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창립 79년 동안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부회장까지 총수 3대에 이르는 동안 여러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구속까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7일 오전 5시35분께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낸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특검은 28일 수사 기간 만료를 앞두고 이 부회장 구속을 발판삼아 박 대통령 조사에 남은 역량을 쏟아 부을 전망이다.
이 부회장을 심문한 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라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1938년 대구 ‘삼성상회’에서 출발해 79년간 글로벌 기업으로 커오면서 겪은 숱한 위기 중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시련을 맞게 됐다.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은 1966년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 55톤을 건축자재라고 속여 들여와 팔려다 들통 나는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삼성이 박정희 정권과 밀수로 번 돈을 나눠 가지려 했다는 의혹이 일정도로 위기에 몰렸지만 검찰에 불려가지는 않았다.
이 전 회장은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과 경영 은퇴를 선언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대신 그의 차남이자 밀수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상무가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이건희 회장 역시 수차례 의혹의 중심에 섰지만 구속된 적은 없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할 당시 다른 대기업 총수와 마찬가지로 검찰 조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돼, 1996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10월 사면됐다.
2005년 ‘X파일’로 불리는 사건이 터졌다. 삼성 임원진이 정치권·검찰에 대한 금품 제공을 논의한 것이 녹음파일 형태로 폭로된 것이다.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이건희 회장은 서면 조사만 받았고 무혐의 처분됐다.
삼성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재 8000억 원을 사회기금으로 내놨다.
2007년에는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50억 원대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이건희 회장 지시로 금품 로비를 하고 자신 명의의 비밀계좌로 비자금이 관리됐다는 내용이었다.
곧 ‘삼성 비자금 특검법’에 따라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출범해 삼성 비자금과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을 훑었고 이건희·재용 부자가 동시에 수사 대상에 올랐다.
당시 삼성전자 전무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등을 통한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으로 처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 부회장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이 회장은 배임·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기소 직후인 2008년 4월 자신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지배구조 개선방안 등이 포함된 ‘경영쇄신안’을 내놓고 다시 한 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법원에서 일부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지만 약 1년 뒤 사면됐다.
이처럼 삼성 총수 일가는 검찰과 여러 차례 악연을 맺었지만 대규모 변호인단을 동원한 치밀한 방어 전략으로 고비를 넘겨왔다.
그러나 변호인단의 '철통 방어'도 이번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된 이 부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이번 특검에서 이 부회장 측은 최 씨 일가 지원이 박 대통령의 사실상 강요에 따른 것이며 ‘피해자’라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이날 법원은 결과적으로 삼성의 최 씨 일가 지원과 박 대통령의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사이에 대가성이 있다는 특검 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부문 사장 겸 대한승마협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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