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채를 통해 사람과 인공지능(AI)을 구분하는 시대가 빠르게 열리고 있다.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알트먼이 이끄는 스타트업 ‘월드(World)’가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월드는 이달부터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홍채를 스캔해 인간임을 증명하는 ‘월드 아이디(ID)’ 발급에 나섰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등 외신에 따르면, 월드는 이달 초 미국 출시를 발표하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내슈빌 등 주요 도시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연말까지 미국 전역에 7500개의 오브가 설치될 예정이다.
지난 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행사장에서는, 하얗게 빛나는 둥근 형태의 홍채 스캔 기기인 ‘오브(Orb)’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참가자들은 이날 홍채를 스캔받고, 그 대가로 40달러(약 5만 5728 원)에 해당하는 가상화폐 ‘월드 코인’을 받아갔다. 이 코인은 거래가 가능하고, 다른 사용자에게 송금도 할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에서도 오브의 스캔 장소가 개설됐다.
월드는 이 코인이 강력한 AI 시스템의 수익을 인간에게 분배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의 지급 시스템으로 활용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월드코인과 함께 ‘월드 ID’도 발급받게 된다. 이는 ‘인간 인증 시스템’이 현실화된 것으로, ‘월드 ID’는 사용자가 온라인에서 AI가 아님을 인증할 수 있게 한다.
월드는 “인터넷은 현실감 있는 AI 봇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라며 "소셜미디어, 데이팅 앱, 게임 플랫폼 등에서 우리는 실제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구별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AI가 만든 봇들이 인터넷을 점령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월드ID'가 필요하다는 것. 월드는 정부 발급 신분증이나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 없이도, 검증된 인간 간 거래가 가능한 '진짜 인간 네트워크'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
오브에 스캔된 홍채 데이터는 고유한 생체 인식 코드로 변환돼 저장된다. 월드는 “홍채 이미지 자체는 저장하지 않고, 암호화된 숫자만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이와관련, 알트만은 “오브 시스템은 일반 인공지능(AGI) 시대의 신뢰 문제 해결책”이라며 “인간이 AI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이 시스템은 케냐,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2600만 명 이상이 가입했다.
이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개인정보 보호 단체들은 “홍채는 개인의 가장 민감한 정보 중 하나”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홍콩과 스페인 등 일부지역에서는 생체 데이터 수집을 우려한 규제 기관이 직접 조사에 착수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기 및 노동 착취 사례도 보고됐다.
업계 관계자는 “월드가 편의성과 혁신을 강조하지만, 생체 데이터 유출 위험성에 대한 대책은 필수적”이라며 “편의성과 보안 사이의 싸움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