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신용카드 이자율을 10%로 제한하겠다고 밝혀 금융권이 발칵 뒤집혔다. 현재 미국의 카드 이자율은 이달 기준 평균 19.6%로, 최고 36%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대부업법‧이자제한법 시행령에 따라 신용카드 법정 최고금리가 2021년 7월 이후 20%로 돼있다. 현재 국내 신용카드 리볼빙(잔액 이월) 금리는 17~19%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 계정인 트루스소셜 게시물에서 자신의 행정부가 “20~30%의 이자율을 부과하는 신용카드 회사들에 의해 미국 국민이 더 이상 ‘바가지’를 쓰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최근 말했다. 밴더빌트대 연구에 따르면, 이자율을 10%로 제한할 경우 소비자들은 연간 1000억 달러(약 147조 5400억 원)의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의 캐피털 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시티그룹 등 카드 회사와 은행들의 주가는 트럼프의 이 제안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제이피모건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제레미 바넘은 “정당화할 근거가 부족한, 사업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지시”라며, 현실화될 경우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용카드 이자율이 제한될 경우, 각 카드사들은 혜택 축소와 조건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포인트 가치 하락, △연회비 인상, △신규 보너스 축소 등이 잇따를 전망이다. 카드사들로부터 프리미엄 카드 고객은 더 우대받는 반면, 저신용·저소득층은 외면당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가 금리 규제를 넘어, 카드 산업의 ‘고객 양극화’를 가속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금융 접근성이 오히려 위축되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의 프리미엄 신용카드 시장은 이미 과열 상태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내 신용카드 이자율을 한시적으로 10%로 제한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이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몇 년간 카드사들은 프리미엄 카드 고객 확보 경쟁을 벌여왔다. 이들 고객은 비싼 연회비를 내고도 소비가 많아, 은행에 높은 수익을 안겨줬다. 이들은 카드 사용액이 커, 가맹점 수수료(인터체인지 수수료)를 통해 은행에 상당한 수익을 제공한다고 WSJ는 설명했다.
하지만 이자율을 10%로 제한할 경우, 이런 프리미엄 고객들은 더욱 ‘귀한 존재’가 된다. 주요 카드 발급사들은 신용도가 낮은 소비자들로부터 더욱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신용점수와 소득이 낮은 카드 이용자들은 카드 잔액을 이월해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연 20%를 넘는 높은 이자를 부담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높은 금리는, 상환 불이행 위험이 큰 차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은행들은 주장해왔다. 이자율 상한제가 도입될 경우, 카드 혜택 시장에 어떤 파장이 나타날까.
카드 혜택(리워드)은 어떻게 재원이 마련되나
은행들은 신용카드 혜택이 주로 가맹점 수수료에서 나온다고 설명해왔다. 이는 소비자가 카드로 결제할 때마다 은행이 가맹점의 상인으로부터 받는 수익이다. 하지만 카드 혜택 프로그램이 점점 복잡해지고 화려해지면서, 가맹점 수수료만으로는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개인금융 플랫폼 ‘렌딩트리(LendingTree)’의 소비자금융 분석 책임자인 매트 슐츠는 “카드 혜택은 궁극적으로 카드 발급사의 이익에서 나온다”며 “그 이익의 일부는 이자 수익”이라고 말했다.
최근 밴더빌트대 연구에 따르면, 이자율을 10%로 제한할 경우 소비자들은 연간 1000억 달러(약 147조 5400억 원)의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은행들이 그만큼의 수익을 잃는다는 의미다. 수익 구조를 맞추기 위해, 신용점수 760점 미만 카드 이용자들의 혜택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이자율 상한은 카드 혜택을 어떻게 바꿀까
이자 상한으로 전체 수익이 줄어들 경우, 카드사들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고객은 보호하면서 다른 영역의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혜택 프로그램을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로는 △신규 가입 보너스 축소, △카드 발급 요건 강화, △호텔 숙박권·항공 마일리지 등 혜택 사용 조건 강화, △포인트 가치가 떨어지는 이른바 ‘포인트 인플레이션(point-flation)’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정액 캐시백처럼 단순한 구조의 카드들도 새로운 연회비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프리미엄 카드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카드 유형에 따라 영향은 다르게 나타날 전망이다. 연회비가 250달러(약 36만 8800 원)를 넘는 프리미엄 카드는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카드들은 수익 구조가 이자보다는 가맹점 수수료와 항공사·호텔 등 제휴 브랜드의 보조금에 더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룰루레몬, 델타항공 같은 제휴사가 카드 혜택 비용의 25% 이상을 부담한다고 밝힌 바 있다.
프리미엄 카드 연회비도 이미 빠르게 오르고 있다. 카드별 연회비는 △아멕스 플래티넘 895달러(약 132만 304 원) △체이스 사파이어 리저브 795달러(약 117만 2784 원)다. 이자율 상한제가 도입되면 고소득·고신용 고객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나머지 소비자들의 선택지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슐츠는 “돈을 많이 벌고 신용이 아주 좋다면, 은행들은 언제나 그 고객과 거래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1년 한시 상한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업계 단체와 금융 애널리스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이 현재 형태 그대로 입법화될 가능성에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제러미 바넘은 실적 발표 후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만약 이런 상한이 도입된다면, 카드 사업 모델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령 일시적 조치라 하더라도, 카드사들은 정책 번복 가능성과 규제 불확실성을 우려해 대출 전략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지금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자율 상한이 기존 카드 잔액에도 적용될지, 신규 사용분에만 적용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카드 빚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뱅크레이트(Bankrate)의 테드 로스먼 분석가는 “여러 주요 카드사들이 최대 21개월까지 0% 이자를 적용하는 잔액 이전(balance transfer)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전 수수료가 보통 3~5% 붙고, 해당 기간 안에 상환하지 못하면 일반 고금리가 다시 적용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WSJ는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미국 하원과 상원에서는 신용카드 이자율에 대한 임시 상한제를 도입하는 초당적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당시 버니 샌더스 (무소속, 버몬트주)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이 지지자로 참여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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