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 4%를 6128억원에 인수, 디지털자산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삼성증권·에스디에스(SDS)·삼성카드가 각각 2%, 1%, 1%씩 나눠 취득하는 이번 투자는 단순 지분 매입이 아니다. 계열사별로 역할을 분담한 디지털자산 사업의 ‘풀 패키지 전략’이 현실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삼성에 따르면, 삼성증권·SDS·삼성카드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카카오벤처스 등 카카오 계열사가 보유한 두나무 구주 139만주를 현금 블록딜 방식으로 취득하기로 결의했다. 취득 예정일은 오는 19일이다. 두나무가 경쟁사인 네이버파이낸셜과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하면서, 카카오 측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계열사별 역할 분담… 증권·SDS·카드 ‘삼각편대’
이번 투자의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삼성그룹이 계열사별로 구체적인 사업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삼성증권은 토큰증권(STO) 발행·유통과 가상자산 중개 서비스를, SDS는 블록체인·AI·클라우드·보안 역량을 두나무의 운영 노하우와 접목한 차세대 디지털금융 인프라 사업을 맡는다. 삼성카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삼성금융 통합앱 ‘모니모’ 등을 통한 디지털자산 결제 지원을 추진한다.
금융권 ‘두나무 러시’… 제도 완화 선점 경쟁
삼성의 참전으로 올해 들어 두나무를 둘러싼 전통 금융권의 지분 확보 경쟁이 한층 가열됐다. 하나금융지주가 지분 6.55%를 1조33억원에 인수해 4대 주주로 올라섰다. 한화투자증권도 추가 취득으로 지분율을 9.84%까지 끌어올려 3대 주주에 오른다. 이들의 공통 목표는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가상자산 법안) 확정 이전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및 실물자산 토큰화(RWA) 시장을 선점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삼성증권 등 전통 금융사들의 두나무 지분 확보는 디지털자산 제도화를 앞두고 시장 진입권을 미리 확보하려는 선제적 포석”이라며 “특히 두나무가 네이버파이낸셜과 강력한 발행·유통 컨소시엄을 구축하면,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으로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지분투자는 각 계열사의 디지털자산 관련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국내 1위 디지털자산 사업자 두나무와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시장 리더십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중심축으로… '드림팀' 구상
두나무 지분 확보는 삼성그룹이 구상하는 더 큰 그림의 일부다. 삼성은 신한금융·하나금융과 함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사용 전 과정을 아우르는 ‘코인 드림팀’ 컨소시엄을 추진하고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과 삼성 핵심 경영진이 수차례 회동을 거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미 국회 토론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제적 효과와 규제 프레임을 제시하며 사실상 ‘정책 설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연간 수천억원대 해외 송금·결제 비용 절감, 공급망 자동결제, 실물자산 토큰화 등 새로운 금융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향후 비즈니스는 결제·송금·투자 전방위 확장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삼성의 이번 행보가 만들어낼 비즈니스 시너지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의 ‘삼성 월렛’은 약 1900만명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탑재될 경우,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갤럭시 이용자 10억명을 향한 유통망이 단숨에 열린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보안 기술 ‘녹스(Knox)’가 디지털자산 보관의 신뢰를 담보하고, SDS의 블록체인 역량이 인프라를 뒷받침하게 된다.
삼성증권의 경우, 두나무와의 협업으로 STO 발행·유통 플랫폼을 선점할 수 있다. 부동산·미술품 등 실물자산을 토큰화해 소액으로 거래하는 STO 시장은 제도화 이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삼성카드는 모니모 앱을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결제하는 생태계를 구축, 기존 카드중심의 결제 구조를 대체하는 인프라로 성장할 수 있다.
해외 송금 분야도 주요 격전지다.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면 현재 몇만원에 달하는 국제 송금 수수료를 몇백원대로, 3∼5일의 처리 시간을 몇 초 이내로 줄일 수 있다. 국내 중소·중견 수출기업의 환리스크 관리와 글로벌 비투비(B2B) 정산 분야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이 열릴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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