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공판만 8차례...해넘긴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재판

2016년 7월 기소 후 2년 반, 회장자리 '굳건'...위탁선거법 헛점, 임기만료까지 가나


[데이터뉴스=박시연 기자]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김병원(65) 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다시 해를 넘겼다. 지난 2016년 7월 공공단체등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지 2년 6개월, 1심 당선 무효형 확정후 13개월이 흘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공직선거법과는 달리 선거사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은 '위탁선거법'의 허점을 지적한다. 선거사범이 1심판결 이후, 항소와 상고를 반복함으로써 임기만료까지 '버티기'전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 제2부(부장판사 차문호)는 지난달 20일 공공단체등 위탁 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의 항소심 제8차 공판을 열었다.

다음 공판은 이달 31일로 예정된 가운데, 재판부의 항소심 판결이 이번에는 나올지 주목된다. 김 회장에 대한 항소심은 2017년 12월 항소장 제출 후, 2018년 한해 공판만 8차례 진행된 상태다.

김 회장과  최덕규 전 합천가야농협 조합장은 지난 2016년 1월 민선5기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를 앞두고 "결선 투표에 누가 오르든 3위가 2위를 도와주자"고 약속한 뒤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 전 조합장은 김 회장이 2위로 결선에 오르자 투표 당일 지지를 호소한 것은 물론 '김병원을 찍어 달라. 최덕규 올림'이라는 문자를 대의원에게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위탁선거법 제24조에 따르면 선거운동은 후보자 등록 마감일 다음 날부터 선거일 전일까지만 가능하다. 다만 회장 후보자가 선거일 또는 결선 투표일에 문자메시지 전송 또는 자신의 소견을 발표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회장 후보자 이외의 인물이 투표 당일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다.

선관위는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 이틀 뒤인 2016년 1월14일 불법 선거 운동의 소지가 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선거 공소시효를 하루 앞둔 그 해 7월 11일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과 김 회장의 오랜 법정 공방 끝에 1년 5개월 만인 지난 2017년 12월 공공단체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김 회장은 벌금 3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위탁선거법상 당선인이 법 위반으로 징역형 또는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경우 당선은 무효다.

그러나 김 회장은 1심 선거 공판 7일 뒤인 29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김 회장의 '시간끌기' 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농협중앙회 회장의 임기는 4년이다. 지난 2016년 3월 취임한 김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0년 3월 만료된다. 불구속 기소 시점에서 1심 판결이 나기까지 1년5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김 회장은 임기를 모두 마칠 수 있다. 

실제로 항소심을 제기했던 2017년 12월 이후 총 8번의 공판이 진행되면서 재판은 또 다시 해를 넘긴 상태다. 항소심에서 김 회장의 형량이 감형되지 않더라도 다시 상고해 대법원까지 갈 경우, 임기 만료까지 완주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위탁선거법의 허점을 지적한다.

위탁선거법은 공직선거법과 동일하게 공소시효를 갖고 있다. 해당 선거에 대한 법률 위반 행위가 의심될 경우 행위가 있는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죄를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위탁선거법은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공직선거법의 경우 해당 재판의 신속성을 위해 1심 판결은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개월 이내, 2심과 3심은 전심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개월 이내에 반드시 처리하게 되어 있다. 즉 대법원까지 항소하더라도 공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1년을 넘길 수 없는 셈이다.

위탁선거법에 이와 같은 강행 규정이 존재했다면 김 회장의 재판은 이미 지난해 종결되었을 것이다.

업계에서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김 회장이 농협중앙회 역대 회장들의 흑역사를 이어가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회장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바뀐 지난 1988년 이후 총 5명의 회장을 선출했는데 민선 회장 모두가 실형을 선고 받거나 수사선상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었다.

직선제는 지역 조합장들이 투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1988년 처음 도입됐다. 농협법이 개정된 2009년 이후에는 조합장들이 선출한 대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는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민선1기 회장인 한호선 전 농협중앙회 회장은 1988년 취임해 1994년까지 수장을 맡았다. 한 전 회장은 수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자리에서 물러난 한 회장은 제15대 국회의원(자민련)을 역임했다.

원철희 전 농협중앙회 회장(민선2기) 역시 불명예 퇴임했다. 1994년 취임해 1999년까지 약 6년간 농협중앙회를 이끌었던 원철희 전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원철희 전 회장 역시 자민련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민선3기인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은 1999년 취임해 2006년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앞선 두 명의 회장이 모두 서울 출신 인사였던 것과 달리 정대근 전 회장은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경남 삼량진농헙협동조합 조합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이어 취임한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 회장(민선4기) 역시 경상북도 경주가 고향으로 영남 출신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제4~7대 경상북도의회 의원 등을 역임한 인물로 2007년 취임해 2016년 퇴임했다. 민선 회장 가운데 최장수 CEO였던 최원병 전 회장은 금품수수 및 특혜대출 등의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 수사 당시 최원병 전 회장의 측근을 비롯한 농협 전현직 임직원들이 구속된 바 있다.

김 회장 역시 벌금형을 선고받고 공판을 이어가면서 역대 민선 농협중앙회 회장 5명 모두 검찰의 수사 또는 형을 받게 됐다.

김 회장은 1953년생으로 전라남도 나주 출신이다. 제13~15대 남평농협 조합장을 역임했으며 최원병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민주형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NH무역 대표이사, 2015년 농협양곡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다 지난 2016년 3월 농협중앙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민선 농협중앙회 회장으로는 첫 호남 출신인 김 회장이 임기를 끝마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i-yeon@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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