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뉴스=이홍렬 대기자] "재벌 후손의 후광으로 사는 걸 원치 않습니다".
3년전까지만 해도 두산 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 아들이란 후광을 거부하고 광고인으로 살아온 40살 박서원 두산그룹 전무의 말이다.
지난 200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광고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클리오 어워즈 50주년 시상식에서 반전(反戰)을 주제로 만든 '뿌린대로 거두리라’가 광고 포스터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군인이 겨눈 총구가 그려진 포스터를 기둥에 둥글게 감으면, 그 총구가 다시 그 자신을 향하게 하는 기발한 창의력으로 '폭력은 끝없이 반복되는 자살 행위이기에 전쟁은 멈춰야 한다'라는 메시지이다. 이 광고는 이후 칸 국제 광고제, 뉴욕페스티벌, 클리오, D&AD, 원쇼 등을 휩쓸며 한국인 최초로 5대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광고를 만든 장본인은 당시 31살된 한국의 청년 박서원이었다. 한국의 스타 광고인이 박용만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의 장남이란 사실이 알려진 것은 한 참 뒤였다.
박서원씨는 단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중퇴한 뒤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배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 학사경고를 받았고 학과를 6번이나 바꿔 선택한 학과가 산업디자인이다. 뉴욕 스쿨오브비쥬얼아트(S.V.A)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뒤 친구들 4명과 함께 2006년 빅앤트 인터내셔널이란 광고회사를 설립했다. 광고회사를 차린지 3년만에 이른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독자적으로 광고사업을 해오던 그가 2014년 5월에는 친구들과 함께 콘돔사업을 론칭해 화제를 낳았다. 그는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콘돔은 섹스를 강요하는 제품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장치”라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콘돔으로 스스로를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익금은 청소년용 성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쓰고 나머지는 기부하겠다고 했다. 항간에는 두산이 콘돔사업까지 진출하는 것은 아니냐’는 오해도 생겼다.
그는 돈을 벌기보다는 사업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콘돔사업을 시작했고 앞으로 10년간 10개 정도의 사회공헌 프로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평창올림픽 선수촌에 제공된 콘돔 11만 개 중 10만개도 그가 만든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했다.
박서원이 두산 그룹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광고계열사인 오리콤이 실적이 나빠지면서 2014년 구원투수로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 자리에 영입되면서부터다. 지금 박서원은 두산 면세점 사업부문 유통전략담당 전무이다. 두산이 새로 진출한 면세점사업과 두산타워 쇼핑몰사업을 주도하고 있다.첫해인 2016년 970억 매출에 477억원이던 영업적자가 지난해 3,898억원 매출에 139억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면세점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지만 아직 경영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민머리와 튀는 패션으로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니며 SNS을 통한 소통에 적극적이다. 혼자의 힘으로 광고계에서 스스로 역량을 보여주고 사회적 활동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일반 재벌 오너 후계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재벌 4세라는 말보다 광고천재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데이터저널리즘의 중심 데이터뉴스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