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시장의 권력이, 판매자로부터 소비자에게 극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고차 거래 등 정보 비대칭이 만연한 영역에서, AI가 시장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정보 부족을 이용해 의료, 주택 개조, 법률 서비스 등에서 발생하는 ‘바가지 경제(rip-off economy)’는 판매자가 폭리를 취하는 구조였다. AI가 이 정보 비대칭의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시, 소비자의 협상 성과를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협상과 재계약 등을 돕는 스타트업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AI의 지원을 받은 불만 접수 때 구제율이 크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 등이 나오고 있다.
AI를 활용할 줄 안다면 시간과 돈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새 차를 리스하나? 계약서 사진을 먼저 챗지피티에 올려 보라. 수도꼭지의 누수 문제에 도움이 필요한가? AI는 종종 집수리 전문가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잠투정이 심한 아기를 둔 부모는 이제 의사의 진료 예약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대신, 챗봇을 이용해 몇 초 만에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가성비가 가장 좋은 와인을 찾는 훌륭한 방법은, 클로드에게 와인 리스트의 파일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별 사례들은 더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AI가 대중화되면서, 판매자, 서비스 제공자, 중개업자들의 소비자에 대한 정보 우위가 사라진다는 것. 이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오래 지속돼 온 왜곡 중 하나였다.
AI로 모든 소비자가 주머니 속에 ‘천재’를 갖게 되면, 이들은 잘못된 판매에 덜 취약해질 것이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고, 전반적인 경제 효율성은 개선된다. 불투명성, 혼란 또는 타성에 의해 기업들이 이익을 얻는 ‘바가지 경제’는 그 맞수를 만나고 있다.
정보 우위는 시장이 존재하는 만큼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중세 영국에서는 식료품 상인들이 가짜 저울로 고객을 속였다. 당시, 술집 주인들은 손님들을 더 목마르게 만들기 위해 맥주에 소금을 넣었다. 비열한 이런 관행은 단지 짜증을 일으키는 수준을 넘어선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조지 애컬로프는 197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고차 시장을 논했다. 해당 차량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숨겨진 문제가 있는 ‘레몬’인지를 구매자는 알기 어렵다. 따라서 구매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그 결과, 착취적인 행동으로 의심받을까 우려한 정직한 중개인들은 시장에서 멀어진다. 서비스 품질은 저하된다.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는 소비자는 줄어든다.
인터넷은 고객을 속이기가 더 어렵게 만들었다. 카팩스(Carfax) 등 차량 데이터 제공업체를 통해, 고객은 차량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애컬로프가 지적한 문제 중 일부를 극복한다. 이제 택시 기사들은, 우회를 통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경로로 승객들을 데려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리프트나 우버 같은 앱이,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리뷰 웹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는 ‘괜찮은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으로 관광객을 안내한다. 2000년대 초반 런던에는, 관광객에 대한 악명 높은 함정이던 ‘앵거스 앤 애버딘 스테이크 하우스(Angus and Aberdeen Steak Houses)’ 지점이 20여개 있었다. 오늘날에는 4개만 남아 있고, 다들 예전보다 나아졌다.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평론가들은 바가지 시장의 종말을 선언했다.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는 2007년에 “정보의 완벽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정보 비대칭에 대한 많은 경제 이론이 논리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경험적으로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조지 메이슨 대학의 타일러 코웬과 알렉스 타바록이 2015년에 주장했다. 
현재 미국 소비자 지출의 약 25%가, 의료에서 주택 개조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정보 비대칭이 있는 상품과 서비스에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밀레니엄 전환기에 30%였던 것에서 하락했다. 
하지만 이는 많은 바가지 산업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건축업은 고전적인 예다. 주택 소유자는 난방·환기·공조(HVAC)나 페인트 등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해, 부실 시공자들의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결함이 있는 부동산을 임대한다. 세입자가 입주한 후에야 이 결함이 명확해진다.
변호사는 형편없는 조언을 제공하지만, 고객은 이를 너무 늦게서야 알게 된다. 의사들은 더 비싼 치료 옵션을 제시한다. 관료들은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온갖 결정을 내린다. 예상치 못한 세금 벌금에서부터 계획 신청 거부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경제학자들은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비용에 대해, 개별적인 사례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2012년에 모기지 대출자들은 일반적으로 최소 1000달러(약 142만 6700원) 이상을 손해 봤다는 사실을 컨설팅 회사인 샌드힐 이코노메트릭스(Sand Hill Econometrics)의 수잔 우드워드와 스탠퍼드 대학의 로버트 홀이 발견했다. 충분히 비교 쇼핑을 하지 않은 결과다. 
다른 이들은 금리가 하락했을 때, 모기지를 신속하게 재융자하지 않아 수천 달러(수백만 원)를 손해봤다. 미국 의료 시스템은 ‘과잉 진료와 저가치 진료’로 인해 연간 최대 1000억 달러(약 142조 6700억 원)를 낭비했다고, 2019년에 발표된 한 논문(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은 밝혔다.
이러한 추정치를 합산하면, 미국에서 바가지 시장은 연간 수천억 달러(수백조 원)에 달하는 실질적인 소비자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영국에서는 시민들이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나쁘거나 다른 결함이 있는 상품 및 서비스를 구매한 결과,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5%에 해당하는 손실을 입었다. 2024년 정부 의뢰로 실시된 연구결과, 이같이 추정됐다. 이는 동일한 제품의 다른 버전을 다시 구매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불만에 낭비된 시간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애컬로프가 ‘레몬’에 대해 글을 썼던 이후 개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고차 시장은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스타트업들이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카엣지(CarEdge)는 AI 협상가를 사용해 차량 가격과 조건에 대해 딜러와 흥정한다. 프러보(Pruvo)는 환불이 가능한 호텔 예약을 모니터링해, 요금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재예약해준다. 
일반적인 대규모언어모델(LLM)은 이미 유용하다. 소비자의 절반 이상은 법률 질문에 답하기 위해 AI를 사용했거나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소프트웨어 회사인 클리오(Clio)의 설문조사 결과는 보여준다. “새로운 스테레오타입은, 지(Z)세대가 계약서를 먼저 챗지피티에 돌려보지 않고는 차를 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엑스(X)의 인기 계정인 파이낸셜 디스토피아(Financial Dystopia)는 언급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들은 챗봇을 이용해 보상받는다. 2024년 말까지 금융소비자 불만의 약 18%가 LLM의 도움을 받은 글쓰기와 관련돼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의 웨이신 리앵 등이 최근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AI가 “훌륭한 조언을 받을 특권이 없었던 사람들이... 꽤 훌륭한 조언을 얻도록 도울 것”이라고 챗지피티 개발사인 오픈AI의 브렛 테일러 회장은 주장한다.
AI로 무장한 소비자의 영향에 대한 증거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컬럼비아 대학의 라이언 셰이와 동료들의 논문은, 중고차 및 아파트 임대와 관련된 실험을 보고한다. AI 모델과 상호 작용한 사용자들이 “협상 성과를 상당히 향상시켰다”는 것을 그들은 발견했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에 접수된 100만 건 이상의 불만 사항을 분석한 결과, AI의 도움을 받은 불만 중 49%가 구제를 받았다. 반면, 사람이 작성한 불만은 40%만이 구제를 받았다. 이는 홍콩 시립 대학의 신민규와 동료들의 새로운 연구가 발견한 사실이다.
AI가 바가지 시장을 실제로 얼마나 제거할지는 다음 두 가지에 달려 있다. 첫째, 소비자가 AI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봇을 학습 도구로 사용해, 소비자가 더 설득력 있게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챗지피티의 조언을 무작정 반복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해, 얀 비어만 등의 연구 결과는 고무적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이미지에 있는 점의 개수를 추정하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다양한 종류의 AI 지원이 제공됐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적 증거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알고리즘 추천의 품질에 따라 그 의존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연구원들은 발견했다.
둘째, 제공업체와 소매업체 역시, 소비자에 대해 자체 AI 도구로 반격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존 상품 목록은 이미 AI가 생성한 제품 설명으로 넘쳐난다. 오늘날 배관공에게 챗지피티를 사용하면, 가격을 깎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1년 후에 그에게 챗지피티를 사용하면, 그 배관공은 자신만의 모델을 통해 당신에게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하도록 지시받을 수도 있다. 
기업들은 챗봇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유리한 정보를 내보내도록 하는 ‘생성 엔진 최적화(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많은 시장에서 양 당사자는 AI 중재자(AI arbitrators)가 필요할 수 있다. 공정한 ‘제3자 봇’의 판결에 따르기로 동의한다는 것.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