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진정한 사죄와 보상은 ‘아일랜드식’이다

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한국은 산이 많죠?. 우선 아우토반 같은 고속도로를 닦으세요. 그 동맥을 질주할 자동차산업을 하세요. 제철, 석유화학, 조선, 전자산업 등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본과 화해하세요.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상 42번 전쟁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 샤를 드골 대통령이 악수하면서 이웃 나라가 됐소. 독일은 프랑스와 전투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으나 전쟁에서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소. 지도자는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합니다”

1964년 12월 9일, 

서독 본에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손을 꼭 잡으면서 경제 지원 약속(3500만달러 차관)과 함께 일본과 수교할 것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귀국 후 곧바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 그의 조언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한강의 기적’은 이렇게 시동이 걸렸다.

지난달 이뤄진 한일정상회담과 관련, 말이 많다. 윤석열 정부는 ‘구국의 결단’이라는 반면 야당은 ‘숭일(崇日)외교’라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정권이 일본의 하수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며 “영업 사원이 일본에 조공을 바친 것으로 오므라이스에 국가 자존심과 인권, 정의를 맞바꾼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더구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멀쩡한 섬을 없는 섬으로 하고, 맺은 ‘신한일어업협정’ 즉 사실상 ‘독도 공동소유화’하면서 시작됐는데도 말이다.

이번 양국정상회담 핵심은 이렇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주요 내용인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정상화하고, 수출규제 해제 등 경제 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 한일 재계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도 만들기로 했다. 우리 경제와 안보에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다만 위안부 징용 해법에 대한 일본의 호응과 사과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은 있다. 기시다 총리는 ‘사과’나 ‘반성’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으로 갈음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상대에 대해 고개 숙인 사과와 배상을 외칠 텐가? 제국주의 시절 지배국이 피해국에게 사과나 보상을 한 사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 아프리카, 남미,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어느 나라가 지배국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가? 그들이 바보 국가라서 그런가?

반일 주의자들은 독일의 예를 많이 든다. 그러면 독일이 정말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국가여서 유대인에게 사죄와 보상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나라의 앞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했다는 점을 모를까? 

유대인의 파워는 거의 절대적이다. 세계 경제는 물론 미국 정계까지 그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월스트리트, 무디스 등 금융시장 모두 그들의 작품이다. 원유, 곡물, 갤럽, 언론, 영화계, 음악계, 과학계, 미국의 법제, 금융 통화제도, 펀드, 국제금융, 다국적 기업, 핵무기 등 일일이 나열하기가 버겁다. 보통 미국 의회 상하원 10% 이상 차지하고 있고, 각료도 10여 명이 넘는다. 석유왕 존 록펠러,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패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공통점 중 하나는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포브스 대부호 100명 중 32명, 50위권 대기업 CEO의 27.5%, 4대 일간지 모두 유대인 소유다. 지상파 CBS, ABC, NBC, CNN, 폭스뉴스…. 아이비리그 총장과 교수진 40%, 명문 대학 학생의 33%, 50대 영화사의 감독(60%) 작가, 캐스팅 담당 등 헐리우드 역시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다. 또 노벨상 수상자 23%가 유대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도 그들에게 밉보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독일 초대 수상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는 현명한 지도자다. 서독의 국제질서 편입과 경제부흥을 위해 유대인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결심했다. 이스라엘에 34억 5000만 마르크에 달하는 배상액을 15년간 현물로 지불하는 ‘룩셈부르크 조약’이 그것이다. 국가배상과 별도로 나치 시절 강제노역으로 이득을 본 6500여 민간 기업이 100억 마르크의 재원을 마련하여 ‘기억·책임·미래재단’(기억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을 설립하여 강제 노동 피해자들에 대해 보상도 했다. 독일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독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일랜드는 지난 2003년, 1인당 국민소득에서 영국을 꺾은 기념으로 자존심을 알리는 ‘스파이어 첨탑(121.2m)’을 세웠다. 원래 그 자리는 영국의 자존심 ‘넬슨 동상’이 있었던 자리다. 2023년 4월 현재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는 4만5380달러, 아일랜드는 7만4520달러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자존심을 꺽기 위해 담대한 결단을 했다. 90년대 노사정 대타협, 12.5%라는 유럽 최저의 법인세율과 저임금 정책으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정보기술(IT) 붐에 힘입어 고도성장에 성공했다. 2004년에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고난과 궁핍의 역사 면에서 우리와 비슷하다. 심지어 지금도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존심 세우기는 우리와 달랐다. 영국에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기에 앞서 ‘잘사는 길’을 택했다. 국제 사회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오로지 국익밖에 없다. 어쩌면 조폭 사회와 똑같다. 

2009년 11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파리의 개선문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9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이들은 불가침을 다짐하며 ‘영원하라 프랑스, 영원하라 독일, 프랑스와 독일의 우정’을 외쳤다.

한일 간에도 이런 날을 기대해본다.

chang@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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