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가 ‘인공지능(AI) 중심의 디지털전환 가속화’에 주력하고 있다. AI가 보험 설계와 상담, 청구, 심사, 보상 업무 전반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모바일 앱으로 계약을 조회하거나 전자서명으로 가입 절차를 줄이는 것은 과거가 됐다. 저성장과 고령화, 손해율 악화 속에서, 보험업계의 AI 전환(AX)은 비용 절감과 고객 경쟁력을 동시에 잡을 유일한 돌파구로 부상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AI 활용이 단순 업무 자동화를 넘어 상담·심사·보상 전 과정을 재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보험업계에선 이제 AI 내재화 여부가 보험사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도입에 성공한 기업은 운영 비용을 줄이면서 고객 접점은 늘리는 ‘효율과 성장’의 동시 달성이 가능하지만, 뒤처질 경우 인력 의존도와 불완전판매 리스크를 안은 채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경고도 커지고 있다.
삼성생명은 올 초 디지털혁신실을 ‘플랫폼본부’로 격상했다. AI센터는 AI기획·AI추진·AI혁신 등 3개 팀으로 확대했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와 협업해 개발한 ‘다큐먼트 AI’ 설루션은 진단서·영수증 등 비정형 문서를 자동 데이터화하며 수작업 비중을 크게 줄였다.
콜센터 상담 내용을 분석해 최적 답변을 추천하는 ‘AI 어드바이저’도 가동 중이다. 생성형 AI 기반 ‘글쓰기 시스템’으로 고객 안내 문구를 쉽고 일관되게 다듬고, AI 성문 분석과 비대면 실명인증 사본 판별로 금융사고 대응력도 높였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AI 접목이 업무 효율 제고·비용 절감·영업력 강화 등 다양한 효과를 내고 있다”며 “AI 보험 활용의 선도적 역할을 위해 관련 조직과 투자를 지속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교보생명은 설계사에게 ‘보장분석 AI 서포터’를, 임직원에게는 문서 작성·요약·번역·검색을 지원하는 사내 플랫폼 ‘AI 데스크’를 배포했다. 채용·교육·팀 성과 관리를 돕는 ‘AI 어시스턴트’까지 생성형 AI 서비스 3종을 동시 오픈했다. 보험 설계에서 영업 관리까지 AI가 전방위로 파고드는 형국이다.
현대해상은 올해를 AI 전환의 주요 분기점으로 보고 디지털·정보기술(IT) 조직을 개편했다. 카이스트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보험 특화 AI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 성과를 실무에 바로 접목하겠다는 전략이다.
한화생명은 여러 AI 에이전트를 통합 관리하는 AI 오케스트레이터 체계와, AI가 사업에 기여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손보사 클레임 자동화·인슈어테크 협업 가속
손해보험 업계에서는 클레임 처리 자동화와 불완전판매 방지에 AI를 집중 투입하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디비(DB)손해보험은 ‘AI 로보텔러’로 자동차 사고 접수 이후 필요 절차를 자동 안내하고, 장기보험 보상 청구 시 담보별 서류 안내를 자동화했다.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해 과실비율 산정에 활용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케이비(KB)손해보험은 AI데이터본부를 신설하고 외부 AI 전문가를 본부장으로 영입, 약관·상담 이력 데이터를 정비해 접수부터 심사·안내까지 AI로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슈어테크와의 협업도 빠르게 확산한다. 보험사들은 클레임 자동화, 문서 데이터화, 위변조 검사, 약관 분석 기반 데이터 생성, 보험금 산출 자동화 등 다양한 인슈어테크 솔루션을 도입해 운영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도 AI 기반 심사 고도화와 디지털 보험 활성화를 추진 중이며, 보험사와 스타트업 간 협업 생태계 조성이 정책적 과제로 부상했다.
토스(비바리퍼블리카)가 100% 지분을 보유한 보험판매회사 토스인슈어런스는 보험영업의 문법을 AI로 바꾸는 사례로 주목받는다. 숙련 설계사 경험에 의존하던 설명·비교 과정을 시스템으로 표준화해 불필요한 권유를 줄이고, 가입 가능 상품과 대안을 빠르게 추려주는 기능을 갖췄다. 그 결과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민원은 누적 신계약 60만 건 중 4건, 100만 건당 약 6.7건으로 보험판매 업계 평균(26건)의 1/4 수준이다.
글로벌 선두 핑안보험 “보험의 전 주기를 AI로”
국내 보험사들이 AI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글로벌 벤치마크로는 중국 최대 민영보험사 핑안(平安)보험이 단연 앞선다는 평가다. 핑안보험은 이미 보험산업 전 주기에 AI를 적용해 업계의 교과서로 꼽히고 있다.
핑안보험이 2017년 도입한 ‘3분 초고속 현장 조사 시스템’은 자동차보험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통사고 신고 후 3분 내에 앱으로 수리비 견적을 제시하는 이 시스템은 2500만 개 부품 데이터와 14만 곳 정비소 수리비 정보를 활용한다. 지난해 이를 통한 처리 건수만 730만 건에 달했다. 허위 신고 등을 줄여 연간 7억5000만 달러(약 1조 1287억 5000만 원) 이상을 절감했다고 핑안 측은 밝혔다. AI 사기 탐지 시스템으로는 도입 첫해에만 3억2000만 달러(약 4816억 원) 규모의 부정 보험금 지급을 차단했다.
핑안보험은 채용부터 영업·심사·클레임까지 경영 전반을 AI 생태계로 구축했다. 자체 핀테크 자회사를 통해 독자 시스템을 개발하고, 계열사 ‘핑안굿닥터’를 통해 무인 AI 진료소와 온라인 헬스케어 플랫폼까지 운영하며 건강 데이터를 보험 인수심사에 연결하고 있다. 대출 신청자의 얼굴 표정을 54종으로 분석해 허위 여부를 탐지하는 기술도 활용한다.
레모네이드(미국)의 경우, AI 챗봇 기반 3분 가입·즉각 보험금 지급 구조 등을 갖추고 있다. 행동경제학과 머신러닝의 결합으로 손해율 관리한다. 악사(프랑스)는 사물인터넷(IoT)·웨어러블 데이터와 AI를 결합한 실시간 리스크 모니터링과 개인화 보험료 산출을 하고 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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