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법정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을 잃으면서, 창사 이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인이 롯데의 최고 경영자를 맡게 됐다. 신동빈 회장과 공동 대표를 맡았던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75) 사장이 단독 대표가 된 것이다. 말만 공동 대표지 신동빈 회장은 그동안 롯데홀딩스 부회장으로서 1인자였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일 양국 롯데의 지주회사다.
그의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은 1948년 일본에서 껌 회사인 롯데를 설립해 이후 한·일 롯데를 키웠고, 2015년 7월부터는 신동빈 회장이 양국 롯데를 대표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 롯데 계열사 90여 곳은 핵심 경영 사안을 쓰쿠다 사장 등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 물어봐야 한다. '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한국 롯데 계열사'의 지분 구조로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의 지분 19.07%를 일본 롯데홀딩스가 보유하고 있고, 그외 일본 내 롯데계열회사들의 지분을 모두 합치면 호텔롯데의 지분은 99.28%나 된다. 이 가운데 종업원과 임원지주회의 지분이 40%를 넘는다. 신 회장이 '원 리더'의 위상을 잃음에 따라 일본 경영진과 주주들의 영향력이 확대돼 한국롯데까지 일본인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신동빈 회장은 경영권강화를 위해 롯데지주 출범과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이러한 지배구조를 완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물 건너갔다. 일본경제신문은 "신동빈 회장이 지난달 일본 계열사에 대한 합병과 상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며 "그의 사임은 이런 계획도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10월 출범한 롯데지주의 지분 10.5%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지만, 호텔롯데 등 일본 롯데가 지배하는 계열사 지분은 20.7%에 달한다. 123층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운영하는 롯데물산도 지분 57%를 일본 롯데홀딩스가 갖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배도 위태로워졌다. 그는 그동안 롯데홀딩스 지분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는 종업원·임원지주회와 관계사 등의 지지를 토대로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대표직 상실로 광윤사 등을 통해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에게도 경영권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신동빈 회장이 스스로 사임한 것도 '이사회에 의한 해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대법원 판결 이전에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면 곧바로 경영진에서 해임되거나 자진사퇴하는 재계 불문율이다.
쓰쿠다 사장은 2009년 신격호 총괄회장에 의해 발탁됐지만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동빈 회장 측에 합류했다. 롯데 안팎에서는 쓰쿠다 사장이 신동빈 회장의 대리인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의 재연 가능성도 커졌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 주주(28.1%)인 비상장사 광윤사의 지분 50%+1주를 보유하고 있다. 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로 연결되는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있는 것이다. 동생 신동빈 회장이 한국 국적인데 반해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 국적이다.
신동빈 회장의 구속사유도 개운치 않다. 신동빈 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미르와 K스포츠 자금 출연 과정에서 비선실세인 최순실씨 측에 7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검찰 압수수색 전에 이미 돈을 돌려받았으나 뇌물공여제는 약속만으로도 죄가 된다. 검찰은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재승인과 관련한 도움을 받는 대가로 돈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똑같이 최순실 씨가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단체를 후원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항소심 재판에서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는 경영권 승계 현안이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청탁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과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라는 구체적인 현안이 있었기 때문에 '부정청탁'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등 경영권승계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쉽게 수긍이 안 간다. 더구나 롯데는 사드사태로 중국에서 사업을 접는 ‘사드폭탄’까지 맞았다. 물론 글로벌기업인도 죄를 지면 죄값을 치러야 한다. 다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이들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로 돈을 건넸다. 최고 통치권자가 특정재단에 기부금을 내달라는데 이를 거절할 기업인이 어디 있겠는가. 오죽해야 91년에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선출마까지 결심했을까. 보복을 감내하면서까지 말이다. 당시 국세청은 현대그룹에 1361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전시의 상업은 전쟁이요. 평시의 상업은 전쟁이다”. 우리나라 최초 유학박사 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 선생이 한 말이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미중간의 무역전쟁을 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조선이 망한 것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즉 상업을 가장 천시했기 때문이다. 기업인을 이순신장군으로 떠받들지는 못해도 최소한 존중은 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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