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롯데, CJ 등 특검의 수사 물망에 오르내리던 대기업들은 우선 안도하는 분위기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새벽 4시50분께 특검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지난 18일 오후 2시10분에 끝난 영장실질심사 후 기각 발표까지 무려 18시간 이상이 걸렸을 정도로 깊은 고민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전날 밤 늦게부터 이날 이른 새벽에 발표될 것이란 관측도 어긋났다.
조 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 제3자뇌물 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위증(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다. 수사팀은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는 대가로 최 씨 일가를 지원한 것으로 봤다.
우선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이 승마 유망주 육성 명분으로 2015년 8월 최 씨가 세운 독일의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10억 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 원가량을 송금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이 부분을 특정주주, 즉 이 부회장 1인을 위한 행위로 간주해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삼성그룹은 최 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38·구속기소)씨가 평창올림픽을 활용해 이권을 챙기려 세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후원했다. 최 씨가 배후에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에도 주요 대기업 중 최대인 204억 원을 출연했다.
특검팀은 삼성그룹이 박 대통령과 최 씨 측에 430여억 원 지원을 약속하고 실제로 250여억 원을 건넨 것으로 봤다. 뇌물수수죄는 실제 돈이 건너가지 않았더라도 약속한 행위만으로도 성립해 430억 원 전체에 뇌물 공여와 제3자뇌물 공여 혐의가 적용됐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결과적으로 최 씨 일가에 거액을 후원한 것은 맞지만,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권한을 가진 박 대통령의 강요에 가까운 요구 탓에 어쩔 수 없이 지원한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으로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자체에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특검의 과감한 법리 적용은 일차적으로 법원의 관문을 넘지 못한 셈이 됐다. 내달 초까지 박 대통령을 대면조사하려던 특검팀이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또 향후 면세점 선정 및 사면 등과 관련해 박 대통령 측과 긴밀히 교감한 정황이 있는 SK,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특검팀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고개를 든다. SK, 롯데 등은 “다른 기업의 일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며 공식 입장을 자제한 채 물밑에서 발 빠르게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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