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노동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직장 사다리의 ‘최하단’이 무너지고 있다. AI가 신입 직원들의 전통적인 초급 업무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과 관세에 대한 불확실성은 이같은 일자리 파괴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최대의 취업 플랫폼인 링크드인(LinkedIn) 경제기회책임자(chief economic opportunity officer) 아니쉬 라만의 기고를 최근 게재, “기술·경제적 충격이 사무직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며 “초급 개발자, 신입 법률보조원, 유통업의 신입 사원 등이 AI의 대체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AI 시대의 일자리 재설계는 필수”라면서 “특히 ‘초급 일자리’의 재정의 없이는 노동시장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NYT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제조업이 급락하며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금은 사무직이 이와 비슷한 기술·경제적 격변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먼저 붕괴되는 것은 ‘경력 사다리’의 가장 낮은 계단이다. 기술 분야에서는 초급 개발자가 맡던 간단한 코드 작성과 디버깅이 AI 도구로 대체되고 있다. 로펌에서는 신입 법률보조원과 1년차 변호사들이 하던 문서 검토 업무가 AI에 넘어가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도 챗봇과 자동화 서비스가 초년생 직원의 역할을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최신 고용 통계와도 맞물린다. 미국의 대학 졸업자 실업률은 2022년 9월 이후 30% 상승했다. 이는 전체 근로자 실업률의 평균 증가율(18%)을 웃돈다. 부사장급 이상 3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3%가 “AI가 현재 초급 직원이 맡는 단순 업무를 대체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AI는 거의 모든 직종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특히 사무직에서 그 압박이 클 것이다. 고학력 전문직일수록 오히려 AI로 인한 충격이 심할 가능성이 높다. 기술 분야는 이미 AI 채택이 보편화돼 있다. 금융, 여행, 식음료, 전문 서비스 등 다른 산업도 초급 업무의 침식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청년층에 특히 문제가 된다. 사회 진입이 늦어지면 평생 경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만 22세에 6개월 실업을 경험한 사람은 향후 10년간 약 2만2000 달러(약 3049만 4200 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불평등의 심화다. 초급 일자리가 사라지면, 인맥이나 배경이 부족한 청년층은 사회 진입 자체가 더 어려워진다. 제조업 몰락 당시처럼, 지역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초급 일자리를 완전히 새롭게 상상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고용주가 요구하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메리칸대학의 경영대는 AI를 전 교과과정에 통합시켰다. 카네기멜론대는 AI 학사과정을 신설했다. 마이애미-데이드, 휴스턴, 마리코파 커뮤니티 칼리지들도 AI 전문학위를 개설하고 있다.
기업은 미래의 리더십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청년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단, 초급 일자리를 AI가 하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업무로 재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회계컨설팅법인 케이피엠지는 이제 신입 직원에게 3년차 이상이 맡던 세무 업무를 맡긴다. 로펌 맥팔레인즈는 신입 변호사에게 복잡한 계약 해석을 시킨다. 엠아이티 슬로언 경영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AI와 함께 일하는 신입·저숙련 노동자들이 생산성 측면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다. 지세대(Generation Z)는 성장에 대한 열망이 크다. 링크트인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승진 기회가 보장된다면 2~5%의 연봉 삭감도 감수하겠다고 한다.
초급 일자리는 수십 년간 신입직원들에게 안전하게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이 모델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현실에 맞는 커리어의 첫 단계를 설계해야 한다. 반복이 아닌 적응력을, 그리고 정체가 아닌 도약을 위한 직무 설계가 필요하다.
NYT는 “AI로 인한 변화의 파도는 결국 모든 직군에 닥칠 것”이라며 “초급 일자리의 개혁은 전체 노동시장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