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스테이블코인’, 대 중국 규제우회의 새 통로로

이코노미스트, “KYC 허술한 가상화폐 연계카드 결제액 1년새 3배 급증”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가상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AI 접근 우회로’로 떠오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비자·마스터카드와 연결된 글로벌 결제 인프라에 포함되면서, AI의 국가별 접근통제를 우회하는 새로운 금융 레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이용자들은 미국의 최첨단 AI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해, 가상사설망(VPN)과 가짜 아이피(IP)주소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과 연결된 가상화폐 결제카드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서비스에 대한 국가별 접근 제한, 그리고 △가상화폐 결제망의 규제 사각지대가 결합하면서, 금융당국과 AI 기업 모두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이 주간지는 자체 조사결과, 가상화폐 지갑과 연결된 신용·직불카드가 중국 등 미국의 AI 서비스 접근 제한 대상 국가에서 챗지피티(ChatGPT)와 클로드(Claude) 등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카드는 이용자가 보유한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을 일반 카드 결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결제 과정에서 이들 가상화폐가 달러 등 법정화폐로 전환되기 때문에, 일반 가맹점에서는 통상적인 카드 결제와 구별하기 어렵다. 특히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문제의 핵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이 AI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다른 분야에는 남는 돈이 거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과거의 또 다른 열풍이었던 가상화폐 금융에 일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다. 올해 상반기 가상화폐 스타트업들은 약 750건의 거래를 통해 100억달러(약 13조 6120억 원)의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했다.

AI와 가상화폐는 그동안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막대한 컴퓨팅 파워를 사용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그러나 이코노미스트의 조사결과, 이들 두 분야는 급성장하고 있는 불법 거래를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가상화폐와 연계된 신용·직불카드 발급은 급증하고 있다. 이들 카드는 일반 상점에서 사용하는 결제 단말기에 가상화폐 지갑을 연결해준다. 달러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외국 통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통화 가치가 불안정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거래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가상화폐 카드를 이용하는 주요 고객은 또 있다. 많은 카드 발급·서비스 업체들이 카드 소유자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범죄자들, △제재 회피자들이 카드를 악용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또한 이런 카드는 미국의 적대국에 대한 판매 제한을 우회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중국 같은 국가에 있는 사람들이 미국의 최첨단 AI 모델 구독 서비스를 구매하고 있다는 것. 

가상화폐 카드, 스테이블코인을 현실 결제로
가상화폐 카드는 디지털 화폐를 실제 화폐로 바꿔준다.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결제 단말기에서 사용하면 된다. 이런 카드의 사용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도 카드와 연결할 수 있다. 

가격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는 교환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다르다. 스테이블코인의 전체 시장가치는 지난 2년 동안 거의 두 배로 증가해, 3000억달러(약 408조 3000억 원)를 넘어섰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여전히 주로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페이먼트스캔(Paymentscan)에 따르면, 8월 한 달 동안 스테이블코인 카드를 이용한 거래액은 11억달러(약 1조 4966억 6000만 원)를 넘어섰다. 1년 전보다 세 배 증가한 규모다. 실제 규모는 이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많은 가상화폐 카드 업체들이 거래 규모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 명확화가 가상화폐 카드 성장 촉진
최근 2년 동안 미국과 유럽, 홍콩의 규제당국은 디지털 화폐에 대해 보다 명확한 규칙을 마련했다. 그 결과, 이러한 성장이 뒷받침됐다. 가상화폐 전반,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제도권에서 점점 더 인정받기 시작했다.

특히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결제 라이선스를 보유한 스타트업 카드 발급사들에게 자신들의 결제 네트워크 참여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가상화폐 경제의 일부를 차지하려는 목적에서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과거에는 이런 네트워크가 주로 은행을 위한 것이었다.

카드 발급사들은 다시 자신들의 네트워크 접근권을 가상화폐 카드 사업자들에게 제공한다. 대표적인 카드 발급사로는 △레인(Rain), △리프(Reap), △와이렉스(Wirex) 등이 있다. 이 세 회사 모두 자신들이 컴플라이언스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Rain은 지난 1월 아이코닉(Iconiq)과 라이트스피드(Lightspeed) 등 유명 벤처캐피털을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2억5000만달러(약 3401억 5000만 원)를 조달했다. 가상화폐 업체들은 자신들의 브랜드로 고객을 모집한다. 4월부터 9월 사이에 식별이 가능한 가상화폐 카드 사업자는 약 100개에서 250개로 늘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참여하면서, 가상화폐 업체들은 카드 발급사를 통해 두 결제업체의 로고와 자신들의 로고가 함께 들어간 카드를 발급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카드는 세계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비자는 2026년 9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160개 이상의 스테이블코인 연계 카드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집계했다. 해당 프로그램의 결제액은 전년 대비 약 200% 증가했다. 스테이블코인 결제 정산 규모도 연환산 200억달러(약 27조 2000억 원)를 넘어섰다.

스테이블코인 확산, 선진국에서도 문제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가난한 나라의 규제당국을 걱정하게 한다. 스테이블코인이 현지 통화를 대체하면서 경제가 사실상 ‘준달러화(pseudo-dollarisation)’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선진국의 규제당국에도 중요하다. 스테이블코인이 “국가 내부뿐 아니라, 국가 간 불법 금융거래를 위한 추가적인 통로를 만든다”고 코넬대 에스와르 프라사드 교수는 지적한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티알엠 랩스(TRM Labs)에 따르면, 2025년 불법 가상화폐 자금 유입 규모는 1580억달러(약 214조 8800억 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다만 전체 온체인 거래에서 불법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2%로 2024년의 1.3%보다 오히려 낮았다. 즉 가상화폐 전체 시장이 커지면서, 불법 거래의 절대 규모도 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상화폐 카드는 KYC·위치 확인 어렵게 해
특정 고객의 이용을 차단하려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상화폐 카드가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어와 러시아어로 운영되는 웹사이트들은 이란인과 러시아인을 포함한 고객들에게 자체 또는 제3자 가상화폐 카드를 광고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이들 국가는 서방의 금융 제재 때문에,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 이용이 제한돼 있다. 하지만, 한 러시아어 사이트는 가상화폐 카드를 이용하면 “ChatGPT, Claude,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와 기타 국제 서비스를 결제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몬조(Monzo)나 레볼루트(Revolut) 같은 디지털 네오뱅크의 결제카드와 마찬가지로, 가상화폐 카드 역시 원칙적으로는 고객확인제도(KYC)를 거친 검증된 고객에게만 발급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카드 사업자들이 항상 엄격하게 이를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업자에게는 오히려 느슨한 KYC 자체가 상품의 판매 포인트가 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꼬집었다.

가상화폐 분석업체 크리스탈 인텔리전스(Crystal Intelligence)가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가상화폐 카드 사업자의 약 70%가 KYC를 거의 요구하지 않거나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 Crystal Intelligence는 약 100개 업체와 2024년부터 2026년 초까지 11억8000만달러(약 1조 6058억 6200만 원) 이상의 온체인 자금 유입을 분석, 약 67.7%의 사업자가 KYC가 없거나 매우 낮은 수준의 신원확인 절차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들 업체 가운데 KYC가 없는 서비스를 제공한 곳의 약 절반은 홍콩에, 약 1/5은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일부 업체는 완전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가상카드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들은 코카서스나 걸프 지역처럼, KYC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집행력이 떨어지는 국가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한 경우도 있다.

모든 가상화폐 카드가 문제는 아냐
물론 모든 가상화폐 카드 사업자가 불법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업체는 ‘KYC 없음’을 광고한 뒤, 실제로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신원확인을 요구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업체는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 고객 신원을 확인하기도 한다.

많은 가상화폐 카드 사업자는 상품에 대한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고 있다. 문제가 없는 사업자들도 많다. 일부 업체는 심지어 러시아군이나 러시아의 이른바 ‘그림자 유조선 선단’이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Starlink) 등에 대해서는 결제를 제한하기도 한다.

신원확인 않는 사례도 발견
하지만, Crystal Intelligence에 따르면 일부 사업자는 아예 신원정보를 요구하지 않았다. 다른 사업자는 고객이 제출한 정보를 실제로 확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실제로, 이코노미스트는 텔레그램의 러시아어 채널을 통해 비자 카드를 신청했다. 이 채널은 “서류도 필요 없고, 기다릴 필요도 없으며, 긴 신청서도 없다”고 광고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몇 분 만에 해당 카드를 애플페이 지갑에 연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카드 제공업체의 이름은 씬씬(CinCin)이었다. 어떤 카드 발급사와 협력하는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 카드의 월 결제한도는 50만달러(약 6억 7960만 원)로 광고됐다. 비자는 자사의 네트워크가 어디서든 법을 준수하며 불법 활동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AI 접근
가상화폐 카드의 사용처 가운데 최근 더욱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중국 이용자가 미국 AI 모델과 챗봇에 접근하기 위한 결제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미국의 규제와 중국 내 해외 AI 서비스 이용 제한을 우회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안내서가 넘쳐난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제3자 ‘트랜스퍼 스테이션(transfer station)’에 돈을 지불한다. 

이 업체들은 미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국가에서 AI 토큰을 구매한 뒤, 이를 중국 사용자에게 재판매하고 있다. 여기서 AI 토큰은 AI 모델이 처리하는 데이터의 단위를 의미한다.

가짜 신원과 가상화폐 카드까지 동원
또 다른 방법은 AI 연구소에서 직접 구독권을 구매하는 것. 이를 위해 일부 중국 이용자는 가짜 신원을 사용하거나, 가상화폐 카드를 이용해 자신의 실제 위치를 숨긴다. 중국어로 된 한 온라인 안내서는 두바이의 한 업체를 통해 마스터카드를 신청하라고 안내한다.

중국 본토 이용자는 VPN을 이용해 자신이 다른 국가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 다음 구글맵스(Google Maps)에서 해당 국가의 주소를 하나 골라, 카드 신청 과정에 입력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두바이의 해당 업체는 KYC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은행처럼 공과금 고지서를 요구해 해당 주소가 실제 주소인지 확인하지는 않는다고 중국어 튜토리얼 영상에서 진행자가 설명한다는 것이다. 마스터카드는 거버넌스를 중요하게 여기며, 자사 네트워크에서 ‘KYC 없는’ 충전식 카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 신분증으로도 미국 AI 구독료 결제
“매달 수백 명의 사용자가 중국에서 발급된 신분증을 사용하면서, 중국 이외의 주소를 적어 비자 카드를 신청한다.” Rain이 카드를 발급하는 한 미국 가상화폐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한 사례에서는 중국 선전 지역의 IP 주소와 중국에서 발급된 신분증을 가진 사용자는 중국이 아닌 주소를 이용해 카드를 신청했다. 그 후 이 사용자는 볼리비아의 애플 앱스토어에서 ChatGPT 구독료로 5만달러(약 6795만 5000 원)를 결제했다. Rain은 이 같은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Rain은 중국 신분증 자체는 인정한다. 해외 거주 중국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주소를 기재한 신청자는 거부한다. 그런데 Rain을 통해 카드를 제공하는 일부 사업자는 중국 주소를 입력해 KYC에 실패한 이용자에게 다시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비판했다. 

어떤 업체는 아예 “다른 주소로 다시 시도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는 것. Rain은 자사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통제 장치를 우회하려는 시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관련 규정을 준수한다고 밝혔다.

3억5500만달러의 스테이블코인이 중국어권 카드로
2024년 말 이후 Crystal Intelligence가 추적한 홍콩 소재 중국어권 대상 가상화폐 카드 사업자 한 곳으로 3억5500만달러(약 4824억 8050만 원) 이상의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유입됐다고 한다. 이 업체는 4000건의 거래를 처리했다. 일부 관찰자들은 이 가운데 상당수가 AI 토큰을 대량 구매하는 데 사용됐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미국의 한 가상화폐 업체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에 이렇게 말했다. “월 10억달러(약 1조 3593억 원)에 달하는 스테이블코인 카드 결제액 가운데 상당한 금액이 회색지대의 AI 토큰 시장에 자금을 대고 있다고 추측한다.”

Crystal Intelligence의 9월 업데이트에 따르면 4월 약 100개였던 가상화폐 카드 서비스는 5개월 만에 약 250개로 늘었다. 특히 신규 서비스 가운데 47개는 사용자가 자신의 가상화폐를 직접 보관하는 비수탁형 지갑과 연결돼 있었다. 

Anthropic이 Alibaba를 지목
9월 10일 앤스로픽(Anthropic)은 중국 인터넷 대기업 알리바바(Alibaba)가 Claude에 5월부터 7월까지 1억5100만회 이상 접근해 자체 AI 모델을 훈련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은 ‘증류(distillation)’라고 불린다. 증류는 강력한 AI 모델의 답변을 대량으로 수집해 자체 모델을 훈련하는 방식.

Anthropic은 Alibaba가 이를 위해 5000개의 Claude 계정으로 구성된 계정 풀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계정은 자신의 행동을 숨기기 위해 가상카드로 결제했다고 Anthropic은 밝혔다. Alibaba는 이코노미스트의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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