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용인하에 한국이 핵무기 비밀 개발? 스웨덴을 보라”

이코노미스트, “소련의 선제공격 빌미 우려…1960년대 완성 앞두고 결국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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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각 분쟁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 축소와 자주국방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차관으로부터는,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용인 주장까지 나왔다. 

러시아는 핵무기의 억제력을 공개 찬양하며, 북한 사례를 모범으로까지 언급하는 실정이다. 북핵 위협이 커지고 미국의 개입은 줄어들 조짐을 보이자, 한국 내에서도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대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스웨덴의 과거 핵개발 사례를 들어, “한국의 핵무장 시 오히려 위기가 증폭될 위험이 있다”며 “북한과의 상호 ‘선제 전략’이 핵전쟁 가능성을 높인다”고 최근 주장했다. 스웨덴이 당초 구상했던 것처럼, 한국의 핵무기는 전쟁 억지 수단이기보다는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는 수단에 가깝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냉전의 한가운데인 1960년대 초에 미국의 정보기관과 군 지휘부는 의외의 국가가 곧 핵무기 보유국이 될 것으로 의심하게 됐다. 그 국가는 바로 스웨덴. 이 나라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모두 중립적으로 관망했었다.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창설될 때에도 동맹 가입을 거절했던 평화국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초 스웨덴은 오랜 비밀 연구 끝에 핵무기 제조를 2년 정도 남겨두고 있었다. 정부 관리들은 마치 제임스 본드의 영화처럼, 플루토늄 생산공장을 거대한 암석 동굴에 숨기는 계획을 논의했다. 군 사령관들은 소련의 위협에 타격을 주기 위해 100기의 전술 핵폭탄, 미사일, 어뢰를 포함한 무기 보유 계획을 수립했다. 선호된 시나리오는, 병력을 선적 중인 소련 침공 함대를 발틱해의 건너편 항구에서 타격한다는 것이었다.

냉전 시기 미국의 핵확산 방지 정책은 단호했다. 일종의 덫이 준비됐다. 그것은 값싸게 제공되는 농축 우라늄-235였다. 미국은 이 민수용 원자력 발전 연료를 스웨덴을 비롯한 국가에 저렴하게 제공했다. 그리고, “굳이 재처리 시설을 만들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1963년, 미국의 원자력청 고위 관계자는 스웨덴의 한 과학자에게 물었다. “혹시 핵무기를 만들 계획이냐”고. “만약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매우 부정적으로 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압박과 더불어, 스웨덴 국내 정치인들도 핵무장에 회의적인 입장을 갖게 됐다. 긴 논쟁 끝에,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결국 소규모로 가시화된 핵무장이 △소련을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웨덴을 타겟으로 만들며, △방위 예산을 압박하고 △도덕적 명분을 훼손한다고 판단했다. 1960년대 중반, 스웨덴의 핵 계획은 종료됐다.

스웨덴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공포스러웠던 냉전 당시 여러 선진국은 핵무장을 고민했다. 미국은 이들에게 위협뿐 아니라, 경제적 인센티브와 안보를 보장했다. 이를 통해 핵무기 확산을 저지하려 전력을 다했다. 

최근 들어 세상은 다시한번 위험해지고 있다. 북한과 중국을 마주한 한국과 일본, 러시아와 인접의 폴란드 등에서는 핵무장에 대한 논의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핵전쟁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다가도, 다른 국가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반복해왔다. 2016년 대선 캠페인 당시 트럼프는, 일본이 자체 핵무장을 통해 북한을 억제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라고 단언했다. 또,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될 수는 없다”라며 “이미 우리는 핵의 시대에 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일본·한국 주둔 미군의 유지 비용을 저주하며, 유럽에는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다.

2024년 대선을 몇달 앞두고, 트럼프 진영의 엘브리지 콜비 현 국방부 정책 차관은 한국 언론에 “당신들 나라는 북한으로부터의 자국 방어를 대부분 책임져야 한다”라며 “미국은 북한과 싸울수 있고 곧 이어 중국과도 싸울 준비가 된 군대는 갖고 있지 않다”라고 발언했다. 한국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미국은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도 그는 주장했다.

상대방인 러시아는, 핵무장이 주는 힘에 대한 찬양을 감추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시도하는 서방을 향해 수차례 핵 위협을 가했다. 이는 스웨덴이 2024년 NATO 가입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최근 북한의 핵 개발 결정을 “시의적절하다”며, 그 덕분에 “어느 누구도 북한에 무력을 사용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핵무장 국가가 늘어난다고 해서 세계가 더 안정되거나, 미국이 친구들에 대한 안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스웨덴은 당시 소수의 핵무기로 적을 격퇴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대신,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는 것. △첫째는 소련이 침공하는 비용을 높이는 것, △둘째는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스웨덴의 냉전 전략을 연구한 마츠 베리퀴스트 스웨덴 전 대사는 이를 ‘이중 전략’이라 부른다. △A안은 중립, △B안은 서방과의 은밀한 군사 협력이었다. 그는 1970년대 워싱턴 근무 시절, 스웨덴과 미국 군대 간의 깊은 협력을 직접 목격했다. 주요 정치인들은 베트남전과 기타 분열적 주제들에 대해 공공연하게 논쟁한 이후에도 그랬다. 1950년대 후반 스웨덴 국방부는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싸운다”라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는 미국의 안보 우산이, 위기 상황에서 스웨덴까지 확장될 것이라는 “상당한 확신”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베리퀴스트 전 대사는 말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웨덴은 ‘촉매형 핵무기 태세(catalytic nuclear posture)’를 취한 것이다. 이는 자국의 핵무기를 통해 후원자인 초강대국의 개입을 유도하려는 전략. 미국 스탠퍼드대 스콧 세이건 교수에 따르면, 이는 소규모 핵무장국이 흔히 쓰는 방식이다. 그는 1973년 이스라엘이 욤 키푸르 전쟁 당시, 핵무기를 사용할수 있다고 암시해 미국의 재래식 무기 공수 지원을 이끌어낸 사례를 인용했다.

억지력 연구자들은 한국의 핵무장이, 또 다른 복잡한 문제들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한국과 북한처럼 서로로부터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두려워하는 특별한 리스크가 그것이다. 두 나라는 이미 ‘선제 대응’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새롭게 핵을 보유한 모든 국가는 종종 거짓 경보와 진짜 위협을 구별하는 법 등을 익히는 ‘학습 곡선(learning curve)’을 겪게 된다고 세이건 교수는 말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핵무장을 할 경우, 불안정한 이웃을 둔 신생 핵무장국이 될 것”이라며 “만약 핵전쟁 국면에 접어든다면 설령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더라도, 질질 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라고 진단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