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뉴스=이홍렬 대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난 2월 이후 매달 한 번 꼴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랑스, 캐나다, 중국, 일본, 인도 등 출장지도 다양하다.
이 부회장의 출장지와 행적에는 최근 삼성전자의 고민이 담겨있다. 글로벌 도전자들로부터 스마트폰 등 주력사업을 지켜내고, 인공지능 등 차세대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2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총 4차례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이 중 가장 최근의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 참석 일정을 제외한 3번의 출장은 비공개였다.
이 부회장이 석방 뒤 찾은 첫 해외 국가는 프랑스 등 유럽과 캐니다였다. 지난 3월 22일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립 80주년 기념식 참석 대신 유럽으로 향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에 들렀다. 4월 7일 이 부회장 귀국 후 해외 프랑스 파리 인공지능 연구센터 개소, 인공지능 글로벌 전문가 영입 등 인공지능 관련 소식이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 러시아 모스크바, 프랑스 파리 등 5곳에 인공지능 연구센터를 세웠다. 또 지난 6월 뇌 신경공학 기반 인공지능 전문가 세바스찬 승 프린스턴대 교수와 인공지능 로보틱스 전문가 다니엘 리 펜실베니아대 교수를 영입했다. 이들 두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각각 인공지능 전략 수립 및 선행연구 자문, 차세대 기계학습 알고리즘 및 로보틱스 연구를 담당한다.
인공지능은 그 자체가 거대한 차세대 산업이면서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주력분야인 가전제품과 스마트폰의 경쟁력 향상에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2020년까지 자사의 모든 스마트 기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기술 확보가 쉽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여서 이미 미국, 중국 등의 글로벌 기업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2020년까지 인공지능 선행 연구개발인력을 1000명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과의 인공지능 인재 영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점이 삼성전자의 고민이다. 이 부회장이 가장 먼저 해외 인공지능 연구소를 챙기고 전문가 영입에 힘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첫 번 째 출장 뒤 한 달이 안 돼 이뤄진 이 부회장의 두 번 째 출장지는 중국이었다.
5월 2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당시 출장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책임지는 반도체 사업을 챙기고 고객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 부회장은 중국 선전에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션웨이 BBK(스마트폰 제조사 VIVO의 모회사) CEO 등을 만났다.
당시 출장에는 김기남 DS(Device Solutions)부문장(사장),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사장),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관련 주요 경영진이 동행했다.
이 출장은 또 상황이 좋지 못한 중국 시장을 챙기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해석됐다. 현지 언론은 이 부회장이 샤오미와 삼성전자 스마트폰 매장 방문 사실을 보도했다.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2013년까지 20% 대를 유지했지만, 올해 1분기 1.3%을 기록하는 등 급격하게 추락했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삼성전자 전자제품 중국 판매법인 삼성차이나인베스트먼트(SCIC)는 최근 수년간 중국 현지기업들에게 밀려 뚜렷한 실적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1분기 순손실 8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하는 상황까지 맞았다.
삼성전자의 중국 생산법인들의 실적도 줄었다. 디스플레이 생산법인 삼성쑤저우LCD의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8.7% 감소했고, 전자제품 생산법인 삼성전자후이저우(SEHZ)의 순이익도 24.1% 줄었다.
여전히 시장이 성장하는 몇 안 되는 국가인 중국에서의 실적 하락은 삼성전자의 성장세 유지에 부정적인 신호라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중국 챙기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5월 31일부터 6월 10일까지 진행된 세 번째 출장지는 일본이었다.
이 부회장은 야자키 등 일본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야자키는 자동차용 전원과 통신케이블, 전방표시장치(HUD) 등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으로 갖춘 대표적인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다.
이 때문에 세 번째 해외출장의 주된 목적은 전장사업 강화방안 마련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앞서 중국 출장에서 전기자동차 제조사 BYD의 왕추안푸 회장을 만나 전장사업 등을 주제로 논의한 바 있다.
전장사업은 삼성전자가 차세대 먹거리로 특히 많은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10월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텔레매틱스 등 전장 기업인 하만 인수에 80억 달러를 썼다. 국내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분야 기술 확보를 위해 3억 달러 규모의 오토모티브 혁신 펀드도 조성했다.
삼성전자는 전장사업이 자사의 강점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기술 등과 연관돼 있고 무엇보다 성장성이 매우 높아 차세대 사업동력으로 삼기에 적당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삼성전자는 글로벌 전장 시장을 리드하는 수준은 아니다. 이러한 고민이 이 부회장의 해외출장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평가다.
이재용 부회장의 가장 최근 출장지는 인도였다. 7월 8일부터 4일간의 일정이었다.
당초 이 부회장이 7월 10일부터 일주일간 열린 선밸리컨퍼런스에 참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최종 선택은 인도의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 참석이었다.
이 부회장이 2002년부터 매년 참석하면서 팀쿡 애플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 글로벌 기업 리더들과 교류해온 선밸리컨퍼런스행을 포기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행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인도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해왔지만, 지난해 4분기 중국의 샤오미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또 삼성전자의 전자제품 인도 생산·판매법인 삼성전자인디아는 1분기 매출과 순이익이 각각 5.5%, 5.9% 줄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하는 삼성전자에게 이동통신 가입자가 연 10%씩 성장하는 인도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시장이다. 약 8000억 원이 투입된 노이다 공장 증설은 인도 시장에 대한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투자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인도시장 공략이 글로벌 기업 대부분의 전략인 만큼 인도에 대한 삼성전자의 구애 역시 더 적극적으로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