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력은 주파수, 기지국 수, 통화 품질, 가입자 기반 등에 좌우됐다. 일론 머스크는 여기에 위성망과 로봇·인공지능(AI) 기기의 연결 수요까지 더하려 한다. 로봇이 통신연결 수요를 획기적으로 늘릴 것이라는데에 머스크가 승부를 걸고 있다고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위성통신은 산악·해상·항공·농어촌처럼 지상망 구축 비용이 높은 지역에서 강점을 갖는다. 지상망은 인구 밀집 지역에서 대용량 통신을 제공하는 데 유리하다. 양쪽을 결합하면 어느 한쪽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연결성을 제공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엑스(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는 2021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눈부신 속도로 성장했다. 스타링크는 1200만 명이 넘는 개인 가입자를 확보했다. 여러 항공사와 해운회사도 고객으로 유치했다.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중요하고 그 역할이 계속 변화하는 통신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미국의 대형 이동통신사인 티모바일 등과 계약을 체결했다. 스타링크 위성이 이들 통신사의 고객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에 직접 연결되도록 해 지상 기지국이 닿지 않는 지역에서도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머스크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그는 스타링크를 훨씬 더 큰 사업으로 키우려 한다는 것.
지난 8일 스페이스X는 오랫동안 관측자들이 예상해 온 계획을 공식 확인했다. 기존 대형 이동통신사들과 직접 경쟁하는 완전한 형태의 이동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은 이 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발표 직후 미국의 3대 이동통신사인 티모바일, 에이티앤티, 버라이즌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물론, 당장 이들 통신사의 사업에 미치는 위협은 크지 않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자신이 예상하는 로봇 중심의 미래에서 스타링크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성 증설: 최대 1만5000기의 위성으로 스마트폰 연결
스페이스X의 계획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는 보고 있다.
첫 번째는 위성을 더 많이 발사하는 것. 스페이스X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지상 스마트폰에 음성통화와 데이터를 전달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위성을 최대 1만5000기까지 운용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다고 발표했다.
위성은 광범위한 지역에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도시와 마을처럼 많은 사람이 밀집한 지역에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스타링크 위성 한 기가 처리할 수 있는 통신 용량은 정해져 있다. 게다가 위성은 지구 궤도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 상공에 머무르는 시간도 매우 짧다. 따라서 위성만으로는 인구가 밀집한 지역의 막대한 통신 수요를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지상 통신망 구축: 스타링크 안테나를 소형 기지국으로
두 번째 축은 지상 인프라 구축.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의 가정용 초고속 인터넷 고객에게 판매하는 수신 안테나에 ‘펨토셀(femtocell)’을 추가할 계획이다. 펨토셀은 매우 작은 이동통신 기지국을 의미한다.
이 장치를 추가하면 기존 스타링크 안테나가 단순히 위성 인터넷 신호를 받는 장비를 넘어 근거리 휴대전화 통신까지 제공하는 소형 기지국으로 바뀔 수 있다. 스페이스X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일반적인 대형 이동통신 기지국도 구축해 통신 용량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이러한 방식은 위성망과 지상망을 결합하는 전략으로, 위성은 광범위한 지역을 연결하고, 지상 기지국은 도시와 인구 밀집 지역의 통신 수요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파수 확보: 통신 사업의 핵심 자산에 투자
세 번째 축은 무선 주파수를 사용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 스페이스X는 해당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주파수 확보에도 상당한 자금을 투자해 왔다.
2025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위성통신 사업자 에코스타(EchoStar)로부터 196억 달러(약 26조1248억4000만 원)를 들여 대역폭을 확보했다. 이 주파수는 이동통신용 위성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어 10월 8일 별도의 발표에서 통신 분야에 투자하는 사모투자회사 그레인 매니지먼트(Grain Management)는 보유한 저주파 대역 주파수의 일부를 스페이스X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거래 가격은 80억 달러(약 10조6632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저주파 대역은 건물 내부까지 전파가 도달하는 데 유리하다. 이는 기존 이동통신사와 경쟁하려는 신규 사업자에게 특히 중요한 특성이다. 결국 스페이스X는 위성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상 기지국과 주파수까지 확보해 기존 통신사와 경쟁할 수 있는 종합적인 통신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기존 이동통신사와의 경쟁: 스타링크가 가진 강점은?
스페이스X가 기존 이동통신망 사업자보다 어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알래스카의 인적이 드문 황야 한가운데에서도 끊김 없이 작동하는 휴대전화 요금제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일 수 있다. 스페이스X는 기존 통신사에 통신 인프라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무르기보다 이런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성산업 분석가 팀 패러는 스페이스X와 티모바일의 기존 계약 사례를 보면, 소비자들이 아직 이 서비스에 큰 돈을 지불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티모바일의 최고경영자(CEO) 스리니바산 고팔란도 5월에 위성통신 서비스를 구매한 고객이 많지 않다고 밝혔다. 해당 서비스가 전체 통신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002%에 불과하다는 설명이었다.
기존 이동통신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스페이스X의 발표가 나오기 일주일 전, 에이티앤티·티모바일·버라이즌은 공동 사업체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들은 각자 보유한 주파수를 공동으로 활용하고, 여러 위성통신 사업자로부터 위성통신 용량을 구매할 계획이다. 시장은 이 움직임을 스타링크의 부상에 대비한 일종의 방어 전략으로 해석했다.
진짜 승부는 현재 시장이 아니라 로봇의 미래
그러나 스페이스X의 통신사업 진출은 현재의 이동통신 시장에서 점유율을 빼앗으려는 시도라기보다 미래를 겨냥한 투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향후 통신 연결 수요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라고 스페이스X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그윈 쇼트웰은 8월 실적 발표 전화회의에서 전망했다. 여기에는 머스크가 지배하는 또 다른 기업 테슬라가 만드는 로봇도 포함된다.
자율주행차와 인간형 로봇이 확산하면 ▲이들을 원격으로 제어하고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AI 시스템과 연결하기 위한 통신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페이스X의 이동통신망을 통해 테슬라의 기계를 운용한다면, 두 회사 모두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스페이스X는 안정적인 통신 수요를 확보하고, 테슬라는 자사 기계와 로봇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통신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머스크의 구상은 위성 인터넷 가입자를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미래에 수많은 기계와 로봇이 서로 연결되는 시대를 대비해 통신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전략이다.
우주를 향한 야심
한편, 스타링크의 사업 확장은 스페이스X가 감당해야 할 과제를 더욱 늘리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스페이스X는 AI 모델 그록(Grok)을 개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만들어진 로켓 가운데 가장 큰 스타십(Starship)을 시험하고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는 거대한 발사 시설을 건설하고 있으며,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달 탐사 프로그램에 사용할 달 착륙선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정치적으로 민감한 계약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사업 영역이 점점 넓어지면서 스페이스X의 자금 소요도 커지고 있다. 이 회사는 6월 기업공개(IPO)를 통해 860억 달러(약 114조5520억 원)를 조달한 뒤 불과 몇 주 만에 250억 달러(약 33조3000억 원) 규모의 부채를 발행했다. 앞으로 추가 차입도 계획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여러 사업 가운데 스타링크는 현재 다른 사업 부문의 손실을 상쇄하는 핵심 수익원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머스크의 최신 도전은 더욱 대담하면서도 위험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했다. 회사의 다른 사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핵심 수익원인 스타링크까지 거액의 투자와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스페이스X의 한국내 사업전망은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의 주거용 스타링크는 월 6만4000원 수준인 반면, 각 통신사 결합 인터넷은 결합 적용 시 월 3만 원 안팎이다. 다만, 스타링크가 테슬라 등과 결합상품을 내놓을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내 통신사업자들과의 격차는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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