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혁명의 선봉에 서도록 해주겠다며 맥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수십억 달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정작 관련 내용은 잘 모르고 있다는 업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고객사들은 “컨설턴트들은 우리 돈으로 AI를 배우는 셈”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AI 붐을 타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려던 컨설팅 업계의 야심이 과대포장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컨설턴트들이 AI에 대해, 내부 인력보다 더 나은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수천만 달러(한화 수백억원)를 지불했지만, 손에 남은 것은 AI의 미래에 대한 장황한 보고서뿐이었다. 우리는 2000만 달러(약 276억 2800만 원)짜리의 신기루를 샀다”고 허탈해 했다. 이 같은 불만 속에서 많은 기업은 AI 역량을 내부에서 키우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컨설턴트들은 수십 년 만에 가장 변혁적인 기술을 기업들이 도입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고객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과대 약속(overpromise)’을 하고 실제로는 ‘과소 성과(underdeliver)’를 냈다고 말한다고 WSJ은 꼬집었다.
지난 3년 동안 글로벌 컨설팅업체들은 AI 붐 속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기대 아래 수십억 달러(한화 수조원)를 투자했다. 목표는 세계 최대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로 스스로를 변신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만약 전략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는 경기 둔화와 감원으로 어려움을 겪던 컨설팅 업계에 큰 활력이 될 수 있었다. 업체들은 인공지능 관련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기업들의 ‘뒤처질까 두려움(FOMO)’을 자극하는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AI를 당신의 비즈니스에 가장 잘 적용시키는 것은 우리”라는 광고를 내걸었다. 슬로건은 “우리는 약속만 가져오지 않는다. 결과를 가져온다”였다. 초기에는 이 전략이 통하는 듯했다. 그러나 곧 현실이 드러났다.
고객들은 곧 컨설팅 업체들의 제안과 실제 결과 사이의 괴리를 체감했다. 컨설턴트들은 내부 인력보다 AI 전문성이 크게 앞서 있지 않았다. 실질적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활용사례 배치에 애를 먹었다.
일부에서는 개념 검증(PoC)에 성공했지만, 전사적 확산에는 실패했다. 제약사 머크(Merck)의 최고정보책임자(CIO) 데이브 윌리엄스는 “파트너를 좋아는 하지만, 종종 그들은 우리의 돈으로 배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가트너에 따르면, 생성형 AI 관련 컨설팅 매출은 2023년 13억4000만 달러(약 1조 8508억 800만 원)에서 2024년 37억5000만 달러(약 5조 1795억 원)로 뛰었다. 그러나 많은 고객은 여전히 불만족을 표하고 있다. 컨설턴트들의 기여가 의미 있게 될 시점은, 기술이 성숙하고 실행 매뉴얼이 확립될 4~5년 뒤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컨설팅 강자들은 클라우드 전환, 전사적 자원관리(ERP) 구축 같은 기술 적용에서 기업들을 도왔다. 하지만, 생성형 AI처럼 최첨단 기술을 대규모로 적용하는 데 필요한 매뉴얼은 갖추지 못했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 최고기술책임자(CTO) 그렉 마이어스는 “이렇게 새로운 분야에선 경험을 살 수도 없다”며 “구글 제미나이나 앤트로픽 클로드 활용법을 배우려 컨설턴트를 고용하더라도, 빅4 파트너의 경험은 대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사는 최근 1년간 진행한 대형 컨설팅 계약을 종료하고, 의사 대상 교육용 콘텐츠 생성 프로젝트를 내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 모기지업체 아메리세이브의 CIO 마게쉬 샤르마도 “컨설턴트들은 약속을 과장했다”며 “실제 활용사례 구축에서 전혀 방법을 몰랐다. 우리가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수준과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캐털란트(Catalant) CEO 팻 페티티는 “그들이 들어와서 2000만 달러를 받고 작성한 것은 결국 AI 전망 보고서일 뿐, 실질적 적용은 없었다”는 고객들의 불만을 전했다.
기업 내부의 디지털·기술 역량이 과거보다 훨씬 강화된 것도 컨설팅 업계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씨브이에스(CVS) 헬스의 기술 담당 임원 틸락 만다디는 “복잡한 헬스케어 환경에선 내부 팀이 더 적합하다”며 “우리는 컨설턴트에게 맡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 케이피엠지(KPMG) 임원 마이클 미셰는 “컨설팅 업계는 AI를 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뒤처져 있다”며 인재 확보 지연을 치명적 약점으로 꼽았다.
컨설팅 업체들이 성과를 전혀 못 낸 것은 아니다. 산업별 적용사례를 보여주고, 필요한 곳에서 인력 보완을 제공하는 등 가치는 여전히 있다. KPMG는 미국 내 AI 자문 프로젝트 규모가 2년 전 5억 달러(약 6903억 5000만 원)에서 2025년 14억 달러(약 1조 9325억 6000만 원)로 늘었다고 밝혔다. 액센추어도 분기별 생성형 AI 신규 계약액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맥킨지의 에릭 쿠처 파트너는 “생성형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5년 안에 기업 주가를 두 배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는 AI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은 드물다”고 인정했다. 소스 글로벌 리서치 CEO 피오나 체르니아브스카는 “컨설팅 업체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영역이 아닌 최첨단 기술에 나서려 했다. 하지만, 사실 그 자리는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녀는 이어 “4~5년 뒤 ‘두 번째 물결’에서 돈을 벌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