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5일부터 디지털 신분증 시행…데이터를 4번째 생산요소로”

이코노미스트, “노동·자본·토지에 이어 제시. 전 국민 웹 기록으로 판옵티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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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인구 11억 명의 온라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데이터 제국’을 건설하며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이달 15일부터 ‘디지털 신분증’ 제도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모든 국민의 온라인 활동을 중앙정부 장부에 기록, 국가 통제력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의 데이터 전략은 서구의 개인정보보호 규범과 확연히 차별화된다. 시진핑 정부는 데이터를 경제와 안보, 인공지능 경쟁력의 핵심 자원으로 삼아, 디지털 신원증명과 데이터 공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감시체제를 구축 중이다.

실제로 중국은 데이터를 무기로, 인공지능(AI) 산업과 경제 체계 전반을 지배하는 ‘디지털 제국’의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7월 15일부터 중국 정부는 전 국민의 온라인 활동 기록을 중앙에서 관리하는 ‘디지털 신분증’ 제도를 도입한다. 

국민 개개인의 웹사이트 방문 기록, 앱 이용 내역 등은 정부의 이 장부에 기록된다. 이를 통해 기존 민간 기업 중심의 인터넷 질서는 국가 주도형으로 ‘대전환’된다. 이와함께, 국유기업 보유 데이터는 ‘자산’으로 회계 처리하거나 거래소에서 매매할 수 있게 됐다. 중앙·지방 정부 간 데이터 공유도 법적으로 의무화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데이터를 노동·자본·토지와 함께 ‘4대 생산요소’로 격상시켰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데이터를 “국제 경쟁에서 혁명적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감시·산업·AI 체계를 ‘일원화된 시스템’으로 구축 중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통합한 ‘국가 데이터의 거대한 바다(National Data Ocean)’을 만들고 있다”며, “이는 AI 산업에서는 분명한 우위지만, 동시에 개인 자유를 침해하는 감시사회로 갈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하이 경찰은 지난해 10억 건에 달하는 시민 개인정보를 해킹으로 유출한 바 있다. 국가 주도의 데이터 통제가 반드시 안전한 것도 아니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미국, 유럽, 인도 등도 데이터 정책에 고심 중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보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프라이버시와 재산권 보호라는 족쇄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 반면 중국은 이런 제약 없이 빠르게 중앙집중화를 실현하고 있다.

중국이 단지 기술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제는 감시와 데이터 통합의 새로운 세계 모델을 주도하려 한다. 이는 온라인 경제와 AI의 진화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를 생성하는 나라다. 중국의 11억 명에 달하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쏟아내는 온라인 활동 데이터뿐 아니다. 전국에 설치된 방대한 안면인식 카메라 네트워크도 막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질주하고, 드론이 하늘을 누빈다. 이런 가운데, 이들 신기술에서 나오는 정보의 품질과 가치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진정으로 차별화시키는 것은 데이터의 양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데이터 관리 자체를 경제와 국가 안보 시스템에 통합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2021년, 중국은 유럽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모델로 삼은 데이터 규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제는 서구 기준과 빠르게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모든 행정 기관은 자신이 보유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동원해야 한다. 국영 기업들의 데이터 자산을 평가하는 광범위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 데이터를 자산으로 간주해 회계장부에 반영하거나 국영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게 하려는 것. 실제로 지난 6월 3일, 중국 국무원은 모든 정부 기관에 데이터 공유를 강제하는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진전은 이달 15일 도입 예정인 ‘디지털 신분증(digital ID)’ 제도다. 이 제도 아래에서 중앙정부는 모든 국민의 웹사이트 및 앱 사용 기록을 하나의 장부로 관리할 수 있다. 이제까지 이 시스템을 운영했던 거대 기술기업들은 사용자의 실명을 식별할 수 없게 되고, 단지 암호화된 숫자와 문자의 흐름만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이 디지털 장부는 언젠가 국가가 전 국민을 감시할 수 있는 ‘판옵티콘(Panopticon)’, 즉 전방위 감시체제가 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뿐 아니라 산업과 국가 활동까지 포함하는 통합된 ‘국가 데이터의 거대한 바다’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이로 인해 인공지능 모델 훈련에 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신생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는 장벽도 낮아지는 등의 이점이 기대된다는 것.

그러나 단점도 분명하다. 중국 정부는 개인 데이터 관리 측면에서 좋지 않은 전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예컨대 상하이 경찰은 해커에게 10억 건의 개인정보 기록을 유출당한 바 있다. 또한, 민간 기업이 생성한 데이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경우 수익성은 악화된다. 

이는 곧 혁신에 대한 유인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비록 디지털 신분증 제도가 기존의 비효율적이고 남용이 심한 하위 감시 체계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새 시스템 역시 ‘빅브라더 천국’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지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직면한 과제. 예컨대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AI기업인 팔란티어(Palantir)를 고용해 정부 데이터 통합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다. 유럽연합은 자사의 GDPR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인도의 ‘아드하르(Aadhaar·생체인증기반의 전자주민등록제)’ 신분 시스템은, 경제 성장보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우선하는 방식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모든 국가는 데이터 관리의 규모와 효율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재산권, 사생활, 시민 자유를 보호하는 견제와 균형을 반드시 설계해야 한다. 이 때문에 그 과정이 더 어렵다. 반면 중국은 이러한 가치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디스토피아적 감시체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서구 혁신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 방대한 국가 데이터의 큰 바다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서나간다면, 이는 단지 경제적 도전이 아니라 정치적 도전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목소리를 높였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