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최근 3년 간 사업재편을 진행하면서 기업 인수에 3조 원이 넘는 돈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이 보다 많은 실탄을 확보했다.
1일 데이터뉴스가 2018년 이후 LG그룹의 거래 규모 500억 원 이상인 대형 인수·매각 사례를 조사한 결과, 주요 계열들이 필요한 기업을 인수하는데 약 3조1880억 원을 투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같은 기간 계열사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3조6410억 원에 달했다.
이 기간 LG전자, LG화학,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국내외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신사업 확대, 신시장 개척, 기업 경쟁력 강화를 도모했다.
최근 자동차 부품, 로봇 등 신사업에 역량을 모으고 있는 LG전자는 2018년 8월 프리미엄 헤드램프 세계시장 5위 기업 ZKW 인수작업을 완료했다. 인수금액은 1조4440억 원으로, LG그룹 인수합병(M&A) 사상 가장 큰 규모다. LG전자는 같은해 790억 원을 투입, 국내 산업용 로봇 제조기업 로보스타를 인수했다. 또 이 달 870억 원을 들여 미국의 데이터 분석기업 알폰소 지분을 50% 이상 확보했다. LG전자가 이들 3개 기업에 쓴 돈은 1조6100억 원에 달한다.
LG전자는 또 자동차 사업 확대를 위해 VS사업본부 내 일부 사업을 물적분할하고 오는 7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기업 마그나와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을 세운다. LG전자는 VS사업본부, ZKW, 전기차 합작법인을 축으로 자동차 부품사업을 전개한다.
역시 자동차 부품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LG화학은 2018년 9월 1430억 원을 들여 미국 자동차용 접착제 기업 유니실을 인수했다. LG화학은 이듬해 4월 듀폰의 솔루블 OLED 재료기술을 인수했다. 양사는 인수금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3000억 원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4월 미국 화장품 기업 뉴에이본의 지분 100%를 1450억 원에 인수하고 북미시장 공략의 교두보를 만들었다. 이어 지난해 2월에는 1900억 원을 투입해 더마화장품과 퍼스널케어 브랜드 피지오겔의 아시아 및 북미 사업권도 확보했다.
LG유플러스는 2019년 12월 CJ헬로 인수(지분 50%+1주) 작업을 마무리했다. 8000억 원이 투입된 CJ헬로 인수를 통해 LG유플러스는 유료방송 시장 2위로 올라섰다.
▲LG그룹의 인수·매각 행보는 구광모 회장이 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2018년 이후 눈에 띄게 과감해졌다는 평가다. / 사진=LG그룹
반면, LG그룹은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신사업 강화에 투입할 실탄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사업재편 속도를 높였다.
LG그룹은 2018년 11월 기업소모성자재(MRO) 기업 서브원 지분 60.1%를 사모펀드 어피너티에 매각했다. 매각금액은 6021억 원에 달한다. 한 달 뒤에는 구광모 회장 등이 보유하고 있던 종합물류기업 판토스의 지분 19.9%(1459억 원)를 미래에셋대우에 팔았다. 판토스 지분 매각의 경우 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 시비를 없애는 것과 함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어 2019년 9월 LG전자가 수처리 관리·운영기업 하이엔텍과 환경시설 설계·시공기업 LG히타치워터솔루션을 해양수처리회사 테크로스에 매각했다. 매각금액은 2280억 원이다. LG전자는 앞서 그 해 2월 연료전지 자회사 LG퓨얼셀시스템즈도 청산했다.
LG그룹은 또 2019년 11월 ㈜LG가 보유한 LG CNS 지분 35%를 1조 원에 사모펀드 맥쿼리PE에 매각했다. 같은 달 LG유플러스는 3650억 원을 받고 전자결제사업을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에 매각했다. 또 LG화학이 지난해 6월 LCD 편광판 사업을 1조3000억 원에 중국 화학소재기업 산산에 팔았다.
LG그룹은 지분 매각 외에도 부동산 처분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투자여력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초 베이징트윈타워 매각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건물을 나눠 갖고 있던 LG전자, LG화학, LG상사가 1조37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LG그룹의 사업재편과 이를 위한 실탄 확보 노력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재편이 그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 여부는 연초 관련 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LG전자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 이래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이어왔으며, 누적 영업적자가 5조 원에 달한다.
권봉석 LG전자 대표는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LG전자는 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며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업 운영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재편을 목적으로 한 LG그룹의 인수·매각 행보는 구광모 회장이 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2018년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과감해졌다는 평가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초기 대외활동을 자제하면서 배터리, 자동차, 로봇 등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사업을 검토하고 미래 전략을 가다듬는데 중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말에는 LG전자 등에 최고전략책임자(CSO) 부문을 신설하고 신사업 추진과 전략 기능을 통합해 구체적인 사업재편 방안을 수립, 추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백화점식 사업방식에서 탈피해 레드오션이거나 경쟁력이 낮은 사업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대신, 블루오션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강동식 기자 lavita@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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