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여름 여의도 순복음교회 옆 ‘외백’ 중식당. 이기택 통합민주당 총재와 그를 추종하는 일명 과외선생 교수 10여명이 점심을 함께 했다. 교수들은 “총재님!”을 연발하면서 조언과 아부를 아끼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 실세자리에 있다 최근 물러난 분도 있었다. 필자는 이 총재가 사적 모임임에도 불구 “오 기자는 우리 식구인데 같이 가지”해서 동석하게 됐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기회주의자’를 양산하는 사회가 됐다. 본업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이 됐다. 특히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교수가 대폭 늘었다. 그렇다보니 ‘교수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사실 유명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일명 ‘과외선생’을 두고 있다. 교수집단이 대다수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일 것이다. 또 관료사회에 기웃거리는 교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실력보다는 정부 발주 프로젝트를 잘 수주하는 교수가 ‘능력 있는 교수’로 통한다. 교수의 외도는 학교에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데이터뉴스가 최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공공기관장 및 부설기관장의 경력 및 활동 내역을 분석한 결과, ‘교수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됐다. 공석이거나 경력이 공개되지 않은 20명을 제외한 341명의 기관장 중 정교수·부교수·조교수·초빙교수·객원교수 등 교수출신 기관장이 139명으로, 41%에 육박했다. 고시 출신이 41명, 대변인 출신이 13명, 국회의원 출신이 10명 순이다. 교수 출신 기관장으로는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기관장, 류갑희 농업기술실용화재단 기관장, 이재강 국방전직교육원 기관장,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 기관장, 양창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기관장, 김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관장,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기관장,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관장, 이형목 한국천문연구원 기관장, 정윤 한국과학영재학교 기관장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세월호 사건 이후 거세진 ‘관피아’ 비판 여론을 틈타, 과거 관료출신이 가던 자리를 교수들이 꿰차고 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본업에 충실 하는 사회가 정상이기 때문이다. 교수의 본업은 연구와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공기업 CEO자리에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날까? 무엇보다 공기업이 지나치게 많은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중앙공기업만 361개, 지방공기업 401개까지 포함하면 ‘공기업공화국’이다. 반면 대국인 미국은 중앙공기업 숫자가 45개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은 1920년대 대공황 기에 공기업을 대규모로 설립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많은 공기업들을 매각하거나 폐쇄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 생기면 절대 없어지는 법이 없다.
공기업은 저개발국가가 정부주도로 경제발전을 이끌 필요가 있을 때 만드는 시스템이다. 경제발전이 성숙되면 민영화해 시장경제에 맡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경쟁적으로 공기업을 만드는 데만 혈안이 돼 있지 없애거나 민영화하는 경우가 드물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일부 민영화를 외치지만 그마저도 ‘구두선’에 그친다. 언제나 정치권은 논공행상의 선심 쓰는 자리로 활용하고 있다. 관료들은 역시 퇴임 후 갈 수 있는 ‘안식처’로 여긴다.
한국은 20여년 동안 선진국 문턱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한국은 가계부채 1500조, 국가부채 1555조, GDP의 171%에 달하는 기업부채까지 포함하면 ‘빚 공화국’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회구조도 한 몫하고 있다. 비대해진 공무원과 공기업 구조가 그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 정원은 102만 352명이다. 공무원 증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으로 지금은 더 늘었다. 전자정부 세계1위가 무색하다.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공무원, 준공무원을 빼고 나면 제대로 월급 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300만원 이상 받는 직장인은 555만명에 불과하다. 전체 임금근로자 1946만7000명 중 월급 100만 원 미만자는 11.2%(218만2000명), 100만~200만 원은 34.6%(673만5000명), 200만원 이하가 45.8%(891만7000명), 200만~300만 원은 25.6%(498만5000명), 300만~400만 원 14.4%(279만7000명), 400만 원 이상은 14.2%(276만8000명)다. 비정규직 숫자는 지난해 615만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비참한 상황이다. 300만원 이상 받는 직장인을 기준으로 볼 때 3.5명당 1명이 공무원(공기업포함)인 꼴이다.
경제는 침몰직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나라의 많은 엘리트들이 본업보다는 공기업 CEO, 또는 감사, 이사자리 등을 노리고 정치권에 줄을 대는 데 열중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10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국가 비상사태”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한국 경제의 문제는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도 아니고, 규제가 너무 많아서도 아니며, 20년간 쌓인 투자 부족과 신기술 부족으로 주축 산업이 붕괴한 게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국가부도의 날’ 영화에서 보듯이 IMF로부터 돈을 빌려오면서 시장을 지나치게 개방한 결과다. 대기업들은 경영권까지 위협하는 투기자본의 영향으로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쓰고 있다. 장 교수의 진단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는 정치권이 삼성과 현대차 지배구조를 어떻게 하라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투기자본에 의해 언제든지 인수합병(M&A) 공격이 들어올 수 있어 거기에 갇혀 버렸다는 것이다. 삼성의 ‘삼바’사태도 그런 맥락에서 생겼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상속세는 세계 최고다. 경영권승계까지 포함하면 65%나 된다.
정부와 리더그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기업이 마음 놓고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돗자리를 깔아주는 것이다. 장 교수의 말처럼 차등 의결권제도 하나만이라도 도입해야 한다. 즉 주식 1년 보유시 한 표, 10년 이상 보유시 20표 식으로 단기자본의 투자를 제약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명분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도 차등의결권 제도를 쓰고 있다는 점을 반박 명문으로 삼으면 된다. 그래야 기업들이 경영권도 방어하고 장기투자도 생각할 수 있다.
또 공기업민영화와 공무원 수 동결이 급선무다. 지난해 기준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는 전체 부채의 절반이 넘는 752조6000억 원에 달했다. 공기업민영화는 지식인이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문화를 줄일 수 있는 핵심이다. 또 국회의원들이 취업민원과 공기업사업에 음성적으로 이권 개입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OECD평균과 한국적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말라. OECD 국가 중 한국처럼 공기업이 많은 나라가 어디 있는가. 또 ‘한국적=밥그릇’이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위대한 대한민국을 물려줄 책무가 있다.
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 chang@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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