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남궁동자’라는 여학생을 아시나요?
제가 학창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최요안 선생님이 쓰신 ‘남궁동자’라는 청춘소설에 등장한 키가 멀쑥하게 큰, 말괄량이 여학생의 이름이지요.
이른 봄, 얼음도 채 녹지 않은 높은 산 계곡 주변을 헤매다 보면, 바로 이 ‘남궁동자’를 연상시키는 특이하게 생긴 꽃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밤송이 같은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처녀가 녹색의 플레어 스커트를 축축한 땅바닥에 펼쳐놓고 털썩 주저앉은 모습의, 말괄량이처럼 생긴 꽃, ‘처녀치마’입니다.
이름 그대로 땅바닥으로 겹겹이 펼쳐진 잎이 넓은 치마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요.
키는 10~25cm 정도이며, 얼음이 녹기 시작할 무렵부터 짧고 곧은 뿌리줄기에서 5~20cm 정도 길이의 잎이 무더기로 나와 처녀들의 넓은 스커트처럼 둥글게 펼쳐집니다.
이 처녀치마의 잎들은 이른 봄에 먹을 게 부족한 초식동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해서, 때로는 치마가 벗겨진 처녀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4월 초순부터 5월에 걸쳐 잎의 중앙 부분에서 솟아오르는 꽃대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연한 보라색에서 짙은 보라색까지의 꽃이 3~10개씩 뭉쳐서 핍니다. 긴 암술대가 꽃잎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특이하지요.
드물게는 흰색의 꽃이 피기도 하는데, 저는 사진으로만 보아서 참 아쉽습니다.
꽃대는 꽃이 필 때는 짧지만, 꽃이 지고 나면 50~60cm까지도 쑥쑥 자란다고 합니다.
처녀치마의 꽃말은 ‘절제’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처녀치마를 일러 깊은 산속에 치마를 활짝 펼치고 앉아 있는 조신한 여인의 모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학창시적에 만난 남궁동자를 연상시키는 이 ‘처녀치마’는 오히려 ‘절제’가 필요한 천방지축 말괄량이의 모습을 닮은 꽃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용경 객원기자 / hansongp@gmail.com
야생화 사진작가
(사)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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