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은 긴 수술이 바깥으로 뻗어나와 젖혀지기 때문에 모습이 무척 화려하다. 사진=조용경
매년 가을, 9월 중순이 되면 호남 지역에서 시작되는 ‘치명적인 핏빛 유혹’으로 인해 전국에 있는 야생화 마니아들의 가슴이 붉게 물들곤 합니다.
유난히 짙은 선홍색이 너무나 화려해서 오히려 애틋함과 처절함마저 느끼게 만드는 ‘꽃무릇’의 유혹 때문입니다.
꽃무릇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알뿌리식물입니다.
크기가 3cm 내외인 알뿌리에서 자라난 줄기가 30~50cm까지 자라고, 9~10월 사이에 줄기 끝에 진홍색의 붉은 꽃 여러 송이가 우산 모양을 이루며 핍니다.
그래서 석산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지름이 7~8cm인 꽃에는 여섯 장의 가늘고 긴 바늘 모양의 꽃잎이 있는데 그 끝은 시간이 지나면서 뒤로 말립니다.
여섯 개의 수술은 꽃보다 더 길게 밖으로 뻗어 나옵니다. 그래서 꽃이 더 크고 화려하게 보입니다.
꽃무릇은 꽃이 진 다음이 녹색의 잎이 나오기 때문에 상사화라고도 부른다. 사진=조용경
이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꽃이 말라 죽은 뒤에야 짙은 녹색의 잎이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이처럼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꽃이라 하여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엄밀하게는 꽃무릇과 상사화는 서로 다른 꽃이랍니다.
꽃무릇의 이런 사연을 김필규 시인은 ‘꽃무릇 피는 사연’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가면 너는 떠나고 없고 / 네가 오면 나는 떠난 후이니 /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으랴 / 오가는 길 위에서 / 어쩌면 한 번 쯤 만날 법도 하다만 / 세월의 길은 / 가고 오는 길이 다른가 보다”
이런 아픈 사연 때문인지,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꽃무릇은 호남의 큰 사찰 주변에 많이 피는데, 사찰의 단청에 방부제로 사용된다. 사진=조용경
이 꽃은 고창 선운사와 영광의 불갑사, 그리고 함평의 용천사 주변에 특히 많아서 이 세 지역에서는 매년 가을이면 ‘꽃무릇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이 꽃이 유독 사찰 주변에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꽃무릇의 뿌리에는 유독 성분이 함유돼 있어서 탱화를 그릴 때나 단청을 할 때 찧어서 바르면 좀이 슬거나 색이 바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스님들이 절 부근에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꽃무릇을 만나 본 일이 없으시다면, 이번 가을에는 선운사나 불갑사를 찾아가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조용경 객원기자 / hansongp@gmail.com
야생화 사진작가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