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걸리던 국제송금이 10초로 줄었다”. 아프리카의 무역중개업체 만사의 은커루 우와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테더(USDT)를 전통적 은행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아프리카·동남아·남미의 소규모 사업체를 돕는 이 회사는 결제의 90%가 테더로 이뤄진다. 글로벌 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의 임원 출신인 그녀는, 전통적 은행 네트워크가 느리고, 비용은 높고, 오류가 잦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최근 토로했다.
FT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의 주류로 본격 진입 중이다. 미국 부통령 제이디 밴스는 지난달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경제력의 10배 증폭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공화·민주당이 합의한 최초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안은 올해 안에 통과될 전망이다. 유에스디씨(USDC)의 운영사인 서클의 뉴욕증시 상장 후 첫 3일간 시가총액은 거의 4배가 뛰어 250억 달러(약 33조 9400억 원)를 기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스탠더드 차터드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2028년까지 시장 규모가 현재(2500억 달러·약 339조 2000억 원)의 8배인 2조 달러(약 2713조 60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결제 대기업인 스트라이프와 비자는 관련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고, 일본 소니 은행은 자체 결제용 토큰을 테스트하고 있다. 은행과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도 이 경쟁에 뛰어들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버는 해외기사들 송금비용 절감을, 소니뱅크는 자체 결제토큰 테스트를 각각 시도 중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와 1대1로 연동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은행 시스템 밖에서 전송된다. 높은 인플레이션, 약한 통화, 불안정한 은행, 자본통제가 있는 나라에서 이는 매우 매력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거래의 용이성과 익명성 때문에, 가상화폐 거래자들의 사실상 통화 준비금이었다. 마약 밀매와 자금 세탁 같은 범죄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FT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네트워크와 은행 예금, 증권 사이의 회색지대에 존재한다. 발행자는 은행처럼 부채를 지지만 상업적 대출은 하지 않는다. 거래가 가능하고, 머니마켓펀드와 같은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고정된 자산에 대해 고정된 가치를 유지해야 하지만, 종종 자산에서 몇 퍼센트 이상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신중한 규제 없이는 스테이블코인이 향후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전 이코노미스트 윌리엄 에몬스는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은행업의 발전과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것 같다”며 “2008년 이후 머니마켓 펀드가 두 번이나 붕괴한 것처럼, 언젠가는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스테이블코인의 단기국채 유입이 늘어나면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투자에 따른 이자를 유지하면서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이 됐다. 테더는 작년에 직원이 100명에 불과한 상태에서 연간 130억 달러(약 17조 5929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아들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한 가상화폐 회사를 후원하는 등 새로운 코인 상품이 확산되고 있다.
테더와 같은 발행자는 자산이 완전히 뒷받침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증명하지만, 완전한 감사를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받는 돈보다 더 많은 토큰을 발행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2021년 테더는 자매 거래소인 비트파이넥스의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코인의 자산을 허위로 표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테더는 뉴욕주 규제 당국에 4100만 달러(약 554억 8530만 원)의 벌금을 지불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들은 19세기 미국의 “와일드 캣 은행”에 비유돼 왔다. 이들은 국가 은행 규제가 약하고 전국적인 통화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담보가 거의 없는 약속어음을 발행했었다. 많은 은행이 파산했고 고객들은 쓸모없는 종이를 들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우려와 2022년 시장 붕괴 이후, 미국의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는 계속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비자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7520억 달러(약 1017조 6816억 원)로 전년 동기의 4090억 달러(약 553조 4997억 원)에 비해 증가했다. 정기적으로 결제를 주고받는 지갑의 수는 작년 5월의 2700만 개에서 지난달 4600만 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규제당국이 움직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워싱턴의 규제법안 초안에는 ▲500억달러(약 67조 8400억 원) 이상 발행사의 정기적 준비금 공개 ▲이자지급 금지 ▲테크기업 진입 장벽 강화 등이 포함됐다. 외국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도 미국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테더의 최고경영자(CEO) 파올로 알도이노는 “엄격한 유동성 자산 기준 마련을 환영한다”며 “우리는 그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서클의 CEO 제레미 얼레어도 “고품질 자산 담보 기준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고객신원확인(KYC)의 미흡 등 지적도 나온다. 법학자 힐러리 앨런은 “특별예금보험이나 청산방안 없이 규제만 하다가는, 예금이 묶여 버리고 납세자가 뒷수습을 떠안게 된다”고 우려했다.
스테이블코인의 속도 조절이 실패할 때 발생할 후폭풍 역시 문제다. 미국 재무부는 상업은행 예금 6조6000억달러(약 8954조 8800억 원)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유입될 위험을 경고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5일간 35억달러(약 4조 7488억 원) 유출만으로 단기 국채 수익률이 0.08%p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범죄 문제도 심각하다고 FT는 강조했다. 국제연합(UN)에 따르면 아시아 범죄조직의 70% 이상이 테더를 선호한다. 블록체인 분석업체는 지난해 510억달러(약 69조 1968억 원) 규모의 가상화폐 범죄 중 63%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