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선생이래 100년에 가장 파격적인 상고사 해석서[고국(古国)]이 나왔다. 한민족의 잃어버린 상고사를 찾는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이다. 말이 역사소설이지 사실상 역사서다.
한국인들은 갑자기 영혼이 없는 민족으로 전락했다. 뿌리가 없는 민족이 된 것이다. 조선의 518년 사대주의 탓이 크다. 심지어 태종과 같이 우매한 지도자는 왕실도서관인 ‘서운관’에 있는 ‘신지비사’ 등 중요한 고서를 모두 불살라버렸다. 동이족의 화려한 역사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제가 문화정책을 쓰면서 조선의 거의 모든 책을 수거 불사르거나 자신들의 나라로 가져가고, 영혼이 없는 민족으로 만든 탓이 크다.
한국 역사는 이병도 등 일제 장학생들이 주도권을 장악했고, 해방 후에도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재야’라는 틀에 가두어 힘을 쓰기 힘든 형국이다.
광복회 사건과 근대사논쟁으로 시끌벅적한 사이 [古国] 1에 이어 2, 3권이 출간되었다. [古国]은 총 9권 시리즈로 집필은 끝났고, 현재 4권은 교열 중에 있다.
1권이 한중의 상고사로 좀 지루했다면 2.3권은 바로 그 이후 가시적인 실체적 역사로 더욱 흥미롭다. 우리가 알던 일본이 짜놓은 역사와는 차원이 다른 실체적 진실이 전개된다.
저자는 [古国]서두에서 우리에겐 왜 기원 이전의 상고사가 없을까? 의문을 먼저 제기한다. 한(韓)민족의 고대사는 11세기에 편찬된 《삼국사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고조선과 같은 기원 이전의 상고사가 누락되었다. 이 책이 살아남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일제는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정책을 쓴다. 조선인은 무력보다 정신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1923년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역사편찬을 도모했다. 회장은 정무총감이, 이완용과 일본 고문서학의 권위자인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가 고문, 이마니시(今西龍)와 이병도위원을 맡았다. 더군나 이마니시는 이병도의 상사였다. 이들은 만든 한국사는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는 모두 뒤틀려졌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우천왕에서 문무왕의 삼한일통까지 3,500년에 이르는 상고사를 다룬 김이오의 대하역사소설 [고국] 9권 시리즈 중, 2권(조선의 분열) 및 3권(열국시대)이 출간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1권에서는 고조선의 성립 및 그에 도전하는 중원 화하족과의 2,500년에 걸친 투쟁사를 다루었다. 전국시대 막바지에 진나라가 최초로 중원을 통일하기 직전이었다. 2천 년의 왕통을 이어오던 고조선도 <부여>로 대체되었고, BC 3세기경엔 <기씨조선>이 번조선을 장악했다.
이번 2권에서는 <전국 7웅>으로 좁혀진 중원이 급기야 승자독식을 위한 통일전쟁에 휘말리는 전모를 다루었다. 생존을 위한 부국강병이 최대의 화두였고, 군주 1인 중심의 중앙집권체제 및 엄격한 법질서의 구축이 강조되던 경쟁과 혁신의 시대였다. 원교근공을 내세운 진소양왕과 그의 모후 여걸 선태후, 조나라 40만 대군을 파묻어버린 장평대전, 진시황과 여불위, 백기를 비롯한 전국시대의 4대 명장과 4군자의 눈부신 활약상이 흥미진진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대의 험악한 정치공학 <합종연횡>과 상대국의 분열을 위해 막대한 뇌물을 살포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등장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및 진장성은 물론, 과장된 통일 진나라의 실체와 급격한 몰락의 원인을 밝혀낸다. 창해 역사 여홍성의 시황 격살사건은 형가를 능가하는 웅장한 이야기로, 창해국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명백한 증거다. 진의 붕괴로 8년 <초한쟁패> 시대를 보낸 끝에 유방의 한나라가 중원을 재통일하지만, 또 다른 초원의 영웅 묵돌선우의 등장으로 한은 물론, 재기를 노리던 <동도(진한)>와 기씨조선이 치명타를 입고 만다. 기씨조선은 친 흉노정권인 <위씨조선>으로 대체되었다.
3권에서는 조선을 제압한 초원제국 <흉노>와 통일제국 <한>의 지난한 대결을 다루고 있다. BC 109년 한무제는 흉노의 오른팔을 꺾겠다며 우거왕의 <위씨조선>(낙랑)을 공격, <조한전쟁>을 벌이지만, 조선열국과 의병들의 봉기에 막히게 된다. 한사군 저지의 선봉에 섰던 고두막한은 해모수 천왕의 <부여>를 동쪽으로 내쫓고, 북부여를 세운 다음 동명제에 오른다. 그러나 BC 58년경 선비와 말갈(예맥) 사이의 민족분쟁인 <하상전쟁>을 막지 못한 데다 타리와 왕불의 난이 이어지면서, 북부여 전체가 열국시대로 접어들고 금와왕의 <동부여>가 재기한다. 또 북부여가 분열을 앓는 동안, 동쪽 마한 땅으로 피했던 기씨의 후예들이 옛 번조선 땅으로 되돌아와 韓씨의 <中마한> 왕조를 일으킨다. 동명제의 딸이라는 파소여왕이 북경 동북의 연산 일대에서 진한 6부를 규합해 <서나벌>을 건국하고, 20년 뒤에는 동부여를 탈출한 주몽 또한 <홀본부여> 소서노와의 혼인으로 마침내 위대한 제국 <고구려>를 건국한다.
중국의 고대사에 있어 5백 년 이상 지속된 춘추전국시대가 마무리되고, 마침내 진시황과 한나라 유방에 의해 통일제국 진한(秦漢)시대가 열린다. 이는 2천여 년이나 고대 아시아 문명을 선도했던 북방의 종주국 고조선의 쇠락과 함께, 새로이 중원화하족이 주도권을 쥐게 되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조선의 분열을 틈타 일어선 초원제국 훈(흉노)이 상국인 조선에 치명타를 가하지만, 한과 2백여 년을 다퉈야 하는 고단한 운명에 처하게 되니 조선이 열국시대를 지나는 동안 한을 상대해 준 셈이었다. 기씨 및 위씨조선(낙랑), 북부여를 거친 조선에서는 부여(고조선)의 부활을 기치로 내건 추모대제가 통일 대업에 나서는데, 한민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모범적인 지도자상을 보여준다. 계루부인을 추모하며 읊은 <오처가>는 <황조가>에 한 세대 앞선 시가로 국문학사를 뒤바꿀 만하다. 삼한의 시작을 전후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아시아의 장엄하고도 놀라운 고대사 이야기, [고국] 2, 3권이 독자를 기다린다!
저자는 현재 잘못 알려진 역사와 관련, “이는 조상들이 동쪽으로 내몰리면서 빚어진 일이지만, 고려와 조선,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소위 반도사관을 유지하려는 주류세력이 상고사의 복원을 집요하게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물론 “밖으로는 대륙에 강력한 통일왕조가 출현하면서 우리 상고사에 대한 날조가 시작되었고, 안으로는 그런 외압에 굴복하거나 동조한 사람들이 저지른 일탈”이라고 봤다.
문제는 광복 이후 8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우리 상고사가 복원되지 못했으니, 일제의 식민사관만 탓할 수도 없다고 한탄한다. “그 사이 중국 정부는 대륙에 기반한 우리 상고사의 대부분을 자기들의 역사라고 우기는 <동북공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때 가야의 일부를 왜가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나 독도 도발은 귀여운 수준이다. 일제가 탈취해간 수많은 고서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 등, 우리가 역사복원에 소홀함을 간파한 이웃 나라들이 역사 날조와 함께 소리 없는 역사전쟁을 지속해오고 있다”.
단채는 일본 황실도서관 쇼로부(書陵部)에 26만 권의 한국의 고서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연구하려는 한국의 역사학자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일제 당시 그곳에서 사서 담당을 했던 박창화 선생(1889∼1962)이 어렵게 고구려사 화랑세기 등 일부 역사서를 필사해 왔으나 강단사학계는 믿을 수 없는 역사서로 치부해버리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 없다. 다행히 1980년대에 내몽골 적봉 인근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요하문명>은 황하문명에 1000년 이상 앞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으로, 우리 조상인 동이 계열의 것임이 밝혀졌다. 석기시대의 우리 조상들이야말로 아시아 문명의 시원(始原)을 이룬 대륙의 주인공이라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것이었다. 중국 정부가 끝없이 나오는 동이의 유물을 덮기바쁘지만, 애타게 찾는 황하의 유물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서경》을 비롯한 중국의 고서에는 고조선을 포함한 동이의 기록이 감출 수 없을 만큼 수두룩하다. 다만 그것이 조상들의 역사임을 우리만 모를 뿐이다.
역사소설 [고국]은 저자가 6년에 걸쳐 잃어버린 상고사를 끝까지 추적해낸 끝에, 기승전결을 갖춘 재미있는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고조선 이전 배달의 역사부터 7세기 신라의 삼한통일까지 무려 3500년에 이르는 역사를 300만 자가 넘는 9권의 시리즈물로 총망라함으로써, 가히 우리 상고사 전체의 원형을 제대로 그려낸 책이라 할 만하다.
그 중 제1권 <이하동서>는 대륙의 동쪽을 동이가, 서쪽을 화하족이 다스렸다는 뜻으로, 우리 조상들의 명백한 대륙지배 사실을 상징한다. 특히 요순우, 하상주 및 춘추전국으로 이어지는 중원의 상고사 자체가, 북방민족의 종주국 고조선에 대한 도전과 투쟁사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한마디로 기원 이전까지가 우리민족의 전성기였고, 그 증거가 바로 제1권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고국]은 역사적 팩트에 기반한 정통 역사이야기로 퓨전 류가 아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대책 없는 반도사관에서 탈피, 고조선에서 분파한 북방민족 전체, 즉 흉노와 선비 등을 아우르는 역사 강역의 확장을 과감히 시도했고, 수많은 사료를 찾아 대사하는 수고를 거쳤다. 덤으로 복잡하다는 중국의 역사를 단번에 간파할 수도 있다. [고국]의 놀라운 스토리야말로 패자의 역사로 알던 저간의 인식을 송두리째 뒤엎는 판도라의 상자이며, <삼국지>나 <대망>을 능가하는 거대 스케일의 대서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마침 한류(Hallyu)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이 그 힘의 원천인 'K-히스토리(history)'를 묻고 있다. 이제껏 중국 일변도로 해석된 아시아의 상고사를, 우리 민족의 웅장한 역사로 풀어가는 역사소설 [고국1권]. 치우와 부루, 여파달과 서언왕 등 숱한 고대 영웅들의 신나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것이다.
오창규 기자 chang@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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