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두 달여 앞두고, ‘네 번째 유예’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정부는 예정대로 과세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제도 보완 필요성을 점검하고 있다.
과세를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측은 조세 형평성과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유예론자들은 해외거래소와의 형평성, 국가 간 거래정보 교환, 복잡한 거래 유형에 대한 과세기준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26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두나무·빗썸·코인원·디지털엑스·스트리미 등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들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는 최근 권대영 재정경제부 1차관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가상자산 과세 관련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거래소 관계자들은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방식이 다양해진 만큼, 명확한 과세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과세자료 제출 시스템을 구축하고 검증할 준비 기간이 필요하며, △해외거래소 이용자와 국내 거래소 이용자 사이의 과세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테이킹과 에어드롭, 탈중앙화금융(DeFi), 가상자산 간 교환 등 다양한 거래에서 소득과 취득가액을 어떻게 계산할지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점도 쟁점이다.
이 자리에서 권 차관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며 “그 원칙이 시장에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과세 인프라와 시장 규율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간 정보교환 여건과 거래 유형별 과세기준, 신고 편의 등 준비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는 간담회에서 과세 시행이나 추가 유예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유예론의 핵심 근거는 해외 거래정보를 파악하는 데 국가별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상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에 따라 한국은 2027년부터 국가 간 정보교환을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은 2029년 참여가 예정돼 있다. 유예론자들은 국제 정보교환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기 전에 국내 과세를 시행하면 국내 거래소 이용자에게만 세금이 제대로 부과되고, 해외 거래소 이용자는 상대적으로 세원 파악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박민규 의원은 지난 16일 가상자산 소득 과세 시행 시점을 사실상 2029년으로 늦추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 간 가상자산 거래정보가 최초로 교환된 연도로부터 2년 뒤 과세를 시행하도록 하는 취지다. 국민의힘도 과세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질 때까지 유예하거나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과세 시행론자들은 반복적인 유예가 조세 원칙과 정책 신뢰를 흔들 수 있다고 반박한다.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말 소득세법 개정으로 도입됐지만, 투자자 보호와 과세 시스템 미비 등을 이유로 시행이 세 차례 연기됐다. 현행 일정대로라면 2027년 1월 1일 이후 양도·대여분부터 과세가 시작된다.
한 조세 전문가는 “과세 인프라가 완벽해질 때까지 시행을 미루기보다는, 제도를 시행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이 가상자산 과세를 시행하면서 제도를 보완해 왔다는 점도 시행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에는 세금을 부과하면서 가상자산 소득에만 유예를 반복하면, 성실 납세자와의 형평성이 훼손되고 법에 정해진 시행 시점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세 방식의 구체적인 내용도 논쟁거리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발생한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된다. 연간 250만원을 기본공제한 뒤 과세표준에 국세 20%,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실질적으로 22%의 세율이 적용된다. 연간 손익을 계산해 다음 해 5월 신고하는 방식이다. 다만 손실 이월공제가 허용되지 않아, 수익이 발생한 해와 손실이 발생한 해의 세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스테이킹 등 새로운 거래 유형에 대한 과세기준을 명확히 하고, 취득가액 산정과 신고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권에 안착시키려면, 공정한 과세 원칙과 실제 납세자가 이해하고 이행할 수 있는 규정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결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가상자산 과세를 예정대로 시행할지, 제도를 보완할지 올해 안에 집중적으로 논의해 정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밝혔다. 정부 역시 관계 부처와 협의해 각계 의견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가상자산 과세의 운명은 연말 국회 세법 개정 논의에서 갈릴 전망이다. 추가 유예를 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과세를 예정대로 시행할 경우에는 거래소별 자료 제출과 신고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유예할 경우에는 그 기간에 무엇을 개선할지 구체적인 일정과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 차례 연기된 과세를 또 미룰 것인지, 시행과 동시에 제도를 보완할 것인지가 정부와 국회의 선택으로 남았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