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암의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핀 해국이 가장 아름답다. 사진=조용경
가을이 오면, 문득 하루하루 사는 일이 참 무미건조하다는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2~3일 계속되면 저는 무작정 짐을 꾸려 동해 바다의 추암으로 달려갑니다.
제 마음 속의 작은 등대와도 같은 '해국(海菊)'이 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의 험한 바위 틈새, 바람이 날라다 준 한 줌의 흙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서, 모진 바닷바람과 험한 파도, 바위까지도 녹여버릴 것 같은 한 여름의 뜨거움을 견뎌내면서 흔들림 없이 줄기를 올리는 해국!
그리곤 산들바람 불기 시작하는 초가을이면 어김없이 연보라색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해국의 그 놀라운 생명력은 늘 제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잠시 나약해지려던 제 마음을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채워준답니다.
이처럼 갖은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는 화려한 보라색의 꽃을 피우는 해국의 매력에 젖어서 험한 바위를 타고 오르내리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바라다보곤 하지요.
해국은 울릉도와 독도가 원산으로 바닷가의 험한 바위에 붙어서 피는 가을꽃이다. 사진=조용경
울릉도와 독도가 원산지인 해국은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의 쌍떡잎식물입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동·서·남해안과 제주도의 거친 해안 바위 틈새에서 자랍니다.
해국의 키는 비교적 작은 편입니다. 잎은 둥글지만 다소 두터우며 양면이 솜털로 덮여 있습니다. 줄기는 위로 뻗지만 15~30cm 정도로 크게 자라지는 않는 편입니다. 아마도 사나운 바람 때문이겠지요.
바로 그 줄기 윗부분에서 싹이 나고, 그 끝에 연한 보라색 혹은 드물게는 흰색의 꽃이 9월부터 겨울 내내 피어납니다.
해국은 척박한 환경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희망의 꽃이다. 사진=조용경
해국의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꽃! 그리고 어김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야 마는 해국!
김치경이란 시인이 노랫말을 쓰고 신귀복 작곡가가 곡을 붙인 '해국'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저 머나먼 바다 건너 / 하염 없이 님 그리다 / 꽃이 된 나의 사랑아 / 기다림은 청보라빛 멍울되어 / 눈물 가득 고였구나"
이 가을 혹시라도 사는 게 힘들다거나, 혹은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면 지체없이 추암이든 어디든 동해의 바닷가로 달려가 보십시오.
그리고 바위 틈새에 예쁘게 피어난 갸냘픈 해국 앞에 무릎을 꿇고 그 험난한 한살이를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조용경 객원기자 / hansongp@gmail.com
야생화 사진작가
(사)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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