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디지털 세상의 관문 역할을 해온 지 20여 년. 그 이후 애플과 구글이 구축한 ‘아이폰–안드로이드’ 양강 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오픈AI·메타·아마존이, 스마트폰 이후의 시대를 노리고 있다고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오픈AI·메타·아마존 등은 스마트 안경·AI 핀·음성 중심 기기 등으로 스마트폰의 대체를 시도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은 출하 감소, 반도체 가격 상승, 파운드리 경쟁 등으로 구조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 아이폰 디자인의 주역 조너선 아이브는 최근 “스마트폰과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AI 기기를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메타는 스마트 안경에 사활을 걸고 있고, 아마존은 알렉사를 음성·웨어러블 전반으로 확장 중이다.
배경에는 스마트폰 산업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글로벌 출하량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스마트폰용 메모리 가격은 급등했다. 반도체 파운드리에서도 스마트폰은 더 이상 ‘우선 고객’이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의 종말을 성급히 단정하지 않는다. 스마트 안경 사용자 수는 아직 미미하고, 배터리·발열·사생활 문제 등 기술적 장벽도 높다는 것. 오히려 스마트폰은 AI 연산을 담당하는 ‘중앙 허브’로 남고, 안경·핀·이어버드가 주변 기기로 확장되는 그림이 유력하다.
최근 인터뷰에서 로린 파월 잡스가 샘 올트먼과 조너선 아이브 경에게 그들이 함께 작업 중인 인공지능(AI)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두 사람은 말을 아꼈다.
다만 오픈AI의 CEO인 올트먼은 이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는 경험이 아이브 경과 스티브 잡스가 만든 ‘중독적인 아이폰’과는 다를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는 스마트폰 사용 경험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걷는 것에 비유했다. 번쩍이는 불빛과 시끄러운 소음 속을 걷는 느낌이라는 것.
올트먼과 아이브만이 스마트폰의 대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을 대체하려는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20년간 아이폰과 그 모방 제품들은 소비자들이 디지털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지배해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그 결과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수익성 높은 양강 체제가 형성됐다.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과, 자사 픽셀을 포함해 거의 모든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보유한 구글이 그것.
두 회사 모두 기존 질서를 흔들 유인이 크지 않았다. 구글은 아이폰의 기본 검색엔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애플에 막대한 금액을 지불해왔다.
실제로 스마트폰 시대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라 불릴 만한 이 두 회사는 AI 시대에 들어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달 애플은 올해 말 출시 예정인 업그레이드된 시리(Siri)에 구글의 제미나이 AI 모델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고 도전자들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아니다. 1월 19일 오픈AI는 하반기 중 자체 기기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틀 뒤 애플이 올트먼과 아이브의 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웨어러블 핀’을 개발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인 메타는 AI 기반 스마트 안경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가상현실(VR) 헤드셋에서 자원을 이동시키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도 AI 비서 ‘알렉사+’를 에코 스피커에 적용했고, 곧 스마트 안경과 이어버드로 확장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시장의 앞날은 이미 험난해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양왕은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이 약 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전망치(2% 감소)보다 훨씬 나쁜 수치다. 그는 2027년까지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2025년 출하량은 2% 증가했다.
부진의 한 원인은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 속에서 스마트폰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스마트폰에 흔히 사용되는 12기가바이트(GB) 디램(DRAM) 가격은 지난 15개월 동안 약 70달러(약 9만 9827 원) 상승했다. 저가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 판매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고마진 구조의 애플도 수익성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에 ‘파운드리 전쟁’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겹친다. 애플과 삼성은 오랫동안 티에스엠씨(TSMC) 같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의 최대 고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엔비디아 등 AI 칩 설계업체들이 훨씬 더 높은 부가가치를 제공하며 우선권을 가져가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협상력은 약화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의 지배력에 도전하는 기업들은 다른 이유로도 스마트폰 생태계를 흔들고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에서 최대 30%의 수수료를 개발자에게 부과한다. 오픈AI는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에서 판매되는 구독 수익 일부를 애플·구글에 넘겨야 한다. 광고 기반 모델인 메타는 직접적인 타격은 덜하지만, 2021년 애플이 앱 추적을 제한한 이후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지자 스마트폰 의존도를 낮출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들은 자사 비즈니스 모델에 더 적합한 기기 형태로 소비자를 이동시키려 한다. 메타가 스마트 안경에 집착하는 이유다. 카메라, 메시지 표시 렌즈, 귀로 직접 소리를 전달하는 스피커는 소셜미디어 활동을 더욱 쉽게 만든다. 아마존 역시 집집마다 에코 기기를, 사람들 얼굴마다 안경을 얹어 데이터를 수집하고 쇼핑을 간편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오픈AI는 화면 대신 챗봇이 디지털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대체하는 미래를 꿈꾼다.
다만, 당장은 애플과 구글에 대한 위협이 미미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고 있다. 에이치에스비씨(HSBC)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 안경 사용자는 약 1500만 명에 불과하다. 반면 애플은 지난해 아이폰을 약 2억5000만 대 판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가 개선된다면 아이폰의 매력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대체 기기들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구글의 스마트 안경은 2014년 출시됐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1년 만에 중단됐다. 기술적 한계도 여전하다. 안경은 가볍고 시원해야 하지만, 배터리와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2023년 출시된 휴메인의 AI 핀도 과열과 짧은 배터리 수명으로 실패했다.
퀄컴의 알렉스 카투지안은, 이런 ‘엣지 기기’가 늘겠지만 연산은 스마트폰이나 별도의 보조 장치가 담당할 것으로 본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역시, 스마트 안경이 스마트폰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고,단지 ‘덜 보게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이 PC를 없애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애플과 구글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애플은 핀 외에도 비전 프로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안경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지난해 10월 삼성 등이 사용할 ‘안드로이드 엑스알(XR)’을 공개했고, 최근 제미나이 기반 스마트 스피커도 출시했다.
결국 AI가 기기 산업에 미칠 가장 큰 영향은, 양강 체제 내부의 힘의 재편일 수 있다. 제미나이를 애플과 안드로이드 전반에 심은 구글은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AI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최근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애플을 추월해 엔비디아 다음으로 올라섰다. 아이폰 제조사 애플은 구글에 너무 많은 힘을 쥐여준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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