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광 수석 퇴임식 단체사진 / 사진=에코프로
에코프로는 창사 이래 첫 정년 퇴직한 박종광 에코프로비엠 포항설비 수석을 촉탁 계약직으로 전환해 헝가리 공장에 파견한다고 5일 밝혔다.
에코프로는 유럽 시장 공략을 목표로 헝가리 데브레첸에 연산 5만4000톤 규모의 공장을 건설 중이다.
촉탁 계약직은 정년 퇴직자의 전문성을 살려 회사에서 더 일할 수 있도록 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을 연장하는 제도다.
박 수석은 1986년 육군 3사관학교에 입학해 장교로 근무하다가 1998년 대위로 전역했다. 군 전역 후 중소 건설회사와 방위산업체 등에서 일하다가 2009년 3월 에코프로비엠의 충북 오창 양극재 공장(CAM1) 생산팀 조장으로 입사해 15년간 근속했다.
에코프로는 박 수석이 제대군인 출신으로 몸에 밴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2008년 건설된 충북 오창 양극재 공장 안정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 공장은 에코프로가 삼성SDI에 공급하는 NCA 양극재를 처음으로 양산했던 곳으로 박 수석의 초창기 업무는 설비 디자인과 공정 안정화였다.
박 수석은 군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으로 업무를 해냈다. 박 수석은 군 시절 해안경비, 수방사 등 전국 곳곳에서 근무하면서 소통과 희생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1990년 초 휴가 갔다가 복귀하지 않은 부대원이 영창에 갈 위기를 맞자 직접 헌병대장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부대원의 인생에 오점이 남지 않도록 도운 일화도 있다.
앞서 1987년 강원도 철원의 모 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혹한기 훈련 중 유독 추위에 약한 부대원에게 사비로 침낭을 사주기도 했다. 또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발생 때는 한달 넘게 퇴근 없이 작전상황을 지휘했다.
박 수석은 1997년 전역했지만 준비 안된 사회생활은 그에게 수많은 실패와 고통을 안겨줬다. 1998년 중소 건설회사 현장 반장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고 외환위기(IMF)가 닥치면서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 박 수석은 군에 방탄복 등 비품을 공급하는 방위산업체에 경력 입사하고 1년 뒤 관련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다가 빚더미에 올라서는 아픔도 겪었다.
박 수석은 은행 이자를 갚기 위해 호구지책으로 액정표시장치(LCD) 도금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입사 몇 년 만에 경영난으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 이후 지인을 통해 경력 입사한 곳이 에코프로비엠이었다.
박 수석은 2009년 3월 충북 오창 공장 플랜트 생산팀 조장 및 반장으로 근무를 시작한 후 자신이 관리하는 설비가 잘 작동돼 제품이 생산돼 출하됐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박 수석은 “CAM-1 플랜트 직원들과 땀 흘리며 제조한 NCA020 첫 양산품을 생산 후 출하할 때, 설비기술팀에서 근무했다”며 “동료들과 함께 공장 설비 디자인부터 설치까지 직접 참여해 설비를 안정화하고 정상 가동을 시킨 순간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지난해 자신의 퇴임 이후 생활을 고민했다. 정년 퇴임 후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지낼까 고민하다가 헝가리 공장 착공을 보면서 헝가리에서 퇴임 이후 생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에코프로도 해외 첫 생산기지인 헝가리 양극재 공장의 조기 셋업을 위해 박 수석과 같은 경험 많은 직원들이 필요했다. 박 수석은 헝가리 근무와 관련해 가족들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부인과 두 아들의 반대를 맞닥뜨렸지만, 가족들도 결국 박 수석의 뜻을 받아들였다.
박 수석의 퇴임 소식이 에코프로의 사내 홍보 채널인 ‘에코톡톡’에 알려지자 함께 일했던 임직원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장효준 에코프로비엠 오창설비운영 직장(수석)은 “첫 출근 날 자식처럼 반갑게 맞아주며 작업복과 안전화를 챙겨주던 날이 생각난다”며 “헝가리로 새로운 일터를 향해 떠나는 박 수석님의 앞날에 행복과 건강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문순 포항설비운영 직장(책임)은 “10여년 동안 일하면서 팀원들이 힘들 때 항상 나서서 챙겨줘 든든했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자부심을 갖고 업계 최정상의 위치를 놓치지 않도록 절차탁마 해주시기 바라고, 모든 임직원 여러분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군대 제대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도 “사회는 만만치 않아 준비 없이 나오면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며 “군에서는 부대원이 챙겨주는데 사회는 본인이 다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철저한 준비도 당부했다.
박혜연 기자 phy@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