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수백만 고객에 ‘VIP급 자산관리’…사기 예방·인력 효율화까지

FT, “영국 은행들, △조직범죄 탐지 △대출 자동화 △개인형 금융 상품 제공에도 활용중”

금융권에서 인공지능(AI)의 역할이 과거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에서 진화해, 실시간으로 범죄를 판단하고 고객을 대신해 투자를 실행하는 등 ‘능동적 에이전트’로 바뀌고 있다. 최신 생성형 AI모델들이 잠재적인 사기 사례를 식별하고, 신용 위험을 평가하는 기능을 은행에 제공하고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영국의 주요 대출기관들은 △인신매매 단속, △고객 자산관리의 대중화, △비정형 데이터 처리, △콜센터 개편 등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산탄데르(Santander)은행은 인신매매 사례를 시사할 수 있는 의심스러운 계좌 행동 패턴을 식별하도록 훈련된 AI 모델을 개발했다. 은행들은 그동안 고객 데이터에서 이러한 종류의 조직범죄를 식별하는 데 더딘 모습을 보였다고 산탄데르 영국지점의 최고 혁신·데이터 및 AI 책임자인 자스 나랑은 FT에 밝혔다. “과거에는 모든 은행이 이를 탐지하는 것이 다소 ‘복불복(hit and miss)’이었다”며 “더 중요한 것은, 항상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석은 범죄자들이 이미 떠난 뒤에야 이루어지곤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은행은 인신매매를 암시할 수 있는 특정 ‘징후’를 포착하도록 훈련된 AI 도구를 지난해 구축했다. 몇 분 간격으로 서로 다른 여러 장소에서 계좌로 돈이 입금되는 경우 등이 그런 징후의 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사용되는 기존 머신러닝과 생성형 AI의 차이점은, 후자가 더 시기적절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라고 나랑은 덧붙였다. “이전에 일어나던 일과 지금의 차이는 바로 ‘적시성(timeliness)’이다. 범죄 활동이 지속되는 도중에 포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말 그대로 그날 바로 잡아낼 수 있다”.

이 도구가 지난해 출시된 이후, 산탄데르는 인신매매를 의심케 하는 수백 건의 단서를 생성했다. 이를 당국에 전달해 추가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금융범죄를 넘어, 은행들은 ‘소비자 대면 서비스의 재편’에도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FT는 강조했다. 로이즈 뱅킹 그룹(Lloyds Banking Group)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인화하기 위해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생성형 AI 봇은 △거래 내역, △저축, △위험 성향 등 고객 계좌의 데이터를 스캔하고 분석해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영국 최대 시중은행인 로이즈의 최고 데이터 및 분석 책임자인 라닐 보테주는 “초고액 자산가들이 받는 종류의 ‘맞춤형 금융 조언’을 수백만 명의 일반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로이즈 은행은 고객에게 재무 관리 조언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동화된 금융 비서(financial assistant)를 훈련시키는 업무를 직원 7000명에게 맡겼다고 이번 달 발표했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설정된 모델을 뜻하는 ‘에이전트형 AI(agentic AI)’ 비서는 현재 테스트 중이다. 내년에 출시될 예정. 고객들은 이 금융 비서와 특정 결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 대상이 되는 활동에 대해서는 조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로이즈 은행은 이 모델을 더욱 발전시키려 한다고 보테주는 말한다. 사용자가 자신의 선호도를 설정하면, 에이전트형 AI 비서가 일련의 ‘개인화된 넛지(nudge, 행동 유도)’를 통해 사용자를 대신해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 저축액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넣는 것과 같은 행동이 그 예다. “미래에는 고객이 사전에 동의한 경우, 저축액이 자동으로 ISA에 투자될 수 있게 된다. 이는 고객이 미래를 더 잘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즉, AI는 지침을 제공하는데, 이 회사의 에이전트형 AI 비서는 더 나아가 ‘고객을 대신해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다’는 것이 차별점.

냇웨스트(NatWest) 은행의 최고정보책임자(CIO) 스콧 마커도 “오늘날의 AI는 △더 빠른 속도, △개인화, 그리고 △온라인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한다. 내일의 AI는 차세대 역량을 통해 이전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예측, 훨씬 △더 매끄럽고 △초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기술의 발전 방향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고 FT는 설명했다.

생성형 AI는 대출 과정에 포함된 ‘실사(due diligence) 업무’도 변화시켰다. 은행들은 이미 보유중인 방대한 금융 데이터 분석을 위해, 머신러닝 소프트웨어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여러 다른 포맷의 문서에서 정보를 끌어올 수 있다.

한 예로, 상업용 부동산 고객에게 대출을 해줄 때 필요한 실사 과정이 있다. “대출을 제공하기 전에 수많은 은행 명세서, 보고서, 담보물 및 기타 문서를 검토해야 한다”고 보테주는 말한다. 결국, 10~15개의 서로 다른 문서가 각기 다른 형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부동산 대출 담당자는 이를 일일이 맞춰보고 검토해야 한다. 

기존의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형식이 표준화돼 있지 않아, 모든 게 달랐기 때문이라고 FT는 설명했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사용하면, 이제 이를 자동화해 모든 핵심 정보를 추출하고 단순한 형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이 한 시간에 걸쳐 해야 할 일을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된 것.

모든 은행이 AI를 ‘서비스 향상’에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은행 클라르나는 AI 기반 고객 서비스 봇을 도입하고, 인력을 최근 몇 년간 자연 감소를 통해 절반으로 줄였다. 비록 도구 사용 결과가 일부 불만족스러워 어느 정도는 되돌려야 했지만, 여전히 클라르나 고객 서비스 운영의 2/3는 자동화돼 있다.

로이즈 은행이 일자리를 줄이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테주는 말한다. 이 은행은 모든 대출 관련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AI 도구를 개발, 콜센터 직원의 검색 시간을 66% 단축했다. 냇웨스트 은행의 마커 역시, “AI는 그룹의 복잡성을 줄이고, 동료(직원)들이 고객에게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다”고 말한다.

AI의 적용 범위는 방대하지만, 조직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실험으로 AI를 개발해선 안된다고 산탄데르 은행의 나랑은 말한다. 그는 “고객 이익이나 생산성 혜택 측면에서 비즈니스 케이스는 사전에 매우, 매우 명확해야 한다”고 FT에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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