베어트가란티(Wertgarantie)의 디지털 혁신 매니저 핀 볼켄은 ESCP의 디지털 혁신 경영학 석사 과정에서, 자사 고객 800만명의 서비스 개선을 위한 생성형 AI 챗봇을 개발했다. 학교의 오픈AI 라이선스를 활용해 실제 코딩, 마케팅, 브랜딩부터 하루 만에 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까지 해봤다. 동급생들과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의 오픈AI 본사를 방문할 계획도 세웠다고 그는 FT에 밝혔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