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 시설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한반도에도 파문이 일고 있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구체적 증거 없이도, ‘의도’만으로 군사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이것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던 한국 내 핵무장론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미국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매트(The Diplomat)가 최근 보도했다.
관련 내용은 서울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 리더십네트워크(APLN)’의 정책 펠로우인 조엘 피터슨 이브레(Joel Petersson Ivre)가 집필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 관계, 미국 확장억제의 보장을 받는 국가들의 위협 인식, 한국의 핵무장 논쟁 및 대북 관여 전략을 연구 중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너무 가까워졌다”는 명분으로 과학자 암살과 시설 파괴를 단행했다. 미국도 이에 동참했다. 이는 국제사회가 ‘핵무기 보유 의지’만으로도 군사적 응징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더 디플로매트는 지적했다. 핵무장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은 이스라엘같은‘지하실 핵무기’ 전략조차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더 디플로매트에 따르면, 한반도는 더욱 위험하다. 북한은 이미 최대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상태에서, 한국의 ‘핵무기 질주’가 포착될 경우 이를 선제공격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의 원전을 점령한 전례가 있어, 한반도 핵시설을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디플로매트는 이 기고를 통해 “향후, 돌발적 핵개발 시도가 재현될 수 있다”며, “한국의 민간 원자력 기술을 ‘비핵화 블랙박스’로 묶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달 13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된 시설들을 공습하고, 주요 군 인사 및 과학자들을 암살하는 작전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이 밝힌 명분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위험할 정도로 근접’했다는 것. 이어 22일, 미국도 이란의 핵시설 3곳을 타격하며 분쟁에 뛰어들었다.
이번 사태는 중동을 넘어선 전 세계에 파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잠재적 핵능력'을 타격한 것이 북한의 핵무장 명분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고 더 디플로매트는 보고 있다. 북한은 현재 약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스라엘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이 공격이 한국 내 핵무장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줄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공격은 ‘왜 한국의 핵무장 시도가 위험한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더 디플로매트는 주장했다.
이란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종종 핵 후보국으로 언급된다. 물론 두 나라는 체제도, 국제적 위상도 다르다. 이란은 독재국가이자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다. 반면, 한국은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이며 세계 무역의 핵심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모두 핵무장을 한 적대국을 마주하고 있다. 이는 핵무기 ‘잠재 보유’(hedging)를 추구하게 만든 요인이 된다.
이란의 경우, 핵무기 확보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란은 농축 농도 60%에 달하는 우라늄을 406kg 보유하고 있다. 이는 1년 이내에 핵무기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라고 더 디플로매트는 밝혔다.
한국은 1970년대 중반 핵 프로그램을 시도했고, 2000년대 초 소규모 농축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현재는 비확산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한국은 대규모 우라늄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123협정’에 따라 20% 이상의 농축이 금지되어 있다. 20%는 핵무기로 전환하기에는 부족한 수준.
한국은 이란과 달리 우라늄 농축시설이나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에서는 123협정을 재협상해 안보 상황이 악화될 경우 핵무기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여론이 일부 형성되고 있다. 핵무기로의 ‘질주(sprint)’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잠재 억지력(latent deterrent)’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현 정부는 핵무장과 잠재적 핵무기 보유 모두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핵무장을 밀어붙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 시절과 비교할 때, 이러한 ‘구조적’ 요인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이란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목소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은 한국 핵무장론자들에게 분명한 경고가 된다. 우선, 잠재 억지력은 믿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국내 정치적 위기와 시리아·헤즈볼라 등 이란의 대리세력 약화를 계기로 공격했지만, 결국 이란의 핵 접근 속도를 이유로 공습을 정당화했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한국이 잠재적 억지력을 갖추려는 움직임에 대해 공격 명분을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은 이란과 달리 미국의 확장 억지 우산 아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핵무기 질주’가 실제로 벌어지는 순간이다. 이 질주는 미국의 확장억지 철회가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한국이 핵무장에 돌입하는 순간이 바로 북한이 예방타격을 감행할 수 있는 최악의 시점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일부 인사들은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화된 추가의정서 체제는 감시가 매우 엄격하다. 국제사회는 한국에 제재를 가할 것이다.
설령 핵무기를 개발하더라도 실험은 어렵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는 한반도 주변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센서를 배치해 두고 있다. 시험 없는 핵무기는 억지력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결국 전체 프로젝트는 ‘위험한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더 디플로매트는 전망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처럼 ‘지하실 속 핵무기(bomb in the basement)’ 전략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란의 미사일 보복은 이 전략이 결코 만능이 아님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도, 한반도는 이란-이스라엘보다 훨씬 위험하다. 북한의 한국 타격 능력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능력보다 훨씬 크다. 두 나라는 비무장지대 하나만 두고 맞붙어 있고, 이란-이스라엘처럼 지리적 완충지대가 없다. 또한, 이란에서 과학자와 군 간부가 암살당했듯, 한국도 북한의 ‘슬리퍼 셀(sleeper cells·지시를 기다리며 타겟의 공동체 안에서 잠복해 있는 스파이)’ 활동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더 디플로매트는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은 또 하나의 심각한 선례를 남긴다. 과거 시리아와 이라크의 핵시설도 이스라엘이 공격했듯, 이제 ‘핵무기 확산 저지’라는 명분 아래 군사 타격이 하나의 외교전략으로 고착되고 있다는 것.
제네바협약 추가의정서 56조는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지만, 이는 ‘원자력 발전소’만 포함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핵확산금지조약(NPT)상 핵무기 보유 5개국 모두 ‘핵 관련 시설 공격’ 옵션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도 한국의 핵시설을 이란처럼 ‘정당한 타격 대상’으로 간주할 수 있게 만든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 행보는 이 논리를 더욱 강화시킨다. 실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까지 점령했으며, 핵시설 공격에 거리낌이 없다. 북-러 군사협력이 더욱 확대될 경우, 러시아가 한반도 충돌에 개입할 여지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이번 이스라엘의 행동에 대해 ‘깊은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했으며, 공식적으로 반핵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핵무기 질주나 핵 잠재력 확보 시도를 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차기 정부의 위험한 모험을 사전에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필요하다. 한 방법은, 외국 기업의 기술로 한국의 우라늄 농축 기술을 ‘블랙박스화’하고, 사용 후 연료의 재처리를 해외에 위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민간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핵무장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런 대비책만이 한국이 ‘이란의 운명’을 피하는 길이라고 더 디플로매트는 목소리를 높였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