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텔레비전(TV) 뉴스의 제왕’으로 군림해온 폭스뉴스가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시청률은 압도적 1위지만 시청자 연령이 70세에 달하는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자, 폭스뉴스는 지(Z)세대를 타겟으로 삼기 시작했다.
폭스뉴스가 젊은 특파원 전면 배치, 팟캐스트 스타일 도입, 캐주얼한 복장 착용 등 콘텐츠의 ‘회춘’을 시도 중이라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자체 스트리밍 앱인 ‘폭스 원’ 출시와 틱톡·유튜브 전용 콘텐츠 제작 등 플랫폼 다변화 정책을 통해 특히 젊은 남성 층을 공략하고 있다. 내용도 정통 정치 대담보다는 스포츠 스타나 인플루언서와의 대화에 집중한다.
이에대해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는 폭스뉴스의 보도인지 개인 유튜버의 주장인지 구분하지 않는다”며 ‘브랜드 희석’을 경고하고 있다. 폭스뉴스는 TV에서는 씨엔엔(CNN) 등 ‘리버럴 매체’와 싸우면 됐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린 우파 인플루언서들이 강력한 경쟁자로 버티고 있다는 것.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베이비부머들이 가장 사랑하는 TV 네트워크 폭스뉴스가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 중동에 미사일이 쏟아지는 가운데, 32세의 폭스뉴스 수석 외신 특파원인 트레이 잉스트는 스마트폰으로 뉴스 속보를 쏘아 올린다.
방탄조끼를 입고 텔아비브의 발코니에 서서 하루에도 여러 번 리포트를 송출하는 그의 주 시청층은 케이블 TV 사용자들이다. 하지만, 그는 틱톡에서도 1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며 또 다른 시청자층을 확보했다. 그는 워낙 게시물을 자주 올리는 탓에, 몇 시간만 접속이 끊겨도 시청자들이 그의 안부를 물을 정도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폭스는 미국 TV 뉴스의 명실상부한 왕이다. 오랫동안 보수진영의 대변자 역할을 해온 폭스는 이제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케이블 뉴스 채널이 될 정도로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했다. 주요 라이벌인 CNN이나 엠에스나우(MS NOW. 전 MSNBC)의 시청률을 압도한다. 때로는 씨비에스(CBS) 같은 지상파 방송사까지 제치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귀환은 광고주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폭스를 이제 광고주들은, 브랜드 가치를 위협할 만큼 극우적이라고 보지 않는 분위기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전쟁 상황은 시청률을 더욱 끌어올렸다. 최근 폭스뉴스는 20년 만에 가장 높은 토요일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러한 압도적인 위치에서도, 폭스는 TV 뉴스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시청률은 급증하고 있지만 주 시청층이 주로 베이비부머 세대다. 연금 보험이나 발기부전 치료제 광고가 암시하듯, 폭스뉴스의 케이블 시청자 중간 연령은 70세에 육박한다. 젊은 층이 스트리밍으로 이동하면서, 미국 내 케이블 가입 가구 비중은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라이브 프로그램에 집중해 온 폭스는 선형 TV(Linear TV. 미리 정해진 편성표에 따라 순차적으로 방송되며, 모든 시청자가 동시에 시청하는 TV) 매출을 유지해 왔기에 디지털 대안으로의 전환에 신중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번스타인 증권에 따르면, 폭스 코퍼레이션은 작년 매출의 92%를 여전히 선형 TV에서 얻었다는 것.
이제 폭스는 새로운 콘텐츠와 유통 채널로 젊은 시청자들을 유혹하려 한다. 우선 프로그램 구성부터 바뀌고 있다. 트레이 잉스트 같은 젊은 얼굴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피터 두시, 로렌스 존스 같은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브렛 쿠퍼 같은 Z세대 멤버들이 합류했다. 장수 진행자인 션 해니티는 하키 선수 매슈 트카척 같은 젊은 게이머나 스타들이 출연하는 팟캐스트 스타일의 토크쇼 ‘행아웃(Hang Out. 집합소)’을 위해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또한, 폭스는 “신념을 지키고, 선을 사수하며, 리버럴을 이기자”라는 슬로건을 내건 거침없는 팟캐스트 ‘루스리스(Ruthless)’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젊은 남성들에게 인기 있는 예측 시장 플랫폼인 ‘칼시(Kalshi)’와 협력해 뉴스 이벤트에 대한 베팅 배당률을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는 콘텐츠 재생산뿐만 아니라, 젊은 층이 있는 곳으로 뉴스를 직접 배달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지난 8월 출시한 스트리밍 서비스 ‘폭스 원(Fox One)’이 그 중심이다. 스포츠가 핵심이지만, 이용 시간의 1/3은 뉴스 시청이다. 뉴스를 보는 시청자가 플랫폼 이용시간이 훨씬 길었다. 뉴스를 보지 않는 시청자보다 3배나 된다고 폭스 측은 밝힌다. 특히 미국에서 열리는 차기 월드컵 중계권은 더 많은 젊은 남성들을 유입시킬 기회.
자체 플랫폼 구축 외에도, 폭스는 소셜 미디어에서 시청자를 낚아 올리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소셜 미디어의 시청층은 케이블 TV와는 판이하다. 틱톡 시청자의 약 절반이 18~34세다. 폭스는 소셜 미디어 전용 쇼를 제작하기도 한다. 해니티의 ‘Hang Out’은 TV 채널이 아닌 유튜브와 스포티파이에서 방영된다. 소셜 콘텐츠는 수천만 달러(수백억원)의 광고 수익을 가져다주지만, 더 큰 희망은 이 시청자들이 폭스 원이나 케이블 구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연 젊은 세대가 응답할까? 폭스의 가장 큰 이점은 경쟁사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는 점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보고 있다. MS NOW는 이름까지 바꾸며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CNN의 첫 스트리밍 서비스는 한 달 만에 중단됐다. 반면, 넷플릭스나 애플 같은 거대 플랫폼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뉴스 사업에 뛰어들 의사가 없다.
하지만 폭스는 TV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온라인상의 ‘보수 경쟁자’들과 맞서야 한다. 케이블 경쟁자들은 리버럴 성향이지만, 온라인 인플루언서들은 우편향된 경우가 많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뉴스 인플루언서 중 보수 성향이 진보보다 25% 더 많았다. 폭스의 션 해니티가 조 로건(유명 팟캐스터)의 스튜디오처럼 벽돌 벽과 네온 사인을 갖춘 세트장에서 방송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경쟁은 위험한 게임이다. 트래픽은 알고리즘 변화나 규제 당국의 조치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시청자들이 소셜 피드에서 접한 뉴스를 해당 언론사 브랜드와 연결 짓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텔아비브 발코니에서 헬멧을 쓰고 있는 기자는 누구나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가장 큰 위험은 소셜 미디어에서 시청자를 만나는 행위가 그들을 자체 앱이나 TV로 이동하지 않도록 길들인다는 점이다. 뉴스 경영진은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면 부모 세대처럼 TV를 구독하길 바라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TV를 켜도 그것을 ‘큰 스마트폰’처럼 취급하며 유튜브를 본다는 것.
폭스뉴스가 ‘리버럴’을 이기는 데는 여전히 능숙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를 완전히 소유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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