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으로 은행들은 예금의 ‘빈익빈-부익부’ 커질 것”

WSJ, “중소규모 은행들은 '머니무브'로 금융안정성 위협”

스테이블코인이 대중화되면, 은행의 ‘질 좋은’ 자금 구조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중소규모 은행은 예금의 급속한 이탈로 심각한 자금조달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제기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 상원에 이어 하원이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달러 등 법정화폐로 100% 담보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디지털 토큰의 제도권 편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주류로 편입되더라도 은행의 모든 예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질 좋은' 예금 일부는 빠져나갈 수 있다고 WSJ는 진단했다.

‘지니어스법’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될 경우, 기존 은행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있다. 엄밀히 말해, 스테이블코인은 자금을 은행 시스템 밖으로 빼내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식이든, 그 돈은 결국 다시 은행으로 들어간다. 

다만, 은행이 최종적으로 갖게 되는 자금은 이전과는 다를 수 있다. 바로 ‘대규모 무보험 예금’ 같은 유형이다. 이런 예금은 일부에게는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고 WSJ는 분석했다.

미국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면, 발행자는 달러를 받아 이를 준비금으로 보관한다. 지니어스법에 따르면, 발행자는 이 준비금을 은행 계좌에 예치할 수 있다. 혹은 미국 국채 같은 자산을 매입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스테이블코인의 자금은 해당 자산의 판매자 계좌로 이동하게 된다. 또한 머니마켓펀드(MMF)처럼, 환매조건부채권(Repo)을 통해 은행에 자금을 실질적으로 대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제이피 모건 체이스의 전략가들은 최근 메모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형태의 MMF와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이런 자금 이동은 은행 예금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경제 주체에게로 이전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신용공급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예금과 자금조달 방식의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WSJ는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내에서 한 개인이 정부의 예금보험으로 전액 보장되는 25만 달러(약 3억 4222만 5000 원) 이하의 예금을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옮기면, 그 돈은 전액 보장이 없는 고액 계좌로 전환된다. 이런 예금은 은행 입장에서 더 큰 비용이 들고, 빠르게 이탈할 위험이 높다.

유럽중앙은행(ECB) 연구진은 최근 분석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들로부터 예금을 조달하는 것은, 은행에 안정적인 자금원이었던 소매예금을 변동성 높은 자금원으로 바꾸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대규모 무보험 기업예금은 2023년 지역은행 위기의 핵심 요인이었다. 당시 문제가 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주요 예금자 중에는, 스테이블코인인 유에스디씨(USDC)를 발행하는 서클(Circle)도 있었다. 

최근 뉴욕증시에 상장한 서클은 투자설명서에서, 2023년 3월 SVB로부터 30억 달러(약 4조 1055억 원) 이상의 예금을 이체하려 했으나 규제 당국의 개입으로 이체가 완료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일부 거래소에서는 USDC의 가치가 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미국 정부가 SVB의 예금 전액 보장을 발표하면서 사태는 수습됐었다.

앞으로 대규모 예금은 대부분 대형 은행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WSJ는 전망했다. 이들 은행은 자산 중 상당 부분을 고유동성 자산으로 보유해야 하며, 급격한 자금이동에도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다. 

서클은 투자설명서에서, 준비금의 상당 부분을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G-SIB)에 예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해당하는 은행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제이피모건, 웰스파고 등이다.

게다가 대형 은행들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도 있다. WSJ은 대형 은행들이 공동 스테이블코인 발행 여부에 대해 초기 논의를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지급되는 보상, 국채 등 자산의 ‘토큰화(tokenization)’ 시장이 확장되면, 사람들은 더 다양한 수익률 옵션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예금자 이탈을 막기 위해 예금금리를 인상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대형 은행에는 비교적 감내가 가능한 변화일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일반인의 일상적인 현금 및 저축 수단으로 자리잡을 경우, 중소은행들은 그러나  훨씬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WSJ은 우려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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