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I성장의 새로운 병목은 고성능 칩 아닌, 전력”

이코노미스트, “에너지 인프라 확충 못하면, ‘전기먹는 하마’ 멈출 수밖에”

미국 엔비디아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 등 인공지능(AI) 슈퍼칩 판매 급증에 따라, 올해 시가총액이 5조달러(약 695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 AI 칩의 전력 수요를 미국 전력망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우려하고 나섰다.

경쟁 GPU 제조사들과 전기차 등의 수요를 제외한 엔비디아 자체의 예상 판매량만으로도, 미국의 전력 수요를 원자력 발전소 20여기 분량의 25기가와트(GW)까지 증가시킬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전체의 신규 발전 추가량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 확보가 AI 투자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AI데이터 센터 증설 등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이에 필요한 전력 수요의 대비는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8월 27일에 엔비디아는 분기별 예상치를 훨씬 상회하는 실적을 발표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 회사가 7월까지의 3개월 동안 460억 달러(약 63조 9676억 원) 규모의 반도체를 팔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 매출은 470억 달러(약 65조 3582억 원)에 육박했다. 

비교가 불가능한 연산 능력으로 AI 모델 개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신 블랙웰 GPU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두 개의 블랙웰과 범용 프로세서를 결합한 엔비디아의 ‘지비(GB) 시리즈 AI 슈퍼칩’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는 거의 60만 개 이상의 블랙웰, 그리고 이와 비슷한 수량의 GB 칩을 팔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분기 대비 약 20% 증가한 수치로, 전체 매출의 거의 60%를 차지한다. 올해 각각 270만 개, 240만 개를 판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의 엔비디아 강세론자들은 이제 이 칩 선두 기업이 조만간 5조 달러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엔비디아는 지난 7월에 세계 최초로 4조 달러(약 5562조 4000억 원) 기업이 됐다.

많은 논평가의 들뜬 표현처럼, 엔비디아는 ‘멈출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멈출 수 없는 힘에 걸맞게 엔비디아는 이제, 움직이지 않는 물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수십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미국의 전력망’이 그것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에너지는 컴퓨팅의 제약 요인이 아니었다. 2010년에서 2020년 사이에 인터넷 트래픽이 폭증하며,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작업량은 9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 전력 사용량은 완전히 똑같은 수준으로 유지됐다. 매 세대의 칩은 이전 세대보다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 

하지만 AI가 이 추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AI가 아닌 일반적인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장치인 ‘랙(rack)’은 가동에 약 12킬로와트(kW)의 전력이 필요하다. 이와 동등한 AI 모듈은 챗지피티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을 훈련할 때 80kW, 사용자 요청에 응답할 때는 40kW의 전력이 필요하다. 더 빠르고 강력한 반도체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할 수 있다.

엔비디아의 칩은 당연히 가장 빠르다. 단일 블랙웰 칩 하나는 1kW의 전력이 필요한데, 이는 이전 모델인 ‘호퍼(Hopper)’의 3배에 달한다. 랙 하나에는 수십 개의 칩이 들어간다. 

엔비디아는 36개의 GB 슈퍼칩(블랙웰 72개와 범용칩 36개)으로 구성된 모듈을 132kW로 작동하도록 설계해 판매한다. 이 반도체들이 과열되지 않도록 막기 위한 보조 냉각 시스템은 랙당 160kW를 추가로 소모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합산하면 추가 전력 요구량은 엄청나다. 애널리스트들은 2024년 2월부터 2026년 2월 사이에 엔비디아가 약 600만 개의 블랙웰과 550만 개의 GB 시리즈를 판매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 중 절반이 자국 시장의 점유율에 따라 미국에 들어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 칩들이 최대 용량으로 설치 및 운영된다면, 미국의 전력 수요는 25GW 증가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이는 2022년 미국의 모든 발전소 생산량 증가분의 거의 2배. 2023년의 27GW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글로벌 에너지 모니터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2024년 7월 현재 원자력 발전 가동 총량이 27GW였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내년에 출시할 예정인 차세대 ‘루빈(Rubin)’ 칩이나, 에이엠디(AMD) 같은 경쟁사들이 판매하는 AI 랙, 그리고 전기차 같은 다른 전력 소비처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

가용 전력과 송전 용량은 거의 모든 기업의 공통적인 우려 사항이다. 에너지 관리 장비 제조업체인 프랑스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최근 전 세계 데이터 센터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는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GPU 확보보다도 경영진의 마음을 더 많이 차지했다. 

미국에서 2030년까지 잠재적 전력부족은, 칩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질 경우 17GW △그렇지 않을 경우 62GW가 발생할 것으로 증권 중개업체인 번스타인은 추정한다. 금융 기관인 모건 스탠리는 2028년까지 45GW의 격차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본다. 즉, 미국 전력 회사들이 속도를 내지 않으면, 칩 판매가 정체되거나 판매된 칩이 유휴 상태가 될 수 있다. 

칩이 유휴상태가 되는 경우, GPU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AI 강자들의 이익에 타격을 줄 것이다. 칩 판매가 정체되는 경우는 엔비디아(의 주가)를 끌어내리게 될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기술 대기업들의 높은 기업 가치에는 반영이 안된 것처럼 보인다. 미국 전력 공급업체들이 알아서 전력을 공급할 것이라는 묵시적 가정이 깔려 있는 듯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해석했다.

전력 부문은 매년 한 자릿수의 낮은 비율로만 용량이 증가하며, 오랫동안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챗지피티가 AI 붐을 일으킨 2022년부터 올해 6월까지 12개월 동안, 미국의 상장된 50대 전력 회사의 총 자본 지출은 30% 증가해 1880억 달러(약 261조 4892억 원)에 달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연평균 7%의 증가율이다. 

데이터 제공업체인 에스앤피 글로벌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운영 중인 565GW에 더해 총 123GW 용량의 새로운 발전소를 추가할 계획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같은 전력 장비 공급업체들은 미국 매출이 가속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이유도 많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업계 경영진은 성장 사업을 운영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비틀거릴 수 있다는 것. 야심찬 계획과는 별개로, 실제로 건설 중인 신규 발전 용량은 모두 합쳐 21GW에 불과하다. 

더 많은 발전소를 건설하려 해도, 장비를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제조업체들은 생산 확대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전 세계 100대 전력 장비 제조업체는 2022년 이후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자본 지출을 매년 3%씩 줄였다. 이는 장비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관세로 인해 더 비싸질 수도 있다.

상장된 전력 회사들의 매출은 2025년부터 2028년까지 명목상 연평균 6% 성장할 것으로 애널리스트들은 예상한다. 이는 2022년 이후 명목 성장률 4%보다는 높지만, 폭발적인 성장은 아니다. 전형적인 배당주로서 이들은 2023년 초부터 주주들에게 870억 달러(약 121조 83억 원)를 지급, 투자에 사용할 현금이 줄어들었다. 

많은 전력 회사들은 규제받는 독점 기업이며, 더 많은 자본 지출을 더 높은 요금으로 반영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미국인들을 짜증 나게 할 것이다. 더 나쁘게는, 백악관의 기업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일부 데이터센터 운영자들은 직접 전력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알파벳은 일부 데이터센터에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저장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메타는 루이지애나에 건설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를 현장에서 채굴한 천연가스로 운영할 예정이다. 

그러나 미국 전력의 거의 전부를 생산하는 것은 전력 회사들이다. 그들의 도움이 없다면, 엔비디아의 전설적인 상승세는 조만간 전원이 꺼지고 말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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