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그룹의 젊은 총수가 늘고 있다. 특히 상위 4대 그룹은 모두 총수 또는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40, 50대가 맡고 있다. 이들은 선대와 달라진 경제·사회 환경에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등이 그룹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20대 그룹(총수 없는 그룹 제외) 중 절반이 넘는 12개 그룹의 총수 또는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40대와 50대가 맡고 있다.
이들 그룹의 젊은 리더는 고도성장시대를 살아온 선대와는 다른 저성장의 경제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와 기술 트렌드 역시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사회 전반을 흐르는 기조와 기업 구성원의 사고방식도 이전 세대와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 세대의 경험과 성공공식이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젊은 리더들은 그룹의 생존을 위해 과거와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이미 인재 활용, 일하는 문화, 차세대 사업 발굴과 투자, 사회적 책임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젊은 리더들의 혁신 시도를 분야별로 점검한다.
①능력 있으면 누구든 상관없다…순혈주의 벗고 개방형 인사로 혁신
젊은 그룹리더들의 변화와 혁신 노력이 두드러진 분야 중 하나는 인사다. 기업 운영의 핵심인 인사는 자신과 뜻을 맞춰 경영의 무게를 나눌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리더의 스타일과 의중이 뚜렷하게 반영된다. 최근 40, 50대 젊은 리더들이 이끄는 그룹 인사의 키워드 중 하나는 세대교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정몽구 회장의 복심을 불리던 김용환 현대·기아차 부회장이 현대제철로, 전략기획담당 정진행 사장이 현대건설로 이동했다.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을 총괄해온 양웅철 연구개발담당과 권문식 연구개발본부장은 고문으로 위촉됐다.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으로 중국사업을 총괄해온 설영흥 상임고문도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현대차그룹 인사는 인적쇄신을 통해 정몽구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성장을 이끌어온 주역들과 결별을 의미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6월 구광모 회장 체제가 시작된 LG그룹은 지난해와 올해 2명의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1977년 럭키에 입사해 40년 이상 한 분야에 종사한 정통 LG화학맨인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상근고문으로 물러났고,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9월 자진 퇴진했다. LG디스플레이를 이끌어온 지 7년 여 만이다. 이로써 LG그룹 주력 계열사를 이끌어 온 6명의 부회장 중 2명이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교체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은 2017년 대대적인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면서 60대 사장이 대거 퇴진했다. 당시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의 60세 이상 사장이 모두 50대로 교체됐다.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비전자계열사도 대부분 60세 이상 사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CEO를 맞았다.
현대차, LG, 삼성 등 국내 대표 그룹의 계열사를 이끌어온 주역들의 퇴진은 단순히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가 이유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기업의 실적과 그룹 분위기 쇄신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그룹 젊은 수장들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흐름은 새로운 산업 환경과 사회 변화에 적합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외부 인재 영입 움직임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젊은 총수가 이끄는 그룹을 중심으로 계열사 경영자를 그룹 외부에서 찾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왼쪽부터 3M 수석부회장 출신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 글로벌디렉터(대표) 출신인 홍범식 ㈜LG 경영전략팀 사장, BMW M 연구소장 출신인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사장, 베인앤드컴퍼니 소비재·유통부문 파트너 출신인 강희석 이마트 신임 대표
지난해 말 물러난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을 대신한 인물은 3M 수석부회장 출신의 신학철 부회장이다. 신학철 부회장은 한국3M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본사 수석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LG화학이 CEO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1947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LG그룹은 LG화학의 사업영역이 석유화학 중심에서 소재, 배터리, 생명과학으로 발전하고, 전지사업의 해외생산·마케팅 확대 등으로 고도화된 글로벌 사업 운영체계가 필요한 상황에서 혁신기업인 3M에서 34년간 다양한 경력을 쌓은 신 부회장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LG그룹은 특히 신 부회장에 대해 신사업을 발굴, 사업화하는 통찰력과 혁신성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또 지난해 말 홍범식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 글로벌디렉터(대표)를 영입해 지주사인 ㈜LG의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선임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맡겼다. LG그룹은 홍 사장이 베인앤드컴퍼니에서 다양한 산업분야의 포트폴리오 전략, 성장전략, 인수합병, 디지털 환경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업 혁신전략에 대한 다수 프로젝트를 수행한 점을 높이 샀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과 함께 해온 주역들이 물러난 자리의 일부를 외부 인재로 채웠다. 현대·기아차는 신임 연구개발본부장으로 BMW 출신의 알버트 비어만 사장을 선임했다. BMW에서 고성능차 개발을 총괄했던 비어만 사장은 현대차에 영입된 뒤 고성능차 개발에 주력해왔다.
회사 측은 비어만 사장 선임에 대해 실력 위주의 글로벌 핵심인재를 통한 미래 핵심 경쟁력 강화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비어만 사장 외에도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 책임자 출신인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경영담당 사장,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 출신인 루크 동커볼케 현대·기아차 디자인최고책임자 등 글로벌 인재 영입에 공을 들여왔다.
현대차그룹은 또 삼성전자 출신으로 신사업과 전략투자를 맡아온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또 최근 SK텔레콤, KT, 네이버 등 ICT 기업의 인재를 잇따라 임원급으로 영입하는 등 외부 인재 수혈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신세계그룹은 6년간 이마트 대표를 맡아온 이갑수 사장의 후임으로 지난달 강희석 베인앤드컴퍼니 소비재·유통부문 파트너를 선임했다. 이갑수 대표는 1982년 신세계에 입사해 37년간 신세계그룹에서 생활해온 대표적인 신세계맨이다. 반면, 강희석 신임 대표는 이마트 창립 26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한 CEO다.
이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유통업 관련 컨설팅을 해온 강 신임 대표의 지식과 경험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자상거래에 지속적으로 고객을 빼앗겨온 이마트는 지난 2분기에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온·오프라인 유통업을 아우르는 전략을 통해 중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중책이 강 대표에게 맡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젊은 총수들이 이끄는 그룹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외부 인재 풀의 적극적인 활용은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 최적화된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강화되면서 향후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강동식 기자 lavita@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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