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SW) 시장 규모가 전 세계 시장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비춰보면 턱없이 작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IDC 자료(IDC 월드와이드 블랙북, 2023. 9.)를 인용해 집계한 국내 SW 시장(패키지 SW + IT서비스) 규모는 2022년 18조2000억 원, 2023년 19조3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같은 자료에서 추정한 전 세계 SW 시장 규모는 2022년 2142조1000억 원, 2023년 2336조3000억 원이다.
국내 SW 시장이 전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0.85%, 2023년 0.83%다.
국내 SW 시장은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글로벌 SW 시장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글로벌은 패키지SW 시장이 IT서비스 시장보다 큰 것과 달리 국내는 IT서비스 시장이 패키지SW 시장보다 컸다.
올해 전 세계 패키지SW 시장 규모는 1263조1000억 원으로, IT서비스 시장 1073조2000억 원보다 189조9000억 원 큰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국내 패키지SW 시장 규모는 9조2000억 원으로, IT서비스 시장 10조1000억 원보다 9000억 원 작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올해 전 세계 패키지SW 시장에서 국내 패키지SW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0.7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SW는 기업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전환(DX) 시대가 되면서 SW 산업은 그 자체로 중요할 뿐 아니라 타 산업과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실제로 시가총액 세계 10대 기업의 절반이 SW 기반 기업이다. 이미 SW가 주도하는 세계 경제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SW는 유통, 석유, 자동차, 금융, 농업 등 다양한 산업과 융합 속도를 높이고 있다. 자동차만 해도 이제 SW로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최근 크게 주목받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활용 역시 SW 기술력이 근간이다. 전자정부로 요약되는 정부의 운영시스템과 대국민 서비스는 SW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국내 SW산업, 특히 상용 SW 시장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중요성에 걸맞은 시장생태계 또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국내 SW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내 산업 전반과 국가의 경쟁력을 낮춘다는 점에서 대책이 절실하다.
디지털 기술 발전단계에 따라 SW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기술 트렌드가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에 이어 데이터기술(DT)로 바뀌면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수단인 SW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데이터 산업은 물론 결국 국산 SW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시스템통합(SI)이 주도하던 공공영역에서 지식을 재활용하고 비용절감과 산업경쟁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인 상용 SW를 활성화해 행정 효율을 높이고 대국민 서비스 운영을 안정화하는 한편, 국산 SW 생태계를 활성화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공영역에서 SW, 특히 국산 상용 SW는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SW산업 경쟁력 저하뿐만 아니라 최근 잇따르고 있는 행정전산망 장애,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작동 오류, 법원 전산망 장애 등 공공 IT 시스템 오류를 더 잦아지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SW 업체 관계자는 “공공부문에서 국산 SW를 써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 SW를 잘 안 쓰니까 국산 SW가 글로벌로 나가기도 어렵다. 공공부문의 자체개발 비중이 크고 도입하는 상용 SW도 해외 제품에 편중되는 현상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공공부문에서 여전히 상용 SW 구매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용 SW보다는 자체 개발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고, 상용 SW도 직접 구매보다는 통합발주 형태로 IT서비스 기업을 통해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공공 SW 사업 5대 중점 분야 이행 점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억 원 이상 직접구매 대상사업의 상용 SW 직접구매율(상용 SW 직접구매 품목수 ÷ 3억 원 이상 사업의 직접구매 대상 품목수)은 47.5%로 집계됐다.
전년(44.8%)에 비해 2.7%p 상승했지만, 여전히 절반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상용 SW 직접구매는 통합발주를 수주한 IT서비스 업체에 의한 SW 단가 인하를 방지해 상용 SW가 제값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한 SW 기업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의 경우 자체 개발해 지방자치단체에 보급하겠다는 생각이 강해 상용 SW를 잘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통합발주 형태로 도입하는 경우 IT서비스 기업이 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구축 후 운영과정에서 유지보수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운영 리스크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또 상용 SW보다 자체개발 위주의 정보 시스템 구축방식은 소스코드 관리 문제, 프리랜서 활용 급증 등으로 추후 문제를 양산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이 있다.
한 패키지 SW 기업 대표는 “SI 방식은 저가 수주, 프리랜서 비중 급증 등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 등 한계에 봉착했다”며 “최근 대형 공공 IT시스템에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하며, 지금의 사업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치중된 상태에서 벗어나 중견 SW기업에 대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견 SW기업 관계자는 “마라토너가 38킬로미터를 뛰면 체력에 한계가 오는데, 이 때 단백질 영양제를 먹고 남은 거리를 뛴다”며 “기업도 체결에 한계가 올 때 투자를 통해 힘을 실어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가치에 비해 낮게 설정된 상용 SW 유지관리요율도 끊임없이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유지관리비는 SW 제품 도입 후 업데이트, 장애 대응 등 SW의 안정적 지원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다.
정부는 2018년 공공 SW사업 혁신방안을 내놓고 2022년까지 상용 SW 유지관리요율을 글로벌 수준인 최대 2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목표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해 국산 SW의 유지관리요율은 12%에 그쳤다.
과기정통부와 SW정책연구소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3000개 SW 기업을 대상으로 한 SW 산업 실태조사 결과, 공공의 상용 SW의 유지관리요율 구간은 10% 미만 6.8%, 10~15% 미만 42.3%, 15~20% 미만 41.1%, 20% 이상 9.8%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유지관리서비스 관련 애로사항은 고객사의 무리한 요구, 고객사의 유지관리 서비스 유상개념 미비, 서비스 인력 투입 대비 낮은 유지관리요율 등이 꼽혔다.
반면, 오라클, SAP 등 글로벌 SW 기업은 20%가 넘는 유지관리요율을 적용받는다. 외산 SW에 비해 낮게 설정된 유지관리요율은 SW 기업의 이윤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기술 개발, 인력 채용 등을 어렵게 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편, 정부는 SW 가치보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4월 SW 진흥전략을 발표하고 SW 가치보장 강화를 위해 제도를 개선한다고 밝혔다. 특히 과기정통부는 공공부문에서 상용 SW 구매 활성화하기 위해 SW 영향평가 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개정된 소프트웨어진흥법 및 소프트웨어진흥법 시행령을 지난 10월부터 시행 중이다.
SW 영향평가 제도는 SW진흥법 43조에 따라 공공부문이 SW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민간 SW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민간 시장에 상용 SW가 이미 있는 경우 이를 구매해 쓰도록 해 상용 SW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다. 또 과기정통부는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되는 영향평가 결과 및 재평가 결과에 대해 검토하고 효과성을 계속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SW 가치보장 정책을 추진해왔음에도 공공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가 매우 더디다는 점에서 정부가 SW산업 활성화를 위해 국산 SW 제값주기에 더 의지를 갖고 개선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강동식 기자 lavita@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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