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인터넷전문은행 누뱅크(Nubank)가 세계 최대 핀테크 회사로 떠오르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탄생한 이 디지털은행이, 유럽의 챌린저뱅크 레볼루트 등을 제치고 미국 월스트리트를 향해 정면 도전을 벌이고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누뱅크의 고객은 1억2000만명. 자산 규모는 전통 대형은행보다 훨씬 작지만 수익성과 성장성은 오히려 앞선다. 목표는 이제 미국 전역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은행의 조건부 라이선스 승인을 받아 18개월 내 진출을 추진한다. 창업자인 데이비드 벨레즈(David Vélez)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은행이 아니라 금융을 하는 글로벌 기술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뱅크의 무기는 단순하다. 지점이 없는 저비용 구조, 낮은 수수료, 그리고 인공지능(AI) 신용평가다. 이 모델은 브라질 금융 과점 구조를 무너뜨렸다. 회사는 미국에서도 은행 서비스가 부족한 중산층·농촌·히스패닉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한국 금융권에도 다음 도전자는 이처럼 해외 업체가 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검증된 모델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진출하게 됐다. 은행의 본질도 변화하고 있다. 은행의 경쟁력은 거대자본이 아니라, 데이터와 고객경험(UX), 그리고 AI로 바뀌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긴장하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동시에 종이수표, 그리고 지점 중심의 낡은 시스템이 남아 있다. 누뱅크는 바로 이 틈을 노린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쟁이 은행의 정의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자본 규모가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금융 패권을 좌우하는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FT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를 공략해 900억 달러(약 131조 7420억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브라질의 누뱅크가 지금 미국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서구권에서 가장 가치 있는 디지털 은행이 되기 위한 경주에서, (유럽의 챌린저뱅크인) 레볼루트에게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난 것.
브라질 누뱅크는 13년 전 상파울루에서 새로운 디지털 대출 기관을 만들고자 했던 세 명의 젊은 창업가들이 시작했다. 이 은행은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9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금융 기관의 왕좌를 차지했다.
유럽의 핀테크 챔피언인 레볼루트는 누뱅크보다 2년 늦게 설립됐다. 비즈니스 모델도 약간 다르다. 그러나 레볼루트는 아직 기업공개(IPO)를 거치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기업 가치가 2/3나 급등했지만, 이 영국 회사의 가치는 750억 달러(약 109조 8300억 원)에 그치고 있다.
누뱅크의 행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본거지인 남미 전역에서 1억 2000만 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고 매 분기 이익이 증가하고 있다. 이 인터넷 전문 은행은 레볼루트와 마찬가지로 이제 더 큰 보상인 미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누뱅크는 이미 멕시코와 콜롬비아에 진출해 있다. 이제는 미국에서 전국 은행의 설립 인가를 신청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핀테크 기업 중 하나를, 사상 처음으로 선진국 경제권에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누뱅크는 지난주 새로운 금융 기관 설립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향후 1년 동안 자본을 확충해 18개월 이내에 출범할 계획이다. 이 은행의 억만장자 CEO이자 공동 창업자인 벨레즈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향후 10년은 우리가 브라질의 한 은행으로부터,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테크 기업으로 어떻게 변모하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다.”콜롬비아 출신인 그는 미국으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기 전 FT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12~24개월 안에 누뱅크는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선 국가들로도 진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원대한 야망은 이 은행의 상장 법인인 ‘누 홀딩스(Nu Holdings)’의 주가가 2025년 한 해 동안 50% 이상 급등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강력한 실적을 바탕으로, 누뱅크의 시가총액은 브라질 최대 은행인 이타우 우니방코(Itaú Unibanco)를 추월했다. 참고로 이타우의 자산은 5450억 달러(약 798조 435억 원)인 반면, 누뱅크는 680억 달러(약 99조 5724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스탠퍼드 졸업생이자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세쿼이아 출신인 44세의 벨레즈에게는 귀환과 비슷한 것이다. 그는 현재 거주지인 우루과이에서 누뱅크의 팔로알토 사무소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다. 누뱅크의 아메리칸 드림은 모국인 브라질의 은행업계를 뒤흔들었던 모델을 시험대에 올릴 것이다.
누뱅크는 2014년 앱 기반의 신용카드로 시작했다. 브라질에서 과점 체제에 도전했다. 이는 수백만 명을 소외시키거나,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고객 서비스가 엉망이기로 유명했다.
지점의 운영 비용이 없었기 때문에, 누뱅크는 기존 은행들이 당좌 예금 같은 기본적 서비스들에 부과하던 많은 수수료를 없앨 수 있었다. 누뱅크는 낮은 간접비와 기술력으로 더 저렴한 상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뱅크는 2023년 이정표인 연간 순이익 10억 달러(약 1조 4655억 원)를 처음 돌파했다. 이후, 에스앤피(S&P) 글로벌 데이터에 따르면, 누뱅크가 이번 달에 2025년 순이익 29억 달러(약 4조 2493억 7000만 원)를 발표할 것으로 애널리스트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는 전년도 20억 달러(약 2조 9306억 원)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업계의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3분기에 31%를 기록했다. 이는 이타우(Itaú), 브라데스코(Bradesco), 산탄데르 브라질(Santander Brasil) 등 경쟁사들을 압도한 수치다.
하지만 미국 은행 시장이 누뱅크가 현재 운영 중인 3개국보다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하다고 애널리스트들은 지적한다. 미국에서도 같은 수준의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전략적 측면에서는 타당하지만, 도달할 수 있는 수익성과 주력 사업에 대한 집중력 분산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시티그룹의 주식 리서치 이사인 구스타보 슈로덴은 말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벨레즈는 “직원의 60%가 여전히 브라질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국제화 추진에 전념하는 인력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벨레즈는 “미국 시장에서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믿고 있다. △높은 운영 비용, △고객 수수료, △저렴한 예금 금리, △시대에 뒤떨어진 관행들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종이 수표와 상당한 양의 현금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은행 업무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지점에서 이루어진다”고 그는 말했다. “소비자들이 그 모든 물리적 인프라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라는 것.
현재 이 핀테크 기업은 초기에 “특정 틈새 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미국의 고소득층과 도시 인구는 은행을 고를 좋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만, 대중 시장과 중산층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고 벨레즈는 주장했다. 농촌 지역과 히스패닉 인구층이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소외 지역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피라미드 하층부로 갈수록 서비스와 경쟁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더 많은 수수료와 이자율을 지불하고 있다”고 벨레즈는 설명했다. “미국은 워낙 큰 시장이기 때문에, 작은 기회, 즉 작은 퍼센트의 점유율만 확보해도 누뱅크에게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말이다.
미국 시장을 뚫고자 하는 열망은 영국의 디지털 대출 경쟁사인 레볼루트와 스탈링(Starling)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 미국의 기존은행 인수를 검토해 왔다. 누뱅크는 현재로서는 은행 인수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당국자들의 수용적인 환대에 고무돼 있다.
“2024년에 미국 규제 당국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시도조차 하지 마라. 라이선스를 받지 못할 것이다. 문은 닫혔고 아무도 라이선스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벨레즈는 회상했다. “그리고, 최근 6개월 전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다시 찾아갔더니 그들은 ‘언제 들어올 거냐?’고 물었다. 180도 바뀐 것”이라고 했다.
브라질의 경쟁 디지털 대출업체인 인터(Inter)는 지난 1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주 정부 면허를 승인 받았다. 레볼루트 또한 전략을 바꿔 누뱅크처럼 자체적인 미국 은행 라이선스를 신청할 계획이다.
누뱅크는 보험, 투자, 휴대폰 계약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미 최대 경제 대국인 브라질에서의 신용카드와 개인 대출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의 기준금리가 15%라는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매출은 계속 성장해 왔다.
“우리의 목표는 금융 서비스에 AI를 사용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활용 사례를 많이 개발한 곳은 아직 없다. 우리가 선두에 서 있다”고 벨레즈는 말했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누뱅크의 허브는 AI 연구를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누뱅크는 인수한 기업의 AI 모델을 신용 심사(underwriting)에 통합했다. 이를 통해 고객의 카드 한도를 선별적으로 상향 조정할 수 있게 됐다. “신용카드 사업에서 누뱅크와 경쟁하기는 매우 어렵다”면서도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누뱅크가 다른 제품들에서 그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시티그룹의 슈로덴은 평가했다.
비판론자들은 누뱅크가 브라질의 거대한 급여 담보 대출 시장을 공략하는 데 느리다고 지적한다. 벨레즈는 이 부문을 신중하게 확장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내 고객 기반이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누뱅크는 충성도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고소득층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누뱅크는 몇 가지 성장통을 겪고 있다. 누뱅크는 브라질에서 정식 은행 라이선스를 신청중이다. 이름에 '은행'이 들어가는 모든 기관은 정식 은행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다. 벨레즈는 이러한 변화가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실체적으로는, 지난 한 해 동안 CEO를 둘러싼 ‘핵심 인물 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일어났다. 투자자 관계(IR) 책임자는 물론, 최고 제품 책임자(CPO), 최고기술 책임자(CTO), 최고 운영 책임자(COO) 등 여러 경영진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관료주의를 줄이기 위해 관리 계층을 축소한 결과, 이제는 과거 1명의 COO가 담당하던 것에서 늘어나 25명의 임원이 CEO에게 직접 보고하게 됐다.
또한, 누뱅크는 전면 원격 근무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발표된 11월 화상 직원 회의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직원 10여 명이 해고되는 등 논란이 일었다. 벨레즈는 직원들에게 주 3회 출근을 요구하는 것이 “협업, 팀워크, 혁신”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뱅크의 인력은 지난 1년 동안 1/3이 증가한 9000명에 달하며, 이들을 원격으로 통합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그는 덧붙였다.
향후 5년 동안 이 회사는 브라질 사무실 확장을 위해 4억 7500만 달러(약 6966억 8250만 원)를 지출할 예정이다. “완전 원격 근무를 할 때, 잃기 시작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사람들 없이 방에 갇혀 혁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그는 FT에 강조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